라라랜드

변하는 세상과 변하지 않는 꿈

by 레이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 <라라랜드>라는 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플래쉬>로 깜짝 데뷔하고 이어 <라라랜드>를 내놓은 셔젤 감독은 안타깝게도 이후 <퍼스트맨>, <바빌론>으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바빌론> 자체가 데이미언 셔젤의 현재 상태를 반영한 것만 같아서 참 절묘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라라랜드>보다 <위플래쉬>를 더 좋아하지만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라라랜드>가 필요했다.


라라랜드는 LALA land, 즉 헐리웃이 위치한 LA의 별명이기도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기 전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LA에 들렀던 적이 있다. 20대 후반이었던 당시에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꿈의 세상이나 다름없던 LA를 방문하는 게 그야말로 꿈같았다. 헐리웃 스타의 거리를 걸으며 스타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돌비 극장 투어도 했다. <라라랜드>의 촬영지인 그리피스 천문대도 가보고 언제까지나 반짝반짝 빛날 것만 같던 LA에서 언젠가 이 곳으로 진출해서 멋진 영화인이 되겠다는 꿈을 다시 한번 꾸었다. 지금까지도 가장 행복했던 여행으로 나는 미국 서부 여행을 꼽는다. 단순히 도시가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었어서가 아니라 나의 꿈과 가장 맞닿아 있었던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샌드맨>을 보면서 생겼던 의문이 하나 있었다. 영어와 한국어, 일본어 모두 꿈이라는 단어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잠을 잘 때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과 이상향.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일까가 문득 궁금해져서 중국어,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중국어와 독일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도 꿈이라는 단어에 두가지 뜻이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중국어의 경우 두 가지 뜻에 약간 표현이 다르긴 하지만 꿈 몽夢자를 공유한다는 것 같았다. 잘 때 꾸는 꿈에는 길몽도 있지만 악몽도 흉몽도 있는데 꿈이라는 단어에 많은 언어에서 이상향이라는 뜻이 함께 간다는 게 신기했다. 꿈이라는 단어가 가진 두 개의 뜻대로, 내가 방문한 LA는 내가 꿈꾸는 도시인 동시에 꿈만 같은 여행을 선사한 도시였다.


미아와 셉은 LA에서 각자의 꿈을 좇으며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서로의 꿈을 지지하며 연인이 되었다가 마침내 각자의 꿈을 위해 이별한다. 미아는 오디션을 수도 없이 본 끝에 결국 라라랜드에서의 꿈을 접기로 마음먹는데 영국에서 불안한 미래를 그리는 매 순간 절망하던 미아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셉은 그런 미아에게 마지막 기회를 전달하고, 헤어진 연인에게 응원을 건넨다. 현실적인 이유로 이별했지만 셉에게 있어 미아는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 된 셈이다. 사랑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미아와 셉이 나눈 애정의 종류가 변했다고 해서 사랑의 범주에 넣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미아와 셉 사이에 오간 사랑만큼 순수한 사랑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는 미아와 셉이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나는 미아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기 때문이 아니라 미아의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세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나는 코로나 시기에 극장이 직격탄을 맞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했다. 사람들은 이제 스크린이 장악하는 두시간 동안 모르는 타인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대신 집에서 혼자 콘텐츠를 감상하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극장은 일상의 탈출구인 동시에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이제 그 공간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영화의 시대가 스러질 거라는 예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다가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특히 코로나 직전 대한민국은 마블 시리즈가 개봉했다 하면 몇백만을 기본으로 찍고, 천만관객이 든 영화를 한 해에도 몇 편씩 내는 영화의 국가였으니까. 심지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저변도 넓어져가던 참이라 좋은 영화라고 입소문이 나면 작은 영화라도 꽤 괜찮은 흥행몰이가 가능하던 시점이었다. 영화팬이 아닌 이들과도 함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던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지는 건 가슴아픈 일이었다.


나는 어린 날의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어두운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도 내가 얻었던 위안을 얻길 바랐다. 그와 동시에 언젠가 두시간 동안 스크린의 마법이 선사하는 경험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싶었다. 나는 <도가니>로 도가니법이 제정되는 걸 보면서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고 자란 세대였다. 나는 세상이 느리지만 좋은 방향으로 변해간다고 믿었고, 영화가 그중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앞에서 내가 종교처럼 믿고 신봉했던 스크린은 스러져 가려고 하고 있었다.


영화의 쇠퇴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가던 시점 톰 크루즈는 미루고 미루던 <탑 건: 매버릭>의 극장 개봉을 진행시켰고 전 세계적인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 <아바타: 물의 길>이 개봉하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남는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이제 극장에 오는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 전처럼 블록버스터부터 작은 독립영화까지 아우르는 관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극장용 영화만을 보러 극장에 방문했고, 관객수는 양극화돼가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 나는 습작이라도 내가 쓰는 시나리오가 극장용 시나리오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큰 화면에서 집중해서 보기 위해 극장까지 올 만큼 규모가 큰 시나리오일까? 그만큼 이건 흡입력있는 이야기일까? 정말 좋은 이야기라면 사람들이 돈을 내고 극장에 올 거라 믿었던 순진한 나의 믿음은 꿈을 향해 한발 내딛기도 전에 산산조각났다.


영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나는 어쩌면 내가 꾸었던 꿈을 영원히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관둔 건 아니었다. 언젠가 시나리오 작법서에서 언제 시나리오 쓰기를 그만둘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정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두기로. 내 꿈과는 별개로 나는 아직까지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 즐겁다.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이 이야기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상상하면 나는 시들어가는 나의 세계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갖고 태어난 현침살을 믿어보기로 했다. 영화계의 천재들처럼 어린 나이에 영화계에 입성해 재능을 뽐낼 수는 없을지라도, 돌고 돌아서 언젠가 내가 꿈꾸던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작법서에서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기 위해 시나리오를 쓴다면 머지않아 포기하게 될 거라고 했다. 난 유명세에는 관심이 없었고 IT업계에 들어선 이상 부자는 아니라도 돈은 먹고 살 만큼 벌 수 있었다. 그래서 꿈을 계속 꾸기로 했다.


재영과협의 워크샵에 갔을 때 영상과 음향 연구를 같이 하는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연구 기간에 영화작업도 꽤 많이 하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라라랜드로 가는 길이 꼭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함께 재미삼아 사주카페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내 사주를 봐주던 분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가본 사주집 중에 그나마 가장 많이 실제의 내 삶을 많이 맞힌 것 같다. 그 분은 열심히 살다보면 30대 중반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 때 내가 스무살 즈음이었으니 당시엔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니.. 실망한 나에게 그 분은 말했다. 자신이 서른살 때 신학교를 가려다 포기했는데(근데 사주쟁이 되셨..), 마흔살이 된 지금 그 때 갔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시간 금방 가니까 초조해 말라고.


꿈은 계속 변하고, 꿈을 이루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나는 라라랜드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IT업을 당장 떠날 생각도 없다. 나는 어둠 속에서 한발한발 내딛고 있지만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렇게 걷다보면 내 길을 비춰주는 별이 보일테고, 그러다 보면 별의 도시에 도착하겠지.


*<라라랜드>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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