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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Oct 04. 2021

당신은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나요?

AI와의 연애에서 보이는 환상과 공포

<아임 유어 맨>은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조>를 많은 면에서 연상시키는 영화지만 성별 반전만큼 다른 면도 많은 영화다. 둘 다 AI와의 연애를 기본 서사로 하지만 하나는 AI가 주인공이고 하나는 인간이 주인공이다. 하나는 AI가 자신이 AI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다른 하나는 AI가 스스로 AI이며 인간의 행복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점으로 어필을 시작한다. 전자는 <조>, 후자는 <아임 유어 맨>이다. 사랑, 특히 연애라는 소재에 천착해 온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특성상 <조>는 AI를 가지고 연애 서사를 다루는 데도 불구하고 조(레아 세이두 분)가 AI라는 점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반면 <아임 유어 맨>은 연애 상대가 AI라는 점이 알마(마렌 에거트 분)에게 감정의 혼란을 제공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설정이다. 톰(댄 스티븐스 분)은 알마에게 프로그래밍된 상황 이외에는 화를 내지 않고 그 어느 상황에서도 알마를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조와 차별화된다. <아임 유어 맨>의 특징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알마의 행복을 위해 설계된 톰이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알마는 톰을 연애 상대로 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바로 그 점으로 인해 톰에게 이끌린다.


<패신저스>에서 우주선에서 홀로 깨어난 짐(크리스 프랫 분)은 처음에는 혼자서 우주선을 탐험하고 즐거워 하지만 어느 순간 외로움을 느낀다. 짐을 상대하는 건 AI 바텐더 뿐이다. 짐은 바텐더와 처음에는 재미있게 놀다가도 어느 순간 바텐더에게 화를 내는데 그 이유가 바텐더가 인간처럼 화를 내고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화를 내는 상황을 꺼려하지만 막상 짐은 자신에게 웃어 보이기만 하는 AI에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살면서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며 이를 두려워하면서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인간성이라는 점이다. 알마의 행복을 위해 설계된 톰은 알마를 위해 청소하고 요리하며 이벤트를 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알마가 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집에 있는 청소기, 세탁기는 인간을 위해 동작하지만 누구도 이 기계들에 대해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다. 기계는 인간을 위해 충실하게 제 역할을 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적어도 망가지기 전까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알마는 톰을 인간의 형상을 한 가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인간의 감정을 지닌, 혹은 흉내내는 AI에 대한 상상은 영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는데 높은 확률로 인간의 공포심을 동반한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OTT의 알고리즘 역시 AI지만 추천 콘텐츠 리스트를 보고 공포심을 느끼는 사용자는 없다. 하지만 sf의 고전 중 하나인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매트릭스> 시리즈는 기계가 인간을 넘어선 통제력을 지녔을 때에 대한 공포심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들이다. AI와의 연애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회의감을 소재로 하는 데는 이런 공포심이 한몫할지도 모른다. 물리적인 형상이 없는 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와의 연애를 그린 <그녀>는 점점 진화해 나가는 사만다를 따라잡지 못한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가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과정을 다룬다. 인간이 AI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은 근원적으로 AI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이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을 통제할지 모른다는 데서 기인한다. AI와의 바둑 대국에서 1승 4패로 마무리하는 이세돌 9단의 모습을 보며 많은 관객이 AI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공포감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알마가 톰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는 수많은 심리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톰이 알마의 감정을 분석해 반응하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마의 거부반응 또한 AI에 대한 공포감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톰이 여타 영화에 등장한 AI들과 다른 점은 완성된 AI가 아니라는 점이다. 알마와의 첫 만남에서 오글거리는 멘트로 알마를 기겁하게 만드는가 하면 대화를 하던 도중 알고리즘 오류로 기술자들에게 끌려 나가는 톰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잘 보이려다가 저지르는 실수를 연상시킨다. 알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마와의 대화와 만남을 통해 알고리즘을 발전시켜 가는 톰은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수습한다. 자연스럽게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톰은 알마가 오기 전에 카페가 마감하자 카페 밖에서 비를 맞으며 알마를 기다린다. AI에 대한 알마의 공포심은 여기서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톰도 실수를 하는 존재이지만 인간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알마에게 화를 내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알마는 조금씩 톰을 받아들인다. 사만다가 무서울 정도로 전지전능해서 거리감을, 조가 지나치게 인간다워 AI가 아닌 피노키오처럼 보였던 것과는 달리 톰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현실적인 알고리즘으로 기능한다. 



알마가 톰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갈 무렵 온전히 톰에게 이끌리게 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학자인 알마가 연구하던 소재를 같이 지켜보던 톰이 알마의 연구가 이미 발표된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이 때 톰은 놀라운 배려 알고리즘을 발휘하는데 팀을 이끄는 알마가 팀원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팀룸 밖으로 알마를 불러낸다. 처음으로 일에 대한 자부심, 일에서 얻는 성취감 그리고 일에서 얻는 절망감까지 톰에게 논의하게 된 알마는 감정적으로 톰에게 의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연구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알마의 절망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톰은 알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비록 이벤트에 대한 알마의 취향이나 청소에 대한 개념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감정에 대해 반응하는 알고리즘만은 완벽한 톰은 알마로 하여금 당신의 행복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말을 신뢰하도록 만든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법은 물리적인 이벤트나 보조보다는 감정을 파고드는 것임을 보여주기도 하는 이 장면은 톰의 감정 알고리즘이 한 단계 진화하도록 돕는다.


AI와의 감정적 교류를 다루는 영화들은 결국 딜레마에 부딪힌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는 달리 AI가 느끼는, 혹은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감정들은 결국 알고리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조>는 조를 인간이 되길 원하는 피노키오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AI에 회의감을 느낀 테오도르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AI를 다룬 고전적인, 제목에 그대로 드러나는 <A.I.>는 조금은 황당해 보이는 결말을 보여주기도 했다. AI와의 완벽한 가상 연애를 꿈꾸던 이들도 상대가 AI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의 감정에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AI와의 사랑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기 어렵다. 그래서 알마는 톰에게 떠나달라고 요구하지만 톰을 잊지 못하고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설계된 AI라면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이든지 행복하면 그만이련만 철학적인 사고를 하도록 진화한 인간은 상대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불행을 자처하는 셈이다. AI에 대한 공포와 행복 사이에서 헤매는 인간들은 끝내 윤리적인 문제라는 갈림길 앞에 서게 되지만 실제로 톰이 시장에 풀린다면 꽤 많은 여성들의 구매 행렬이 줄을 잇지 않을까. AI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인간성을 확인시켜 주는 비인간인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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