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웨일>, 2023

지극히 나의 편협하고 단편적인 시선으로.

by 태오

답답하다.


4:3 프레임에 갇혀 있던 the wale 찰리도,

그런 찰리를 끝까지 보살피지만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리즈도,

찰리를 찾아온 전 아내 메리도,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도.


왜 우리는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과거의 상처에 얽매인 채 스스로를 나락으로 끌고 가는 걸 왜 그대로 놔둘까?


그럼에도 딸을 생각하는 찰리의 모습이 위선적으로 보였고, 슬펐다.

이제 와서 딸을 만나 사과하고, 그동안의 자신의 노력을 보여주는 그의 진심이 정말이지 보기 싫었다. 그렇게 해서 용서받는다는 걸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찰리의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였고, 슬펐다.

본인의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전 아내, 딸, 친구까지. 왜 그들은 찰리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이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마음속에 풀지 못한 채 엉켜있는 상처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상처에는 모두 찰리가 있다.


찰리, 개 나쁜 자식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영화에서는 하염없이 피해자로, 하염없이 슬픈 사람으로 비치는 건가.


답답했다. 찰리가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그를 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찰리를 욕하면서 이 영화를 끝까지 본 나 자신이. 찰리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이. 그리고 그 찰리가 마치 나 같다는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나는 이 영화에서 리즈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왜냐하면, 그녀가 가장 불쌍하기 때문이다. 리즈는 (뭐랄까, 뉘앙스는 다르지만 약간) 'Martyr complex'같다. 찰리를 보살핌으로써 그녀의 응어리진 아픔을 애써 치유하려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코 치유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녀는 찰리의 유일한 보호자였고, 친구였다. 그런데 찰리는 그런 그녀보다도 딸이 더 우선이었다. 그녀가 보살펴주던 매 순간에도,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그녀가 아니라 딸이었다. 그녀의 노력과 우정을 찰리가 소외시켰다.


이해된다. 찰리에게 리즈보다 딸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 그리고 아마 리즈도 그런 걸 다 이해할 거다. 그녀도 자신의 노력과 우정이 소외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리즈가 소외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찰리가 싫은가보다.


단순히 나의 단편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그녀의 모습에서는 슬픔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첫 등장부터 마지막에 아래층으로 갈 때까지, 단 한순간도 슬픔이 떨어지지 않은 적이 없다. 그 슬픔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특히 마지막에 아래층으로 갈 때 그녀에게 떨어진 슬픔은 앞선 슬픔과는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 슬픔은 아마도.. 조금은 다르다.


마냥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찰리는 진짜 개 나쁜 놈이다.


나는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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