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深淵|

by 태오

"이딴 거 왜 보노?"


어릴 적, TV에 영화가 틀려있으면, 항상 '그'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그'가 없을 때, '그'가 없는 곳에서 몰래 영화를 보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영화를 잘 보지 않았다. 간간히 친구나 연인 덕분에 영화관을 가게 되는 경우에만 종종 영화를 봤다. 심지어 꽤 많은 순간은 그냥 잠들곤 했다. 왜냐하면, 영화는 볼게 안되니깐.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화가 좋아졌다. 아마도 내가 '그'의 곁을 벗어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온전한 자유의지를 되찾는 과정은 길고, 조용했다. 하지만 격렬했다. 내면에 소용돌이치던 격렬함은 가히 러시아 10월 혁명의 노동자들이 휘두르던 총질과 같았다. 이 격렬함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 내 마음을 얼마나 달랬는지 모른다. 어쩌면 매일 밤, 밤 불이 내 눈을 밝힐 때마다, 어쩌면 매일 새벽, 형광등이 켜질 때마다 나는 가벼워진 눈꺼풀을 억지로 감으며, 내 마음을 달랬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좋아지고 나서는 더 이상 밤 불이 내 눈을 밝히지 않았다. 형광등 불에 억지로 눈을 감지도 않았다. 심연의 바다와 같은 적막한 어둠만이 느껴졌다. 편안했다. 그래서 내가 스쿠버를 좋아하나 보다. 스쿠버를 하면서 잊히지 않던 순간이 있다. 그날따라 유난히 계속 하강했었다. 아마 훈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바다 색이 짙은 남색이 되었다. 아니 푸른빛을 띠는 검은색이었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요했다. 온전히 느껴지는 건, 나의 숨소리와 심장소리뿐. 편안함이 몰려왔다. 그 어떤 고통도, 행복도, 미래도, 과거도 느껴지지 않는 온전한 그 순간만이 온전히 존재했다. '심연'. 이대로 영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는 나에게 이상이고 자유다.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할 수 있음을 맛 보여주는 의지다. 영화에 빠진 그 순간만큼은 고통도, 행복도, 미래도, 과거도 없다. 온전히 그 순간만이 존재한다. '심연'. 덕분에 나는 다시 온전한 '나'가 되어갔다.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오래전 잃어버린 모습들을 되찾아갔다.


'그'에게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그'에게 다시 갔다.

같지만 다르다. <괴물>의 '강두'처럼.


어느 순간 '이런 거 왜 하노?'라고 '그'에게 말하는 '나'를 인지했다.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최근에야 알 것 같다. 우린 서로를 위하고 있었던 거였다.


붉은 실로 이어진 뫼비우스의 띠는 좀처럼 끊기지도 풀리지도 않는다.


나의 본질적인 아픔은 '그'로부터 나왔고, 치유되지 않는다. 나의 심연에는 치유되지 않는 아픔과 아픔을 치유하는 편안함이 함께 한다. 이 두 녀석은 끊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옳아 매고, 나는 거기에 얽매인 채 하루를 살아간다. 썩 나쁘지만은 않다. 끝이 없는 무한의 궤도를 도는 두 녀석들 덕분에 나는 동력이 끊기지 않는 기계다. 계속 움직일 수 있다.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다. 쓰러져도 나아간다. 망가져도 나아간다. 계속, 계속 나는 향할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세요. 나에게 속력을 알려주세요. 제발.


혼자서는 조금 힘들어요. 내 심연에 들어와 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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