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때쯤이었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왕창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꿉친구의 집에 꽂혀있던 파피용을 시작으로 신, 뇌, 아버지들의 아버지, 인간, 나무 등등. 이상하게도 개미-타나토노트-천사들의 제국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만 빼고 말이다. 당시에는 그와 나 사이의 내적 거리가 굉장히 가까웠던 것 같다. 그가 가진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가 나에게 큰 신선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라는 무슨 코믹만화에서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작명한 듯한, 마치 물결같은 그리고 수륙챙이의 배꼽같은, 이름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한동안 현실에 치여, 다른 책에 빠져, 혹은 책태기(?)에도 빠지면서 그의 수륙챙이 같은 이름이 점차 내 삶에서 잊혀져 갔다. 종종 교보문고에 들릴 때면 신작코너나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라와 있는 그의 이름을 보며 과거의 추억을 (아주 잠깐) 대새김질 했을 뿐이다. 가끔씩은 그의 신작을 들어올려 펼치곤 했지만, 이내 다시 덮고 내려놓기도 했다. 아마 그의 개성과 상상력과 특별함이 현실의 때가 묻어버린 나에겐 조금 식상해지고 질려져셔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우연치않게 <심판>을 선물을 받았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선물해준 책인데, 안 읽을 수가 있겠나. 기존에 읽던 책을 바로 덮어버리고, 심판을 펼쳤다. 덕분에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그 특유의 감수성을 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어보니.. 주제는 무거운 것 같은데, 이야기가 가벼워서 쉽게 후루룩 읽혔다. 읽으면서 자꾸 '신과함께'도 생각이 났던ㅋㅋㅋ
심판 | 베르나르 베르베르 - 교보문고 (kyobobook.co.kr)
극 중에선 처벌의 개념으로 윤회를 하고, 통과(?)의 개념으로 영생을 얻는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이 영생을 얻더라도 여전히 지상세계에서의 인간성과 같은 결로 가는 게 인상깊었다. 그러면 오히려 영생을 사는 게 처벌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인간성을 지닌 채 영원하다는 것’이니깐. 극 중에서도 후반부 가브리엘의 대사와 검사, 변호사간의 갈등을 보면서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런 아이러니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나에겐 그 선택의 기준이 행복이었다. 합리적인 선택보단 가슴이 이끄는 그런 선택들말이다. 그런데 극의 후반부에 보면 아나톨이 윤회를 위한 여러 조건들을 선택하는데, 문득 덜 불행해지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걸보고 또 문득 든 생각이.. 내가 삶의 자신감을 잃을 때는 불행의 척도를 판단하고나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덜 불행해지게, 가슴으론 내키지 않아도 좀 더 안전한 그런 선택말이다. 그래서 주인공도 윤회라는 결과 때문에 살아가는 거에 있어서 부정적인 상태겠구나 싶기도 하면서, 오히려 (앞서 말했 듯) 윤회가 영생보다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지니깐, 삶의 자신감을 잃었을 때도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려나..). 쓰러져도 일어나서 계속 도전하는 언더독의 마음가짐과 함께.
두서없이 써봤는데, 아무쪼록 잘 읽히고 생각할 거리도 참 많았던 것 같은 책이다(나의 사견뿐만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풍자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거리도 꽤 있는 것 같다). 아무쪼록 쉽게쉽게 읽히면서도 자세히 보면 참 묵직한 주제와 철학으로 생각할거리를 만들어주는, 이런 책이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