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 케네스 로너건
마틴 스콜세지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굉장히 공감이 가는 말이면서, 한편으로는 위험한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것은 parmatikon이기 때문이다. 자칫 어중간하게 해 버리면 그 누구의 공감도 못 살고 혼자만의 예술이 돼버릴 수 있다.
해당 작품은 개인적인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이어나감에도 단순히 개인에게만 국한된 작품이 아니다. 아무래도 인간 내면의 원초적인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할 줄 알고, 이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덕분에 작품을 보다 어느새 인물의 서사와 감정에 몰입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시나리오와 연출 또한 탄탄하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죄책감을 느낀다. 종종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죄책감이 있기도 하다. 주인공 ‘리’는 후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모든 인물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그 덤덤함의 이면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슬픔이 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사랑스러운 남편,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던 ‘리’. 그는 자신이 저지른 아주 사소한 실수로 모든 걸 잃었다. 벽난로 안전망을 닫지 않고 맥주를 사러가는 바람에 자신의 세 아이는 불에 타 죽었다. 아내와는 결별했다. 자살조차 실패했다. 더는 자신의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결국, 도망치듯 다른 지역으로 떠났고, 그의 가슴엔 한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새겨졌다.
처음에 보면 ‘저 인물이 왜 저렇게 행동할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하지만 보다 보니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 된다. 공감하게 되고, 함께 아파하게 된다. 미치지 않고, 덤덤히 살아가는 그가 신기할 정도이다. 오히려 그게 미친 것일 수도 있지만.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해 아이도 네 명이나 낳는다. 후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자신의 눈을 찌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세상과 이별하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운명에 맞설 용기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리’도 마찬가지다. 그 스스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불태웠고, 가정을 파탄 냈다. 세상을 떠나려 했지만, 결과적으론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젠 자신처럼 아픔을 가진_물론 정말 똑같은 아픔은 아니지만_그의 조카 '패트릭'이 의지할 수 있는 삼촌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영화에선 결말을 완벽하게 보여주지 않지만, 분명 ‘리’는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채 덤덤한 척 계속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패트릭과 함께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거란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내 눈에 그 희망이 보이는 순간, 가슴 한편에 덤덤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