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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blie Mar 31. 2021

플레이 데이트나 생일파티 초대, 왜 우린 오지 않을까?

아이의 인간관계, 어디까지 엄마가 나서야할까?

초대? 받지 못하면, 하지 뭐.


 영국 이민이나 정착을 위한 인터넷 카페를 보면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같은 글들이 제법 있길래, 영국에 가면 자연스레 초대를 받게 될 줄 알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그럴 기미가 1도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대로 가면 길고 길다는 여름 방학 전에 친구를 만들 수 없을 텐데...'

 초대를 받지 못하면 초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 데이트까지 RSVP를 보내진 않을 테지만 당시 레이시 엄마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던 때라 이 초대장이 레이시 엄마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구글에서 열심히 RSVP의 포맷을 찾아보았다. 국제 행사를 준비하면서 원래 프랑스어라는 RSVP(Repondez, s'il vous plait, Please respond)를 용역업체가 공식적으로 보내는 걸 보았을 뿐, 이런 개인적인 RSVP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보통은 초대하는 이, 이벤트, 날짜, 회신 연락처와 같은 것을 적어 보낸다. 그리고 아이만 드랍하고 갈지, 엄마들도 같이 남아 있을지도 정해서 적어 보낸다고 한다. RSVP를 보내기로 한 순간 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려운 요소를 모두 배제할 수 있도록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일단은 친절하게 학교 적응을 도와준 레이시에게 감사하는 마음에 집으로 초대한다는 내용을 썼다. 한 살 아래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동생도 같이 와도 된다고 쓰고, 아이만 드랍할지 엄마도 같이 있을지는 편한 대로 하면 된다고 쓰며 "00까지 답해주세요~"라고 했다. 준비를 위해 답해줄 날짜를 보통 쓴다고 하길래 말이다. 내심 아이만 놓고 가길 바랐지만, 영국인도 아니고 이방인이고 초면인 사람에게 아이만 맡긴다는 건 어려운 일 같았다. 약간의 흥미가 될까 하여 간식으로 한국식 음식을 약간 준비한다는 내용도 썼다. 초대장을 보내고 난 뒤 레이시는 당장 "I wanna come to your home!" 너희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는데, 그 아이 엄마의 연락이 오지 않아 자주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표지를 심사숙고하여 프린트하고 깔맞춤하여 봉투를 만들었던 첫 RSVP

 길거리에서 레이시 엄마를 만났을 때, "혹시, RSVP 받았어요?"하고 물었다. 낯선 얼굴을 하고 '그게 뭐?'라는 표정을 지을까 봐 걱정을 했지만, 걱정이 머쓱하도록 밝고 친절하게 "그럼 그럼, 레이시가 엄청 가고 싶어 한다."며 답장하겠다고 했다. 쉘리, 그녀, 레이시의 엄마는 늘 그랬다. 막상 만나면 벽이 없는데, '포기해야지 하면 대답이 오는'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참 알 수 없었다. 진짜 벽이 없었는지 어쩔 수 없이 벽이 없는 예의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무엇이 중요하랴. 급한 자가 구하는 것이고, 얻으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모적인 자존심을 뒤로했다.

 두둥! D-day. 잡채 싫어하는 외국인은 잘 없지 않을까 싶어서 잡채와, 쿠키, 브라우니 같은 주전부리를 준비했다. 레이시는 동생은 두고 엄마와 온다고 답장이 왔었다. 학교 앞에서 레이시와 레이시 엄마를 픽업해서 집에 왔다.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와 영국 아이 레이시는 신기하게 말이 잘 통했다, 아니 말은 중요하지 않은 나이었나 보다. 레이시는 헤어지기 싫어 집으로 태워다 준 차에서 내리기 싫어할 정도로 아이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나는 레이시 엄마와 영어회화 고문 3시간을 견뎌냈다.

첫 플레이 데이트

 그렇게 가장 친한 친구를 얻게 된다. 물론 그 뒤로도 쉬운 과정은 아니다. 초대를 했으니 금방 진짜 영국인 집에 반대로 초대를 받아 구경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그런 일은 1년이나 뒤에 일어났다. 같이 소소한 근처 공원과 놀이터, 큐가든도 가고, 방학엔 Half Term Holiday Activity 중 Cooking Class 하나 같이 보냈지만 좀처럼 집으로 오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뒤에 가보게 된 레이시네집. 레이시의 눈빛에서 사랑이 뿜뿜. 보는 엄마의 마음은 달달.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하교 시간엔 부활절 깜짝 선물도 받았고, 레이시의 생일엔 우리 아이도 일생 첫 슬립오버를 영국 정통 방식으로 해보게 된다. 두 번의 할로윈에도 밤거리를 함께 누볐고, 남편이 오지 못해 둘이 나게 되었던 마지막 해 크리스마스이브도 함께 하였고 깨알 같은 선물도 바리바리 챙겨주었다. 레이시만 데리고 다녀왔던 윈저성, 런던교통박물관은 친구와 함께 가서 Eye Spy 놀이를 즐겁게 하며 다닐 수 있었고, Stamp 사냥을 하느라 지칠 줄 모르고 관람할 수 있어서  아이와 나만 갔던 것보다 훨씬 값졌었다. 그렇게 가까워져서 나중엔 회사일로 주말 출근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는 아이를 흔쾌히 맡아주기까지 했다. 아이와 둘이 지내는 걸 알기에 늘 필요하면 자기 집에 보내라고 하던 것이 빈말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편해서 자주 만나던 한국인 언니 보다도 아이를 맡기게 되었던 건 레이시네와 노리키네였다.

스쿨트립 때는 늘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첫 슬립오버를 나눈 사이. 18살이 되면 한국에 오겠다는 약속을 했던 가슴 아릿했던 마지막 나들이

 아! 집에 서양인을 처음 초대할 때는 서양 음식을 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즈음은 영국인들도 동양 음식, 한국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의식이 생겨 즐기는 사람이 늘었고 프랑스 출신 회사 동료는 김치를 직접 담가 먹기도 했고, Wasabi나 Itsu 같은 곳에 식사시간이면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앉지만, 여전히 동양 음식에 손도 대 보지 않은 영국인들도 있다. 또 우리에 비해 알러지가 많은 영국인들은 낯선 음식에 주의하는 경향이 더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조선시대에 궁중요리로 시작되었고 생일에 오래 살라는 의미로 긴 면을 먹는다고 설명까지 곁들였던 잡채는 레이시 엄마만 조금 먹어봤을 뿐 레이시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훗날 노리키라는 일본 엄마, 중국 아빠를 가진 친구의 집에 놀러 갈 때 포틀럭 파티 개념으로 준비해 간 잡채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인기를 경험한다. 역시 같은 문화권이다. 그리고 노리키의 생일 파티에서도 일본식 도시락을 점심으로 내놓았는데 거의 고스란히 버려지는 것을 보며 서양인을 처음 초대할 때는 무난하게, 피자, 파스타로 하기로 했다. 이후 레이시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주로 파스타를 해주었는데 서양인에게 서양 음식을 해주고 "Best Ever Pasta in my life"라는 이야기를 듣는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둘만의 영국 겨울살이에 너무 지쳐있어 대인기피 상태였다. 사실 답초대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빚을 덜고자 해갔던 잡채, 그러나 인연은 그리 쉬이 끝나지 않았다.


RSVP 드디어 받아보다!

 노리키네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규모 있는 생일 파티를 한다고 했다. RSVP를 받기 전에 이미 서로의 집을 오갔던 적이 있는 사이어서 낯선 반가움은 아니었지만, 영국에서 드디어 생일 초대 RSVP를 받아본다며 기뻐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노리키는 근처 학교의 강당을 빌리고 축구장에 코치를 한 명 두고 축구를 즐기는 이벤트를 했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좋아하는 프레야는 축구장에서 축구를 했고, 축구를 즐기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강당 내에는 사륜 자전거 같은 탈 것을 마련하였다.

 친구들은 노리키 생일 선물을 준비했고, 노리키네는 답례품으로 소소하게 귀여운 동물이 프린트된 반창고와 축구 심판 노트, 케이크 슬라이스를 아이들마다 들려 보냈다. 아마존에 생일파티 답례품 세트가 나오기도 하고, 내용물은 별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포장백이나 비닐봉지도 흔하게 검색된다. 영국 생활에서는 아마존에 8할은 의존해 살았다.

Boyish했던 노리키의 생일 파티


 노리키는 귀여운 동양인 외모와 우수한 학업, 뛰어난 축구 실력, 개구진 성격으로 학교에서 사랑받는 아이였다. 이듬해 아이의 생일날, 레이시, 노리키 트리오를 데리고 근처 놀이공원으로 생일파티를 하러 갔다. 그날, 노리키네의 셋째 카츠키가 태어나는 잊지 못할 일이 생긴다. 노리키의 엄마 아이코는 아침에 진통이 시작되어 병원에 가며, 출산 때문에 노리키의 아빠의 연락처를 남겼고 노리키를 픽업하러 갔을 땐 출산을 위해 오신 아이코 어머니의 얼굴을 뵙게 되었다. 아무리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라지만, 그런 날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는 번잡함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고 미안했지다. 늘 따뜻한 예의와 핸드폰 문자마저도 문학적으로 쓰던 영문학 전공 아이코는 그날도 한결 같았다. 출산일에 노리키를 데리고 가 주어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고 노리키에게도 정서적으로 좋았다고 해주었다. 있는 그대로 다 믿기엔 어려울 정도로 귀에 달콤한 이야기지만 최소한 불편하게 여기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고, 그녀의 매너와 의연하게 출산을 대하는 모습이 나에게까지 평안이 되어 전해져왔다.



첫 슬립오버! 그것도 영국에서!


 태어나던 때부터 엄마를 유난히 떨어지기 어려워하는 아기였다. 그런데 녀석이 만리타국에서 남의 집에서 자고 온다니. 그걸 네가 선뜻하겠다고?


 이듬해 다가온 레이시의 생일이었다. 규모있던 노리키네의 생일 파티와는 달리 정말 프라이빗한 생일파티를 기획할 거라는 이야기만 여러 달 전부터 들었었다. 그리고 정말 그날을 맞이하였다.

 쉘리는 레이시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다시피 한 사촌 언니이자 같은 학교 한 학년 언니인 루비와 아이를 초대해서 슬립오버를 하는 것이 큰 그림이고 소소하게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크라프트 활동을 준비했다고 했다. 아이가 레이시의 컬이 있는 머리를 부러워했던 것을 깨알같이 기억하고는 헤어드레서의 손길로 아이를 모아나로 바꿔 놓은 사진을 보고 혼자 집에서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었다. 보내준 사진을 보니 각자의 이름이 걸린 텐트에 작은 침대 매트가 들어가 있고 아기자기 이름이 새겨진 타월과 소품들이 정말 스윗했다. ‘아, 이런 문화구나.’ 페이스북 광고에도 이런 슬립오버 용품 대여 광고가 자주 떴는데 이런 문화가 있어서 그런 거였구나 싶었다.

 레이시는 코까지 골면서 먼저 잠이 들었다고 했다. 낮에는 크라프트를 하면서 스파에 갔던 좋았던 기억들을 이야기하며 스파에 있다는 설정을 하고 놀기도 했다는데, 좀 뜬금포 아닌가? 하하. 녀석이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았다는 것도 신기했고, 아이는 외려 약속한 시간보다 살짝 늦게 데리러 갔는데도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뿔을 냈다. 아이들이 심심할 새 없이 이벤트를 챙겨 딴생각할 사이 없도록 한다 했던 쉘리의 공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의 또 다른 소득은 루비와 친해진 일이었다. 루비는 레이시와 같이 자라다시피 한 만큼 레이시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래서 학교 야외 놀이 시간에도 레이시를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레이시가 우리 아이를 좋아하고 친한 것을 질투한다고 레이시 엄마에게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온 아이는 그날 루비와 한결 친해졌고, 먼저 코 골며 나가떨어진 레이시를 사이에 두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다며 친해졌다고 밝은 얼굴을 해 보였다. 더 이상의 질투는 없기를! Fingure Cross!!

아기자기 슬립오버 이벤트.
아줌마들처럼 스파놀이라니 ㅋㅋ. 깨알같은 걸리쉬 취향 저격의 생일 파티 답례품

아이들 책을 읽다 보면 Midnight-Feast라는 말이 종종 나왔는데 와 닿지가 않았었다. 한밤 중에 연회라니 무슨 말일까... 레이시 생일 슬립오버에서 돌아온 아이가, 잠이 들었었는데 쉘리가 깨워서 밤 12시에 스윗츠 같은 간식을 즐기고 그대로 또 잠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특별한 날 한밤 중에 간식을 먹는 게 바로 Midnight Feast라는 거구나 싶었다. 7시면 잠을 자러 가는 영국 아이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엔 우리집에서!!


 엄마 거머리 녀석이 그 스타트를 끊었던 슬립오버. 다음은 레이시가 우리 집에 올 차례였다. 두 아이는 모두 오랜동안 자기들끼리 약속을 하고 날이 잡히기만을 엄청 기대했다. 야심 차게 The Works에서 준비했던 크라프트는 이내 끝나버리고 나의 레퍼토리는 똑 떨어져 버렸지만, 아이들은 평소에 규제되었던 허리띠를 풀고 마음껏 먹고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잘도 보냈다.

 평소 세련된 언니 같던 레이시는 잠자리에 누워서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애착 인형의 플라스틱 코와 엄지손가락을 아기처럼 빨았다. 그저 만 6세일뿐인 걸... 서양 아이들은 태어나자 수면 독립을 하고들 하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영락없는 아이였고 아이들은 그렇게 자기들 방에 저녁 7시부터 떨어진 채 애착 인형에 의존해 기나긴 밤을 보내는구나 싶기도 했다. 부러워만 했던 서양 육아가 과연 맞는 걸까? 하는 명제가 동경에서 의구심으로 바뀌는 날이었다. 나는 한국인이니, 한국 엄마 방식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같이 누워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차차 안정을 찾고 잠이 들었다. 레이시는 잠들 때까지 도닥거림을 받아봤던 게 언제쯤이었을까...? 이렇게 서양 아이를 안고 달래 잠을 재울 일이 있을 줄이야...


 보드랍게 밝던 금발에서 상상되던 촉감보다 뻗뻗했던 레이시의 머릿결이 지금도 손끝에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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