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인간관계, 어디까지 엄마가 나서야할까?
이쯤 되면 아이의 학교 적응기인지 엄마의 학교 적응기인지 헷갈린다.
학교 뿐만 아니라 영국에 건너가기 전부터 영국 사회에서 어떤 일원으로 살아갈 것인가 마음 먹은 바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건이었다. 학교를 대함에 있어 동양인들은 자식에게 지나치게 유난하다는 고정 관념을 증명하는 1인이 되고 싶지 않았고, 한국인은 매너있고 교양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일조하고 싶었으며, 자신의 이권만 챙기는 이민족이 아니라 영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려고 융화되려고 노력하고, 전체와 개인을 균형있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다 오고 싶었다. 하지만, 동양인은 약하고(중동아시아 인은 빼도록 하자) 순종적이고 (유럽인들에 비해)영어도 그닥 잘 못할 뿐더러 자기 주장을 못하니 적당히 뭉개고 지나가도 된다는 편견에도 맞서고 싶었다. 그래서 이 사건과 학교에 보낸 이메일은 ‘젠틀과 만만치 않음’ 사이의 평균대를 타느라 한땀 한땀 공을 들여 썼었고, 3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니 영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지금도 잘은 알 수 없지만, 영국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썼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영국에 가기 전에 영국에서는 레터가 정말 중요하고 그 효력이라는 것이 하나의 증거로 작용하기도 하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책에서 읽었었다. 한국인의 방식으로 점잖을 떨며 돌려 말하면 효력이 없다고도 했다. 그 필자는 어학원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Claim 레터 쓰는 법을 배웠었는데, 나름대로는 세게 썼다고 썼지만 이렇게 써서는 그냥 휴지통에 들어가고 말거라고, 몇번이나 강력하게 고쳐쓰고 법적인 사항까지 들먹이고서야 통과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반이나 봐야할 학교와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싶진 않았고 동시에 메세지가 명확한 경고장을 날리고 싶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던 첫날부터 줄곧 불편하게 하는 중동계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게나, 학교를 늦게 들어와서 또래들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때는 아이가 영어나 학교 상황 파악에도 미숙한 상태였기에 정확한 상황 파악은 잘 되지 않지만, 아이가 낯선 공간에는 민감해도 대인 관계에서 상대의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가 그렇게 느낄 정도라면 확실히 그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줄을 서 있으면 밀치기도 하고, Bulling이라고 할 수 있는 사소한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엄마들을 통해서도 그 아이는 여러 아이를 불편하게 하는 나름 기피대상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처음 이민을 가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지는 엄마들은 그런 사건 하나 하나를 학교에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는 상대가 잘못한 일이더라도 자신과 관련된 일이 이슈화되는 것을 끔찍히 싫어하는 스타일이었고, 나 또한 내가 보지 않은 일이고 영국 학교 생활에 미숙한 아이가 한 말을 그대로 믿고 학교에 이야기할 수도 없었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아이들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두고보기로 했었다. 또 사소하게 자주 학교에 이야기할 경우 정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저 동양인은 저런 사람이지’라고 치부해 버릴 것도 경계하고자 함이었다.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사건은 이랬다. 아이가 책상 옆에 서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있던 그 아이가 고의적으로 의자 다리로 아이의 발등을 찍어서 아이의 발가락이 까지게 된 것이다. 상처는 미미했지만, 이것은 실수가 아니고 의도적이고 물리적인 공격이기에 영어를 잘 못하고 내성적이어서 상황을 선생님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온 아이를 대신해 보호자가 리포팅 해야할 사실이었다. 영국에서는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문제를 알리는 것을 한국처럼 고자질로 여기지 않는다. 정당하게 해야할 일이라 선생님들이 귀찮을 정도로 아이들은 아이들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선생님에게 Telling하며, 아이들은 상대가 선생님에게 Telling한다는 말에도 벌써 태도를 바로 잡기도 한다. 서양 사회는 아마도 말하는 자는 사실로 받아들여지며 권리를 찾고 말하지 않으면 없는 존재가 되는 게 문화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항상 따뜻한 관심과 훌륭한 교육으로 아이를 보살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00의 엄마 ㅁㅁ입니다. 아이는 옥토퍼스반이고 lovely한 선생님들이 있는 이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충격적인 소식을 00로 부터 들었습니다.
오늘, 00가 게나의 옆에 서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있던 게나가 그냥 본인의 기분에 따라 의도적으로 의자 다리로 00의 발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00는 발가락이 다쳤지만 다행히도 골절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제대로 찍혔다면 발가락이 부러졌겠지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사고가 절대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다는 점입니다.
게나는 아주 Aggressive(공격적이라는 말과 완전하게 치환되지가 않아서 영어 단어 그대로 써본다.)해왔고, 이 행동은 일종의 공격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는 이것이 Bulling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00는 게나에 대해 학교 첫 등굣날부터 불편함을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단지 00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느낀다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1학년 팀 선생님 모두에게 게나에 대해 더 신경써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와 관련해서 00에게 아무 것도 묻지 말아주세요. 왜냐하면 00는 이 일과 관련해서 관심이 쏠리는 것을 걱정하고 있고 그래서 이 일을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도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00는 더 이상 학교 생활에 대해서 저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건 아이와 부모 사이의 상호 신뢰와 존중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단지 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니 부탁드립니다.
저는 lovely한 우리의 선생님들이 현명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Very best wishes,
ㅁㅁ
온 힘을 다해 썼었구나. 영어도 지금보다 끔찍하게 못하던 내가 말이다. 영어로 쓴 이메일을 찾아 한국 말로 옮겨보니 그때의 심정의 나에게 또 다른 나로서 어깨를 두드려본다. 이메일을 쓰며, 먼저 한국인의 예의상 감사인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사실 학교가 그렇게 자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진심에 없는 말을 과장에 과장을 보태서 첫 인삿말을 썼다. 그리고 영국은 인종차별과 따돌림인 Bulling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에 이것이 그 아이 성품의 문제지 Bulling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도 생각했지만, 일단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Bulling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쓰고 봤다. 여차하면 나중에 카운슬의 스쿨링팀에 학교를 바꿔달라고 해야한달지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근거 자료로 이용하기 위함도 있었다. 영국은 구두 진술도 증거로 받아들여주는 경향이 있다고 들은 만큼 이메일에 기재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정 여부를 떠나 문제 제기했다는 사실을 남기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모든 아이들이 게나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그렇기에 내 아이를 보살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게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아이만 봐달라는 이기적인 부모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쓸데없는 체면도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내 아이를 집중 케어할 수도 없을테고 바라지도 않았으며, 게나를 케어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니까. 마지막까지도 학교에게 호의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선생님들을 강력하게 믿는다고 마무리하였다.
학교는 ‘게나가 친해지고 싶음을 미성숙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전혀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말을 보태 위로와 사과의 답장이 왔었다. 그 멘트는 참말로 구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은영 박사도 괴롭히는 아이가 “친하게 지내려고 그런 거예요.”라고 하면, “우리 아이와 친하게 지내지 마라.”고 하라 하지 않았던가. 게나는 어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많이 다른 이중적인 아이였으며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학교 주변 놀이터에서 만날 일이 있었는데, 우리 아이와 어울려 놀고, 놀이공원 갔던 일, 생일에 받은 선물 이야기들로 쉼없이 나에게 말을 걸며 호감을 사던 그 아이가 바로 그 문제의 아이라는 걸 생각하기 어려웠다.
게나는 나이를 한살 더 먹으며 정말 많이 양호해졌다. 친구들과 나눌 줄 알게 되기도 했는데, 우리 아이는 그게 진심으로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이런 것도 할 줄 안다, 이런 것도 갖고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일정 부분 맞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그 이후로도 게나는 이따금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이듬해 새로온 한국 아이에게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했는데, 그 아이 엄마는 게나와 직접 이야기를 하는 걸 선택했어서 순간 놀랐었다. 영국에서는 웬만하면 부모와 부모 혹은 개인과 개인이 직접 일을 해결하기 보다는 보통 학교라는 다리를 걸쳐 해결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은 조용히 넘어갔는데, 게나는 발뺌을 했고, 잠깐 뒤 나타난 게나의 아빠도 뻔뻔스럽게 굴었다고 했다. 역시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하지만 이 한국 아이의 엄마는 어려서 미국에서 살았기에 영어가 유창했다. 보란듯이 정확하게 따져대니 두 부녀는 숙이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좀 그렇지만, 중동 쪽 사람들은 사막만큼 뜨거운 기질을 갖고 있는 것인지 드세고 거칠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그쪽 사람들을 조심하며 살았다. 지금은 런던 올림픽과 함께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발전된 지역이 되었지만, 무슬림이 모여살았던 런던 동부 지역은 한국인들이 살길 가장 꺼리는 지역이기도 했다고 들었다. 인종에 대한 통념적인 편견은 옳지 않지만, 대충의 성향을 알고 조심하며 살아가는 것은 타지에서 위험을 피해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레터를 쓸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더라도 자잘하게 고민되고 애를 써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친구에 대한 선택 폭도 넓고 대부분 아파트에 사니 한 동네에 친구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주택가가 대부분인 영국에서는 동네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학교에서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겨야 학교를 즐겁게 다닐 테고 하교 후에도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생기길 바랐었다. 학교에서 친구야 아이가 할 몫이지만, 방과 후까지 친구가 되려면 엄마의 역할이 필요했다. 공교육이 시작되는 리셉션 때는 영국 엄마들도 아이들의 교우관계를 위해 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하는 공개 생일 파티도 많이 해서 알건 모르건 초대받아 가서 친구가 될 기회가 많다고 하는데, 1학년이 끝날 때쯤 합류한 우리는 남들이 받는다는 생일 파티 초대나 플레이 데이트 초대 소식도 들려오질 않았다. '초대, 받을 수 없다면 초대해야지 뭐.'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지난번 하교 시간에 "Hi"하고 인사했던 레이시 엄마가 동생 유모차를 밀며 열심히 앞서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속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명랑함을 오버 탑재하고 말을 걸었다. "레시이 엄마죠? 레이시 너무 착하고 친절해요. 우리 딸 옆에 앉아서 늘 칭찬해주고 다시 말해주고, 도와주는 천사 같은 아이예요. 정말 고맙더라구요~" 이런 말에 기쁘지 않을 엄마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얼굴엔 '착하다고?'라는 표정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그날 그녀의 번호를 땄고, 5분이 안 되는 길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아이들이 나오기까지 무슨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했고, 우리 딸보다 먼저 보이는 레이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저기 레이시 나오네요~! 잘 가요, 내일 봐요~" 아, 이제 이 대화가 끝나는구나...
레이시 엄마는 레이시를 알고 있었다. 레이시는 마냥 순하게 착한 아이는 아니었다. 2년 가까이 지내며 지켜보니 Bossy한 성향이라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온순한 아이들을 주로 지배(?)하며 친구로 지냈다. 잠자리에 누워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이가, "레이시가 사과를 다 먹고 버려달라고 해서 버려줬어."라고 했을 땐, 나를 다스릴 침착함과 엄마로서의 순발력이 필요했다. 일단 아이가 눈치채도록 놀라거나 속상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일단은 이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인지, 우리 아이에게만 그러는 것인지 파악해야 했다. 동시에 아이가 엄마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도록도 해야 했다. 은밀한 수사 결과, 레이시는 우리 아이에게만 그러는 것은 아니었고, 우리 아이도 매일 그렇게 부려 먹히는 개념으로 쓰레기를 버려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자기가 해주고 싶을 때는 해주고 싫을 때는 싫다고 한다고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꼭 한마디는 해주고 싶었다. "친구는 위-아래 관계가 되면 친구가 되지 못해. 위에 있는 친구도 아래 있는 친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시시하게 생각하지. 그 친구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동등해져야 해. 네가 싫은데도 시키는 대로 해주기만 한다면 걔는 널 친구로 생각하지 않게 될 거야. 네가 싫을 때는 No라고 해야 해"라고 하며 그날 밤은 끝이 났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 부당한 부탁을 받은 것 같았지만, 아이의 마음에 맡겨두기로 했다. 나중에 어떤 대화 중에 아이는 그날 밤 침대에서 해줬던 이야기를 마음에 잘 담아두었던지 다시 꺼내어 나에게 돌려주었다. 그 이후로 귀국한 지금까지도 레이시는 친구로 남아있으니 우린 서로 잘 지낸 것이리라.
그날 밤 엄마의 마음 한 켠에는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이가 있었다면 인종차별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는 찝찝함도 있었다. 그럴 때 주먹부터 나가듯 마음부터 나가면 정말 힘들어진다. 작은 것 하나하나 다 인종차별로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 또한 약자라는 걸 증명하는 자격지심일 수 있다는 스스로의 자존심도 함께 발현되었던 것 같다. 아직 한국 나이 7세, 만 5세 정도의 아이들이었으니 그런 종류의 구별이 없고 성향이 맞으면 친구가 되고 아니면 아닌, 인종차별이라는 말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나이들이었다. 아이는 귀국 후, Black Lives Matter가 생겼을 때도 무슨 일인지 사실을 알 수는 있어도 지내면서 겪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공감은 하지 못했다.
아이는 그 외에도 놀이터 뺑뺑이를 돌려준 달지,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섞였다. 그건 지금까지도 그렇다. 친하든 멀든 나이가 많든 적든 도움을 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쪽으로 사회생활을 한다. 신세지는 걸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 부모에 그 자식인지도 모르겠다. 바라보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덕분에 트러블을 일으키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