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쓰리지만 행복한 영국운전(4)
아닙니다, 아니에요. 어떻게 이렇게 헤드라이트의 사용법이 동서양 극적으로 반대일까? 우리나라에서 면전에다 대고 헤드라이트를 껌뻑였다고 생각해보면, 그다음 일은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영국에서 헤드라이트 환하게 받으면 행복해진다. 상대가 한번 헤드라이트 쏴주면, 고맙다고 두 번 쏴주면서 커다란 미소를 띠며 지나가면 젠틀한 운전자가 될 수 있다.
하이빔 한 번의 의미는 '내 양보할 테니, 너 먼저 가라'는 의미이고, 그 응대로 하이빔 두 번은 '고맙다'는 인사가 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나라마다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는 것의 의미가 조금씩 다른데, 영국에서는 교통법규 상 “여기 내가 있다.”는 알림의 표시로만 쓸 수 있고 다른 운전자를 위협하려는 의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고 한다. 법규적 신호는 아니지만, “먼저 가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 관례인 것도 사실이라 나와 있다.
하이빔이 아니어도 90도 각도에서 차를 만났을 때, 가슴에 팍 와서 꼿힐 듯한 삿대질로 정확하게 방향을 찔러주는 수신호를 만나면 가슴에 총이라도 맞은 듯해진다. 보통 하이빔을 켜서 주의를 집중시킨 뒤 삿대질을 하기 때문에, 이 이중 콤보에 앗찔해진다. 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이 사이코 거나, 공격인 듯 공격 아닌 신호라는 걸 육감적으로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너 먼저 가라'는 사인이고 참 자주도 만나게 된다. 귀국하는 날까지도 볼 때마다 그 손끝이 거슬렸지만, 가슴 한번 쓸어내리고 손을 들어 고마움의 표시를 했었다. 좀 더 영국인스럽고 싶다면 엄지를 척! 치켜올리며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지어주면 된다. 난 도무지 검지 하나로 무례하게 찌를 자신이 없어서 다섯 손가락으로 '저리 가시지요'하는 손 모양을 하곤 했다.
사실, 주변 한국 지인들이 운전할 때 영국의 운전 매너 인사를 실천하는 걸 본 일이 잘 없다.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한국인 특유의 쑥스러움 때문인지, 무언의 룰을 몰라서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외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대표적인 인상이 '화나 보인다.'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 양보운전에 제스처 인사로 응대하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화나 보이거나 매너가 없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어색하고 쑥스럽더라도 그들의 관행대로 인사를 주고받으면 그 작은 제스처와 소통을 통해 영국 살이가 달콤하게 다가오고 영린이(영국 적응 어린이)를 벗어난 기분에 우쭐해지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