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없는 영국주차
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영국 주차 이야기 좀 해보자. 불만 가득한 티가 났나?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휠이 차의 품격에 가까운 것이라 들었다. 하지만 보도를 걸핏하면 타올라야 하는 개구리 주차와 빠듯한 노상주차 라인 안에 평행주차로 차를 넣으려면 도로경계석에 휠을 갈아붙이기 일수이니 영국에서 휠의 품격은 지나친 사치이다. 차를 팔러 갈 때 한국에서 중개상들은 휠이 어쩌고 하면서 금액을 깎는 게 보통이니 성치 않은 휠을 잔뜩 신경 쓰고 갔었지만, 영국 주차 실정이 이래서 그런지 영국 중고차 매매상들은 휠 같은 건 쳐다도 안보더라는.
영국에서 주차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할까 싶었던 평행 주차를 한 큐에 척하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심지어 도로경계석을 타 넘으며 개구리 주차를 해야 하기 때문에 평행주차 실력은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 한 번에 주차를 못하고 다시 나왔다가 들어갈 때는, 밖에서 보는 이도 없고 차 안에 혼자 있는데도 괜한 자존심이 슬쩍 상하는 날도 온다. 주차 장인이랄까...
한날, 어떤 학부형이 학교 근처에 평행주차를 하는데 "부앙~" 도로경계석을 살짝 타 넘은 뒤 다시 내려오며 예술같이 도로경계석에 붙여 빠듯한 주차 라인 안에 쏙 넣는 신공을 보며 ‘바로 저거!’라며 (마음속으로) 물개 박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런던에 여행 오셨던 엄마가 그렇게 주차하는 날 보고 실수로 올라탄 줄 알고 어찌나 놀라시던지. 유난히 빠듯하게 그려진 주차라인이 있다니깐~
그래도 한국처럼 도로경계석이 높진 않다.
사실 영국은 운전보다 주차가 무서워서 차를 끌고 나가기 어렵게 느껴진다. 주차할 곳을 찾는 게 정말 힘들뿐더러 공짜 주차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할인도 없다.
주차비 내는 기계를 찾아 몇십 미터를 달려간 날이었다. 당장 돈을 내지 않고 차를 댔다고 득달같이 위반 딱지를 끊는 영국이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으니까 열심히 달렸다. 주차위반 단속 요원이 보이면 페이 머신 찾으러 간다고 하고 간 날도 있었다. 그렇게 용인되는 사회가 영국이었다. 신용사회라고 해야 할까? 사실 자전거 탄 주차단속 요원이 다시 돌며 두번째에도 주차티켓이 없으면 발행된다.
주차정산 기계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제까지 주차할 것인지 10분이나 30분 단위로 미리 정하고 돈을 내고 티켓을 받는 것이니 주차권 발매기가 맞겠다. 이때는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한번 주차권을 끊으면 2시간이나 4시간 내에 다시 주차권을 끊을 수 없는 규정이 있는 도로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차량 번호를 입력하고, 시간을 정하고, 카드나 동전으로 지불하면 된다. 카드는 교통카드처럼 Contactless방식으로 “띡”대서 결제할 수도 있고 삽입할 수도 있다. 아! 동전으로 지불할 때 거스름돈은 얄짤없이 팁으로 먹어버리고 주지 않으니 참고하시길. 한 번씩 카드 리더가 안 되는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동전으로 기부를 하게 된다. No change given!
참, 그 티켓은 밖에서 잘 보이도록 올려놓아야한다. 그래서 주차권 발매기에 “Pay & Dispay”라고 마치 기계 이름처럼 써 있다.
길마다 달라도 너무 다 달랐다.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매번 해석이 필요했다. 어떤 길은 주말에는 거주자 주차가 아니어서 주차했다가 아침 일찍 뺐어야 하는데 잊어버리고 월요일 출근하는 바람에 벌금을 냈던 슬픈 기억도 있다. 일단 딱지붙여주고 나중에 레터로 사진과 함께 자세한 위반 내용 공문을 보내준다.
자, 이제 주차 사인 실전 해석을 해보자. 모르고 벌금내는 일이 없도록!
여기는 돈 내고 주차를 할 수 없다. 월~토는 아침 8:30~반 10:30까지, 일요일에는 11:00~10:30까지 다 거주자 주차이다. 영국에서 저 시간 외에 주차할 일이 있겠냐고.
여기는 기본적으로 주중과 주말에는 쓰여있는 시간 동안 거주자 주차이지만, 돈을 내면 최대 4시간까지 주차할 수 있고 그 시간 이후 2시간 내에는 재주차가 불가능하다.
세상 복잡하다. 월~토 8:30~6:30, 일요일 11:00~6:30 거주자 주차이지만 돈 내면 4시간까지 주차할 수 있고 1시간 내에 재주차는 안됨. 저녁 6:30~10:30사이에는 거주자만 주차할 수 있다.
월~토요일 8:30~10:30, 일요일 11:00~10:30 물건 싣고 내리는 것 안됨. 즉, 주차뿐만 아니라 정차도 안 되는 것이다.
어디나 조금 불편한 런던 주차이지만, 특히 런던 시티는 그 유명한 교통혼잡료인 Congestion Charge도 내야 할뿐더러, 런던은 존 별로 주차비에 환경부담금이 부과되어 센트럴 런던은 2019년부터 적용이 되었고, 이너런던(Inner London)은 2021년 10월부터 적용된다. 만약 이 구역 내에 살고 있다면 차를 살 때 매수할 차가 이 규제에 적용 대상이 되는 연식인지 확인하는 것이 예상지 못한 고정지출을 줄일 수 있다.
런던은 시도 구도 주차를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주차를 불편하게 해서 교통량을 줄이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주차를 불편하게 하면서 중심상업지구와 쇄락해가는 부도심 상업지구의 소비를 어떻게 늘리겠다는 것인지 이름만 좋은 Good Growth 작전(?)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앱으로 대형쇼핑몰의 주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시티 사업을 논하면서도 차가 외려 그로 인해 몰려들까 봐 우려하는 것이 회의의 현장이었다. 환경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건데, 경기 진작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싶기도 했다. 도보나 자전거로 와서 ‘물건은 가득가득 사가길 바란다’라.... 공기질이 나쁜 걸로 따지면 영국은 한국에 명함도 못 내미는데, 서울이 기본 10배 나쁜데. 그런 논의를 하던 사이 킹스턴 센터의 로드샵 공실은 눈에 띄게 늘었다. 단순 판매 근로자가 주된 근로인구인 킹스턴, 공기질 잡다가 밥줄 잡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