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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blie May 13. 2021

마흔에도 영어가 늘까?

귀가 유난히 안 좋은 아줌마의 영국 영어 적응기

2년 산다고 영어 되는 거 아니야~

 유학을 다녀온 어떤 사람이 자주하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솔직한 이야기였다. 영문권에 다녀오면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큼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는 게 보통의 부끄럼이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국제 컨퍼런스에 외국인 10명 정도를 연사로 하여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것을 담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영문권에서 유학을 한 직원들이 있었다. 런천 때는 외국인 연사들을 테이블마다 하나씩 끼고 응대를 해줘야 하는데 그들은 저 끝 손길 닿지 않는 테이블에 셋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안되어야지


그게 영국으로 떠나며 속으로 했던 내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6개월쯤 지나면 영어는 편해진다고도 했다. 소싯적 공부 좀 했던 나도 그런 비전을 그렸다. 그 사람이 말한 영어는 어디까지였을까.

 영국 땅에 떨어져 맞닥뜨린 영어는 여행영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 입국 후 하루가 채 안 걸렸다. 정해진 말들을 듣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당히 예상된 대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말은 살아있었다. 건조기를 사러 가고, 은행에 계좌를 트러 가고, 집을 보러 다니고... 수험영어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단어들, 스콜 장맛비를 눈도 못 뜬 채 온몸으로 받아내는 듯했다.


런던은 영어의 용광로

 런던은 인종의 용광로이자, 언어의 용광로 같았다. 일하던 사무실은 영국인, 뉴질랜드인, 중국계 영국인, 파키스탄계 영국인, 중국계 캐나다인, 프랑스인, 리비아인, 나이지리아인이 있었다. 아마 서유럽이나 동유럽쪽 서양인은 국적 구별이 안되어서 통칭 영국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민자가 인구의 50%라던 런던은 판매업이나 부동산업일 수록 유럽에서 온 단순 노동자가 많았기에 단어만 영어였지 얼핏 들으면, 러시아 사람은 러시아어,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어를 하는 듯 들렸다. 그렇다고 영국 본토 사람의 말이 잘 들리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영어 듣기 평가에서 듣던 영국인들의 발음을 구사하는 건 뉴스도 아니었고, 아기들 프로그램인 페파피그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미국 영어를 배워서 그렇다고 핑계를 댔다. 아주 조금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엔 미국 영어도 영국 영어도 다 안됐다. 우습게도 프랑스인이 하는 부드러운 영어가 제일 잘 들리는 순간도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인도인의 영어가 가장 두려웠다. 또글또글 인도 발음, 그들은 영어가 공용어라 거침도 없이 영어를 했으니...

 영국인들의 발음도 각양각색이었다. 마치 노래하듯 오르내리는 억양으로 이야기하는 영국인, 마치 소리를 토하듯 말하는 영국인. 발음이 독특해서 넌지시 물어보면 그들은 모두 런더너라고 했다. 그런 발음인데 모두 런더너라고? 서울말도 그렇게나 지역색이 다양하던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이 배웠든 적게 배웠든 다 worker계급이었겠지만, 가족의 계급이나 직업, 배움의 정도에 따라서 구사하는 영어 발음이 다르다고 했다. 그런 고급스러운 표현과 발음의 영어를 우아한 상류층 영어(Posh English)라고 했다. 새끼손가락을 까딱 쳐든 채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마시는 예법을 배운다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발음이 다르다고 했다. 페파피그에 나오는 영어가 그런 Posh English라고 했다. 하지만, BBC에서는 꼭 상류층 영어를 고집하지만은 않는다. 다양성을 위해서 뉴스에도 잉글랜드 지방의 포쉬 영어를 구사하는 아나운서만이 아니라 여러 지방 억양의 아나운서가 있다. 그러니 영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족족 새로 적응해야 하는 뉴 케이스였다.


Are you all right? No, not at all.

 핫데스크 방식으로 각자의 노트북을 가지고 정해진 자리 없이 일하던 직장에서는 옆에 앉는 사람이 매일 바뀌었다. 나이 지긋하고 늘 깔끔한 차림의 고운 백발의 진짜 영국인 Nick은 출근을 하면 "@*&^%$~?"하고 후루룩~ 말하는데 벙.... "Excuse me?"도 세 번을 넘기는 어렵지 않는가. 점점 대화는 단절되어갔다.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되었다.

 Are you all right?

 아침 인사를 한 것이었다는 것을. "너 괜찮냐?"고 아침 인사를 할 줄 정말 몰랐다. 이런 인사는 외국인은 하지 않는 진짜 영국인들만 하는 인사다. 친해진 아이 친구 엄마 쉘리도 학교에서 마주칠때도 그랬지만, 지금껏 Whats App으로 첫인사를 할 때도 Are you all right? 한다. 가구 매장의 직원도 그랬다. 멀쩡해 보일 텐데 뭘 그렇게 괜찮냐고들..


내 Americano발음이 그렇게까지 후지니?

 나만 곤란한 건 아니었다. 내 영어를 듣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국민 커피점 코스타, 코스타에 들어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킬 때마다 긴장해야하다니..처참하다. 카페 밖에서 구글이 읽어주는 대로 여러번 듣고 따라해보고 하고 있는 스스로가 순간 부끄러워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았다.

a·me·ri·cà·no

 네이버에서 읽어주는 미국식 발음은 A에도 미약한 강세가 느껴지는데 그렇게 발음했다가는 아메리카노 한잔 얻어먹고 나올 수가 없다. 어떤 언니와 “영어 텄을 때”쯤 -그러니까 영어가 힘든다는 진심을 터놓는 것은 친분과 비례한다- 자기도 그랬다며 Americano는 Wood와 양대 산맥으로 한국인이 잘 못하는 발음이라고했다. ‘ca’를 높여서 길게 발음해보라는 말에 그리 해보니 신기하게 100% 성공률이었다. 영어라기보단 살사춤이라도 당장 출듯한 발음인데...싶었지만 통하는 걸. 그 이후 영국을 떠나올 때까지 그렇게 아메리카노를 내돈내산 잘 얻어먹게 되었다. 주문할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with milk?” 라는 말을 알아두자. 우리는 돈도 안내고 우유를 그냥 타준다는 게 어색하지만 영국은 아메리카노에 슬쩍 지나간듯한 맛이 되게 우유를 타준다. 차에 찬(?!) 우유를 살짝 넣어먹는 영국 문화의 하나랄까? 입이 델 듯한 커피만 마시는 내겐 인상 찌푸릴 일이었다. 그래도 체인점에서는 hot milk를 부탁할 수 있다!

 나중엔 Americano를 외치고 No milk, small size를 한번에 읊으며, 자랑스런 커피 주문 마스터가 되었다. 커피 하나 시키고 나라라도 구한 듯 할 줄이야. 아직도 마스터하지 못한 발음이 있다면 발음 갈망을 일으키는 “다앙큐 Thank you!” Thank you가 가장 어려웠어요...

 영국 오리지널 발음이 아니더라도, 일단 대영제국에 속했던 나라의 발음은 잘 알아듣는다. 그러니 인도 발음은 당연하고, 워낙 런던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발음은 영국인들이 잘 알아듣는다. 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그들의 지리관에서) 극동아시아인데, 한중일 중에서도 한국인 발음을 제일 못 알아들어한다. 이유는 결국 접촉 빈도에 따른 익숙함의 차이라고 본다. 일본과 영국은 일본의 개항기부터 인연이 깊고 일본은 이민 역사나 영국 사회에 뿌리내린 주도력이 상당하다. 중국인은 해외 진출 인구 차원에서 접촉 빈도가 높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다니면 “일본인이니?”라고 묻지 않고 “중국인이니?”하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은 생소한 대상이고 한국식 영어 발음에 익숙해질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영국인들은 모국어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알아들어주지만, 본인들도 영어가 제2외국어인 백인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주로 동유럽인들이 식당에서 서빙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도 영어가 서툴고 우리도 영어가 서툴러서 서로 어려워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 영어만 문제인가 했다. 백인인이니 처음에는 영국인과 구별이 안 갔다. 살다 보니 그들도 영국인이 아니기에 자기들도 영어를 어려워해서 내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한국 여행객이, 영국 레스토랑에서 영국인이 대답도 잘 안 하고 불러도 잘 안 오고(사실, 보통 영국인에서는 부르지도 손을 들지도 잘 않는다 눈 마주치기만을 기다린다. 속 터져 죽을 것 같다.), 자기가 영어를 좀 하는데 못 알아들은 척한다며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들었는데, 난 생각이 좀 다르다. 미국에서 짧게 공부를 한 듯한데, 그렇다고 미국인 발음은 아니지 않은가. 아주 어릴 때가 아닌 초등학교 고학년에만 가도 원어민이랑 발음 차이가 난다는데, 미국인 영어는 알아들어도 미국 비슷한 발음은 영국 비슷한 발음보다 더 알아듣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영국 영어에 더 친숙하다. 그들은 영국인이 아닐 가능성도 매우 높고, 인종차별을 하기엔 본인들 앞가림도 바쁜 사람들이다. 빠듯하게 서빙 직원을 고용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식당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대상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음식점 등 단순노동 고용자들이 많은 곳에서 내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주눅 들지 말자!

 다행히 사무실 사람들은 나의 영어에 익숙해져 갔다. 내가 말을 하면 인상을 쓰고 초집중해서 들으려 애쓰던 그들도 언젠가부터는 좀 더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실 직원들의 이직 빈도가 너무 높은 게 문제였지만, 사무실 동료들의 영어는 그들과 접촉 빈도가 늘어가며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의 영어에 트레이닝 시간이 또 필요했고, 매번 다시 영어 초보가 되는 좌절감을 마주하였다.


새로운 상황에서는 늘 다시 영어 초보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마트 계산대에서 영어가 덜컥 걸릴 줄은 몰랐다. Do you need a bag? ↗↘ㅡㅡ↗? 영국 영어는 노래하듯 강약과 오르내림도 심해서 you bag밖에  들리는 데다가 Plastic bag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해서, “ Bag?” 무슨 말일까 당황했었다. 그랬던 마트에 제집 드나들  가고, 처음에는 여행객이라 생각했는지 물어보지 않던 멤버십도, 어느새 그곳 생활인으로 보이도록 익숙해 보였는지, "만들 거냐?" 이야기에 멤버십도 만들어보았다. 그렇게나 두려웠던 인도 영어가 난무하는 우체국에 가고, 학교 오피스에 가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영어는 어느 정도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갔고,  알아듣지 못하거나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을 더이상  만나게 되었다. 살금살금 편해진  6개월에서 1 사이쯤이었나 보다. 남편은 없었지만, 보통의 남편과 함께 사는 영국 아줌마로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진정 남편없는 아줌마로 우뚝 서도록 고난을 준 것은 클레임이었다. 폭설로 인해 기차가 취소되어 Euston역에서 버밍엄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게 되어 환불 건을 전화로 따져보기도 했다. 가장 무서운 은행 영어! 그걸 전화로 해결한 일도 있었다. 비밀번호를 몇 번 틀려서 은행 시큐리티 Lock이 걸려서, 인도인 상담사와 산을 넘고 또 넘어 텔레뱅킹을 신청한 뒤, 시큐리티 질문들에 대답하고 Lock을 풀었던 날, 모든 체력은 방전되었고 승리감에 들떴었다. 물론 쉽게 듣고 대답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은 정말 '내가 지렁이 뇌를 가진 것일까?'싶었다. 그저 해냈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이제 영어 좀 하잖아!? 어딜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아.'라고 생각하던 그때, 아이가 한국에서 크라운을 씌웠던 이의 잇몸에서 고름이 잡히고 터지고를 반복했다. 치과에 가야 했다. 아.. 새로운 영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 아이의 건강을 걸고 똑바로 알아들어야 했고, 똑바로 질문하고 의사전달을 명확히 해야 했다. 나의 영어를 실험하다 아이를 담보 잡힐 수는 없었다. 영국에서 보딩스쿨로 고등학교를 다니고 UCL에 진학하고 보험사에 취직했던 한 다리 건너 지인이 있어 동행을 부탁했었다. 그녀도 치과 같은 병원 일은 방학 때 한국에서 처리해서 소통에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어려움을 아는 만큼 흔쾌히 함께 겪어보자고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 그것도 좋은 대학교를 나와 취업을 해도 영어 앞에 체면을 차려야 하는 게 영어구나 위로를 받았다.

 그날, 역시나 기차는 연착을 하였고 그녀는 진료가 다 끝나고서야 도착하였다. 고로, 홀로 병원 영어를 맞이하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 NHS 병원에 영국인 의사가 없는 것이 보통이듯 동유럽 의사였다. 기본적인 질문이었던 수면 치료를 해본 적 있느냐는 말을 의사는 Sleep Treatment 같은 쉬운 말을 써주지 않았다. Hypnosis... 가기 전에 이런저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여 치과 관련 어려운 단어들을 찾아보고 떠났지만, 현장에서는 당황해서 인지도 잘 안되었고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국 의사 같았으면 쉽게 다시 설명해주었을 텐데 동유럽 의사는 친절하지 않았다. "됐다"며 넘어갔다. 간호사가 촌음 같은 시간에 뱉어준 쉬운 말 덕에 그게 그것인 줄 알고 대답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기분이었다. 그날의 영어 좌절감은 저녁 식사 준비할 힘을 모두 앗아갔다.

 아.. 아직도 멀었는가....


 이듬해엔 벤츠 지부랑도 논쟁을 벌여야 할 일이 있었고, Customer Protect라는 차 보증 관련 보험사와도 EGR의 보험 보상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보통의 일은 웬만하면 이메일로 일을 처리했다. 글은 정확하게 전달하고 답을 받을 수는 있지만, 처리 속도가 너무 안 나온다. 속도가 떨어져서 당해야 할 수도 있었다. 격이 필요한 곳이어서 그랬는지, 벤츠는 전화받고 교환해주는 사람이 유일하게 영국인인 곳이었다. 인도인이 아니어서 감사했다. 연결원만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게다 무상 수리에 대한 논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많은 실랑이와 수차례의 증빙 끝에 나의 승리가 되었다. 그 과정엔 이메일을 한번 보내면 이 일련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교환원에게 전화해서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하면 상담 중이니 전해주겠다는 통화를 다섯 번쯤 하고, 이메일 보냈으니 확인하고 대답해달라는 이야기, 당신이 한 이야기를 내가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확인이 필요하니 이메일로 다시 한번 이야기한 것을 보내달라는 이야기..’ 이걸 몇 회차쯤 했을까, 한국에 살았더라면 그럴 필요 없었을 언어 노역 끝에 한 성취였다.

 Customer Protect와 통화할 때는 자동차에 대한 기술과 부품 용어부터 보험 용어까지 알아야 해서 무시무시했다. EGR이라는 모르는 단어는 무엇의 약자인지 물어보고, 그게 차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순간적으로 판단했고 부품을 일부 밸브만 가는 방법과 전체 가는 방법의 차이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말을 온전하게 알아듣는 걸 기대할 수는 없었기에, 상대가 말해준 것 중 불분명한 것을 하나하나 쪼개서 "이게 맞니"하고 되질문해서 상대로부터 Yes or No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정보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미국에 갔을 때는 우체국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영어를 못한다고, 천천히도 말해주지 않고 계속 빠르게 몇 번 말해주고는 무시해버려서 울며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었는데, 부족한 사람에게는 더 (억지)친절하려는 노력이 있는 영국이라 참 다행이었다.


나만 그랬을까?

 공부라곤 아쉽지 않게 했을 회계사 내외도 미국 유학에서 귀국하며 ‘이제 컴플레인 전화를 니미락 내미락 하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하다.’했다. 대학을 영국에서 나왔던 사람도 교회 목사님이 “아내는 중학교부터 영국에서 다녀서 영어가 편하겠지만, 어려우시겠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한국어도 초중고 동안 쌓아 올린 대부분의 능력으로 평생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영어란, 그렇게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2년이 지나고 귀국 정리를 해야 할 때, 수도, 전기, 핸드폰 통신사, 정수기 등등 전화해서 끊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여전히 전화를 걸 때 큰 숨을 한번 내쉬고 해야 하는 건 맞았지만, 그래도 전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 변화였다.

 그럴 줄 알았다. 영국에서 2년 정도 살면 영국인 인생친구도 한둘쯤 생기고, 직장 내에서 단짝도 생기고, 생각하지 않아도 말이 술술 나오는 그런 내 언어가 되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초중고 대학까지 다 나온 한국에서도 인생 친구, 그나마 어렵게 생긴 인생 친구도 그런 거 같다가 아닌 거 같다가 하는데 무슨 행운으로 영국에서 베스트 프렌드가 그렇게 쉽게 생기겠냐. 한국 직장에서도 피상적 관계일 뿐, 진솔한 대화 오가는 친구가 생기는 게 더 신기한 곳인데, 어차피 떠날 것 아는 외국인에게 직장에서 단짝이 생길 건 또 뭐람. 생각하지 않아도 말이 술술 나오는 것? 자기 언어처럼 영어를 하게 된 아이도, 어른들 상황의 대화는 알아듣지 못하는 건 경험과 지식, 문화의 부족이니, 어른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엄마들 사이의 사교생활을 열심히 했다면, 교육이니 생활이니 아줌마 세상 영어가 늘 것이고, 젊을 때 대학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귄다면 런던의 힙한 젊은이들 문화와 영어는 정통할 것이지만, 부동산, 자동차 등등 가족생활과 관련된 영어 앞에서는 또 약할 수 있다. 결국 영어 상황의 노출과 빈도에 따른 것인데, 우리가 한국에서 자란 만큼 모든 상황을 겪고 나서야 이루어질 것이었다. 차라리 미드나 영드에 중독되는 게 고립된 영국 생활보다는 영어를 늘리는 데에 빠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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