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로운 영국학교생활
세계 책의 날. 요즘은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도 세계 책의 날이 되니 책꾸러미를 받아가서 독후활동을 하고 제출하는 행사를 하긴 했다. 참 우리나라스러운 방식의 행사이다. 영국은 참 영국다운 행사를 한다.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학교에 파자마를 입고 오세요! 커들리 인형을 갖고 와도 좋아요.
왓?! 학교에 잠옷을 입고 애착 인형을 갖고 간다고? 이 행사는 BBC의 어린이 채널인 Cbeebies의 저녁 7시가 되기 전에 반영되는 Bedtime Stories를 떠올리게 했다. 정말 서양 아이들은 7시에 자더라는 놀라운 사실과, 티비 아이들 채널에서 자기 전 책 읽어주기를 유명인들이 나와서 읽어주는 게 참 문화적여보였다. 영국은 한국에서는 모두 부모의 역할들인 것을 나라와 학교가 나눠해 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식에 대한 평균적 애착과 열정이 한국만 못해서인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한국의 책 행사는 Task중심이라면 영국의 World Book Day 행사는 책에 대한 긍정의 감정을 키우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는 극명한 느낌적 차이가 있다. Cbeebies에서 우리가 늘 알던 유명인들이 나오면 일단 관심이 갈 수밖에 없고, 나직하고 편안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다정하게 읽어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안정이 절로 찾아온다.
책은 좋은 것이야~
잠자는 것도 평안한 것이야~
어둡고 두려운 낯선 세계가 아니야~
이 같은 마성의 주술이 걸려온다. 학교에서도 이런 정서적 행사를 한다니 얼마나 좋은가?!
아이들은 진짜로! 잠옷을 입고 등교했는데 등굣길에 보니 우리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학교도 같은 행사를 하는지, 길거리가 온통 파마자였다. 학교에서 올린 사진을 보니 아이들은 참으로 편안하게 기대거나 누워서 커들리 인형을 안고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아야기를 듣고 있었다.
학교 수업 시간이나 도서관에는 인기 동화 작가 와서 책을 읽어주는 행사도 있다. 인쇄물로만 느껴지던 동화책들이 살갑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는 책을 살 수 있는 무료 쿠폰도 나누어 주었다. Bentall Centre에 있는 WH Smith, Waterstones에서 지정된 코너에서 책을 골라서 쿠폰과 바꿀 수 있었고, Blackwell, Eason, John Smiths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처음 이 레터를 받았던 건 영국에 간 첫해였던 2018년이었다. 학교에서 레터가 왔을 때만 해도 아이가 학교에서 글을 써서 공모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학교 수업시간에 글을 쓰고 아이들이 다 같이 출품했던 것이었다. 아직 만 6-7세의 아이들이 쓴 글이니 스펠링 같은 것을 고쳐서 책을 발간하는데 실어도 되겠느냐는 동의를 구하는 레터였다. 영국은 2-3학년 때 쓰기를 매우 중시 여긴다. 1학년 때는 파닉스에 맞게 글자를 쓰고 2학년 때는 그것이 완성되어야 했고, 2학년에는 이와 같이 약간은 문학적인 감각을 익혀가고 표현하는 것을 한다. 영국의 수업들을 보면 일부가 아니라 모두가 문학적 스피릿을 공통의 가치로 일궈 나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3학년이 되면 손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 집중하는 주제를 갖게 된다. 3학년이 되면 2학년까지는 필통도 없이 등교하던 아이들이 펠트팁펜, 만년필 같이 정확하게 필기도구를 준비하는 것을 학교에서 안내한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정신적 물리적으로 쓰기를 중시하는 것이 영국이었다. 그때는 ‘타이핑의 시대인데 너무 아날로그적인 거 아냐?’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이가 학년 진학을 해보니 글씨를 단정히 쓰는 것은 글씨 외에 태도나 집중력 등 여러 방면으로 중요했다.
출간을 동의하고도 몇 달이 지나고 책이 안 나오는 건가 포기하고 해가 바뀌어서야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목차를 보고서야 알았다. 역시 영국이었다. 누가 진짜 작가 소질이 있는지 평가해서 상을 주고 출간했다기보다는, 아이들이 글쓰기에 흥미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되도록 많은 아이들이 글을 출품하고 책에 실어주는 행사였던 것 같다.
아이는 8월, 사슴들의 활동이 활발해져 리치몬드파크 자동차길 변에서 사슴 떼가 쉬고 있을 때 먹이 주었던 일을 일기로 써서 제출했던가보다.
2019년에는 아이들이 시 쓰기를 배웠고 시 공모전이 있으니 다양한 시의 형식 중에 하나 골라 써 오라는 숙제를 받아왔다. 아이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환상을 가득 담아 따뜻하고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아침에 대한 시를 썼다. 2018년에 출간 신청받은 책도 2019년에 받았는데 2019년에 신청한 책을 귀국하기 전에 받을 수나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출국 전에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때도 많은 아이들의 글이 수두룩 실렸다. 아이들이 쓴 시 몇 편을 구경해보자.
이 상과 출간이 상술인지 교육적인 것인지 사실 조금 헷갈린다. 책 한 권을 받는데 11파운드 2권에는 17파운드 그랬던 것 같다. 실상 책은 그저 인쇄물 같은 페이퍼북인데 가격도 상당히 비싸지 않은가. 아이의 글이 실린 간행물을 갖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들의 글부심 그리고 상술이 저 어디쯤에서 균형을 맞춰 만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만, 글쓰기를 시작한 다수의 아이들이 '나 글 좀 쓰지, 난 글쓰는 거 좋아해'하는 자의식을 갖게 되어 좋은 시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에서 만큼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싶은 좋은 프로그램 기획이다 싶다.
아무튼, 영국은 아이들이 책과 두루 가까이 지내는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