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히드로에 도착했다.
18평 복도식 아파트, 아마도 집이 복도 같아서 복도식 아파트였나 싶게 좁다라한 집에, 빚잔치 신접살림을 차릴 때였다. 그래도 신혼은 누구나 그렇듯 카페같은 집을 꿈꾸며, 복도 같은 집의 복도 벽에, 캔버스 프린팅 된 세계 유명 도시 4개 세트 사진을 나란히 건 일이 있다. 그 사진들은, 파리 에펠탑, 뉴욕의 옐로 캅, 베니스의 곤돌라, 그리고 런던 빨간 2층 버스였는데..
그때는 그저 바라만 볼 로망이었을 뿐, 4개 도시를 다 정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파리는 유학이 꿈이었던 건축학도의 여한으로, 신혼여행 때 파리 라데팡스에 깃발 꽂으러 갔다가, 라 그랑데에서 샹젤리제를 바라보며 한 맺힌 눈물을 흘리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하며 클리어했다. 하필, 모두가 썬베드에 누워 행복한 그곳에서 동양인 관광객이 말이다. 그게 내 인생, 유럽 여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다음은, 첫 아이를 유산하고 이 나라와 하직하고 싶다며 홧김에 뉴욕을 질렀다. 역시 유학이 꿈이었던 재미없는 처자는 미국에 가서도 남편을 내비게이션 삼아 아비리그 투어를 했다. 돌아오는 11시간 비행기 안에서, 이제 이 남자와 이대로 비행기 추락해서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 했더랬다.
그래도 또 평범한 직장인으로 노역하며 사니, 평생소원이 유럽 이민이었지만 서구 여행 한번 못 가신 엄마가 이대로 돌아가시면 내가(?) 눈을 못 감을 것 같아서, 베니스 환갑 여행 빚을 땡길 형편 정도는 되게 되더라. 그때, '평생에 유럽 여행을 두 번이나 했으면 평생의 운을 다 썼구나.' 했다. 그게 내 서민적 인생이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하나가 런던인지 인식조차 없었다. 그냥 뻘건 게 하나 섞여 있으니 화색돌고 사진들 조화도 맞고 나쁘지 않네, 정도? 유럽 살이 소원은 엄마로부터 대물림되어, 모태 소원이었건만, 왜 영국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관심, 1도 없던 영국 행. 그 시작은, 어느 날 콩 한알 같은 작고 막연한 희망으로 시작되었다.
|| 그렇게 돌고 돌아, 한국에 남겨놓고 간 짐구석에서 뒤적거려, 10년 전 그 사진을 5년 여 만에 다시 걸어보았다. 빨간 2층 버스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버스 안 깊숙이 들어가 있다. 기사에게 늘 인사를 하고 내리던 런던시골인들(런던시티는 좀 다르다.), 끊임없이 말을 걸던 영국 할머니(할머니들은 어디나 다 똑같다.), 그리고 존 루이스 백화점에서 갓 산 인생 첫 스카프를 놓고 내렸다 되찾은 그런 해프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