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목구멍에 풀칠을, 영국마트 섭렵기
영국 마트로는 Waitrose, M&S, Sainsbury's, ASDA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물론, 코스트코도 있고 테스코도 있고 독일계 기업인 Aldi와 Lidl도 흔히 가는 마트이지만, 영국 현지 마트라고 한다면 앞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각 마트들은 우리나라의 현대백화점 식품관, 신세계백화점 식품관,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과 같이 제품의 라인업이 조금 다르거나 가격대의 차이들이 있기도 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녔지만 2년을 살다 보니,
디카페인 얼그레이가 필요하니까 Waitrose,
아 크리스마스 옷이나 소품들도 볼 겸 M&S,
역시 두루 편한 건 Sainsbury 지,
Flat peach철이다! 납작 복숭아는 ASDA가 제일 싸고 맛있지!
이렇게 마트를 골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한 살림 같은 협동조합형인 Co-op도 있고, 한철 옷, 신발, 미용용품, 인테리어용품까지 싸게 살 수 있어서 서민의 삶을 지탱해주는 Primark와 한국에도 들여오고 싶은 할인의 왕 TK Maxx, 이제 재미 쏠쏠 마트 탐험을 해보자.
워털루 역에도 있는 Waitrose는 침구류로 유명하다는 John Lewis 백화점의 소유주인 John Lewis Partners 소유의 마트이다. 그래서인지, 런던 서남부 상업 중심답게 킹스턴의 Clarence Street에는 웬만한 쇼핑 브랜드는 다 모여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John Lewis 백화점이 있었고 같은 건물 지하에 Waitrose가 있었다. 느낌적으로는 제품의 라인이나 가격대를 볼 때, 백화점 식품관 같은 느낌이 있는 곳이다. 같은 신세계이지만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식품관의 제품 라인과 가격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처음엔 멋모르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Waitrose는 특별히 필요한 것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잘 가지 않았다. 크게 먹을 것 마실 것 욕심이 없던지라 소박하게도 Twinings Earl Grey 디카페인은 다른 데서는 팔지 않았고, 같은 Innocent Juice인데도 모든 마트에 Apple 주스는 있지만 Apple & Elderflower는 꼭 Waitrose에만 있었기에 그 두 가지를 사고 싶을 때는 꼭 Waitrose를 갔다. 그리고 꽃들이 유난히 튼실하고 탐스러웠는데 그중에서도 작약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Marks & Spensor를 줄여서 M&S라고 부른다. 여기는 보통 과일이나 식품류가 좋다고들 하는데, 사실 그냥 과일은 어느 슈퍼에서 사든 때를 잘 만나야 맛있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M&S는 PB상품들이 맛있었다. 특히 비린내를 싹 잡아 구운 캐슈너트 위에 구워진 꿀이 바삭하게 붙어있는 허니 캐슈너트는 잊을 수가 없다. Sainsbury의 24개월 숙성 치즈를 올려먹던 치즈 크래커도 바삭거림과 적절한 짭짤함과 담백함이 어우러진 M&S 치즈 크래커가 최고였다.
다양한 맵기와 풍미의 반조리 카레 제품도 퇴근길에 쓱 들러 백팩에 툭 넣어오면, 타지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저녁 한 끼 준비를 그럴싸하게 도와주었다.
무엇보다 다양한 범주의 상품 카테고리들을 갖고 있는데, 식품군 마트도 있지만, 의류, 잡화, 인테리어군도 있다. 의류나 잡화는 중가 정도의 나름 내구성 있는 제품을 철에 따라 기분 좋게 살 수 있었고, 특히 아이들 교복의 종류가 다양하고 질이 좋아서 아이 교복과 구두를 살 때 자주 갔다. 결혼식이나 파티문화가 있는 영국인만큼 머리 장식이나 장신구들도 제법 있다. 마트 2층 잡화코너에서 샀던 퀼팅 백은 다른 가방 다 놔두고도 자꾸 손이 가서 2년 동안 유럽여행을 다닐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휘뚜루마뚜루 잘 쓰고 있다.
뭔가 가장 평균이라고 느껴지는 마트가 Sainsbury's였다. 제품 라인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고 만만하고도 편안한 구성에 깔끔한 매장, 유기농 제품 선택권도 나쁘지 않을 만큼 많고, 규모도 가장 크고 그래서 그랬는지 가장 많이 갔던 마트였다.
Norbiton역에는 작은 Sainsbury's가 있었는데, 거긴 시내로 출장이나 교육을 갔다 오거나, 아이와 시내 견학을 다녀오면서 휙 둘러서 또 급한 대로 백팩에 무겁도록 담아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비닐봉지나 종이백을 사람들이 많이 쓰지 않았다. 영국에 가기 전에는 그냥 가방에 마트에서 산 물건을 담아 온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는데, 다들 낡아빠진 장바구니를 챙겨 다니거나 휙휙 가방에 넣어갖고 가거나, 손에 들고 간대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기에 퇴근하며 들른 마트에서 노트북 백팩에 또 식료품을 꾹꾹 눌러 담으면 어깨가 빠질 듯하면서도 설핏 영국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영국에서는 꽃이 참 쌌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와 둘이 장보기를 간 날이면, 아이에게 꽃을 고르라고 했다. 2파운드짜리 꽃다발도 많았고, 이스터나 할로윈, 크리스마스 같은 날엔 5파운드 짜리면 꽤 그럴싸한 꽃을 살 수도 있었다. 5천 원에서 만원 돈으로 늘 집은 꽃으로 풍요로웠다.
ASDA는 네 군데 마트 중에 가격이 가장 착한 마트였다. 그중에서도 채소와 과일이 정말 쌌다. 주차도 편하고 집에서도 가까워서 쓱 가서 저렴한 가격에 식재료를 사다 냉장고에 채워넣곤했다. 다만, 지금은 한국도 유기농, 친환경 제품이 특정 매장을 가지 않고 보통 마트를 가더라도 상당히 있지만, 영국은 한국보다 유기농 제품들을 다양하고 싸고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ASDA가 유기농 제품은 상대적으로 다른 마트들에 비해서 적은 편이라서 방문 우선순위에서는 조금 밀렸였다.
하지만, 전기구이 통닭이나 치킨류 따끈따끈하고 저렴하게 바로 사 올 수 있었고, 매그넘 아이스크림 6개 들이를 2파운드, 단돈 3,500에 자주 할인 해 파는 곳이었다. 아이스크림 쟁이 어른과 아이는 ASDA를 갈 때면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을 세일하는지 늘 살폈다. 참, ASDA에는 한국 라면이 있어서 정말 반가워했던 기억이!!
2019년 하반기쯤에는 아직 한국에 없는 스마트 체크아웃 시스템이 생겼다. 계산의 발전 단계를 보자면, 대면 계산 → 무인 계산 → 그다음 단계가 바로 스마트 체크아웃인데, 물건을 내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바로 휴대용 단말기에 바코드를 읽어서 마지막에 단말기를 읽혀서 계산만 하면, 마트 장바구니에서 계산대로 옮기고 다시 내 장바구니로 옮겨 담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처음 무인 계산이 도입되었을 때도 '계산을 모두들 잘한다고 어떻게 신뢰하지?'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방식 같아 보였다. 실수로 바코드가 스캔되지 않을 수도 있고, 중복 스캔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여하튼 새로운 거니까 재밌는 거니까 해보기로 했다. 비치되어있던 Nextar카드를 하나 소지해야 했고 단말기를 들면 되었다. 아이도 재밌어해서 아이에게 시키면 척척해냈고 바로 계산만 하면 되니 훨씬 간편했다. 지금은 그마저 단말기도 필요 없고 핸드폰으로 스캔하고 바로 계산도 가능한 것 같다. 지하에서 와이파이는 커녕 통신도 안터지던 영국은 아이러니하게도 IT "소프트웨어" 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