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주택가에 크리스마스가 내리면

이건 분명 커튼 트위처가 되어 훔쳐봐 달라는 것이다!

by Scribblie

Curtain Twitcher


동지에는 4시면 해가 지는 긴 어둠이 넉달쯤 유지되는 겨울 탓일까? 아니면 지루할 만큼 안온한 삶 때문일까? 점잔 떨고 예의 다 차리던 영국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면 응접실 커튼 사이로 길거리의 사람들, 남의 집을 흘깃거는 커튼 트위처가 되다니. 요즈음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는지는 몰라도, '커튼 사이로 훔쳐보는 사람'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요상한 사람의 특별한 취미인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커튼 트위처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런던 서남부 빅토리안 스타일의 주택이 들어선 킹스턴엔 12월 언저리가 되면 집집마다 크리스마스가 내린다.

런던 킹스턴 12월의 정경


성냥팔이 소녀가 되다


영국 주택의 응접실은 보여주기(Show-off)하기 위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옛날 벽난로에 멋들어진 서가로 꾸민 집, 엔틱한 가구로 당장 에프터눈티가 서빙될 것 같은 응접실을, 길가던 이들이 훤히 보도록 커튼을 열어두는 것은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응접실을 보아달라는 것 아닌겠는가. 그런 응접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천장에 닿을 듯한 생나무에 수년간 차곡차곡 마련했을 핸드메이드 장식들을 달아 크리스마스 트리를 선 보이는 공간이 된다.

크리스마스의 온화함이 흘러나오는 집안을 슬쩍 훔쳐 보고 있노라면, 성냥팔이 소녀가 따뜻하고 행복한 노오란 불빛이 넘실거리는 어느 집 창을 들여다 보는 장면이 겹쳐온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19세기 유럽 노동 전선에 있던 하층민 아이들이 창 너머로 중산층 가정을 부럽게 바라보던 흔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들여다보고 싶은 응접실


크리스마스 풍경을 나눠요 - 리스


어둠이 일찍이 밀려오는 겨울 거리, 일상의 걸음을 잠시 멈추면 알 수 없는 따스함과 평온함 그리고 부러움도 몰려온다. 집집마다 삶을 가꾸고 누리며 살고 있는 모습은 길을 지나는 이와 나눠가지는 느낌이 있다. 영국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Share”


정작 집안에서는 볼 수 없는데, 그 예쁜 리스들을 현관문 밖에 걸어두었다. 현관문마다 무심히 달린 줄 알았던 리스들을 발걸음 속도를 늦추고 유심히 바라본다. 어느 새 갈길은 잊고 리스를 따라 골목골목 새로운 리스들을 발견하는 것은 이방인의 보물찾기 놀이가 된다. 집이나 현관문의 디자인과 색상에 맞춰 제 각기 다 다르게 연출한 리스들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읽힌다. 타국에서 온 이방인의 마음에도 노오란 온기가 전해온다.

집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신경써 분위기를 살린 리스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런던의 중산층이 아니었던 나는 비록 플랏(아파트)에 살았지만, 아파트 문 앞에 리스를 걸고 집안에도 킹스턴 마켓에서 단돈 3.5파운, 우리 돈 5천원 돈에 사온 생화 리스를 걸었더랬다.

11월 말 겨울의 문턱에 이렇게나 화사한! 리스를 업어온, 가격도 착한 킹스턴 마켓 꽃시장
로라애슐리에서 할인 가격에 사서 문밖에 걸었던 리스, 그리고 킹스턴 마켓에서 사서 집안에 걸었던 베리가득 생화리스


흔한 여행에 지치셨다면, 런던 워털루역에서 기차에 사뿐 뛰어오르면 20분. 평범 따뜻한 영국인의 보통의 삶 안으로 들어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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