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시크릿 산타

스크루지의 크리스마스 여행-직장,사회,이웃,가정

by Scribblie


2019년 12월 10일. 아침은 그렇게 시작하였다. 회사에 도착했고, 평소와 같이 이메일을 열었다.

한나의 시크릿 산타 공지. Stranger에겐 또 하나의 두려움이자 문화 배움.


시크릿 산타?


또 다른 문명의 낯섬이 불쑥 다가오누나... 영국의 생활은 언제나 호기심, 설렘, 두려움 범벅이었다. 시크릿 산타라니... 대체 그건 뭔데 하자는 걸까. 외국인이니까 물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직장 사회생활을 하는데 일상에서 하나하나 안 걸리는 것 없이 다 걸리다 보면 의기소침해지고 점점 물어보기가 어렵게 된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알아왔을 것을, 상대에게 '오! 그런 걸 모르는구나, 한국엔 그런 게 없구나.'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게, 그게 부족함이 아니라 다름임을 알면서도, 남에게 그런 모습을 내보이는 게 난감하게 느껴지는 나에겐 간단한 질문조차도 어려웠다.

아 또 한 번 바보가 되자, 각오를 하고 메일을 보낸 한나에게 물었다.


방법은 팀원들 이름이 적힌 종이 뽑기를 한다. 선물을 하는 사람은 받을 사람을 알지만, 받는 사람은 누가 준 지 알 수 없다. 소액의 선물을 사고, 조용히 주관자에게 선물을 건낸다.

나는 훗날 매우 밀접하게 일하게 되는, 유난히 정중한 로버트를 뽑게 되었다. 그를 생각하며 유명 마트인 막스 앤 스펜서로 향했다. 남자! 그것도 외국인!의 선물을 고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코너에 놓인 다스베이더 버블 바스를 본 순간 "이거다!"했다. 스타워즈 싫어하거나, 하다못해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크리스마스 점심'을 하는 날에 내가 준비한 선물을 받는 사람의 표정을 시크릿!하게 속으로 웃으며 지켜보는 재미가 이렇게나 몽글몽글할 줄이야. 싫어하면 어쩌지, 좋아하려나, 나처럼 저 선물이 재치있다 재밌다 생각할까? 조바심 내며 지켜보았다. 포장을 열고, 다스베이터의 모자를 벗긴 로버트는 옆에 앉은 직원과 킥킥 웃는 것을 봐서는 성공이 아니었을까!

"내가 니 선물이다~" 로버트에게 선물했던 다스베이터 버블바스. 잘했어요! 막스 앤 스펜서!


그날 사람들이 받은 선물들을 보면, 모두들 상대를 고려해서 선물을 고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년을 앞두고 있었던 앤드류, 늘 힘 있고 정중하지만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그에겐 "You are never old!"라는 의미 있는 문구의 카드와 선물, 어린 남자아이를 자녀로 둔 리사에게는 과학키트를 선물로 하였다.

두둥, 크리스마스 런치! 아들들의 과학 키트를 받은 리사는 매뉴얼을 읽으며 사뭇 진지하다.
나의 시크릿 산타 선물은! 센스있게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쓸 수도 있고, 그 안에는 비누가 들어있다. 아.... 누가 보낸지 알 것도 같다. 저렇게 약간의 힌트를 주는거구나.


이메일에 써 있는 타이음식점 코코넛, 그린커리는 정말 맛나다. 한국인 입맛에도 딱! 그 맛이 그리워 귀국하고 우연히 타이 음식에서 먹어봤지만 아쉽게도 No No


일하던 사무실은 핫데스크 방식의 공유 오피스여서 4-5개 부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모든 부서가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진 않았었고,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해보니 우리 부서 구역만 장식이 되어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아침을 시작하는 기분이 구름솜 같아진다.

리젠(ReGen, 도시재생)팀만 사무실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였다. 약간은 촌스럽지만(?) 그래도 좋기만 하더라. 그리고, 크리스마시(Christmasy)한 사물함

직장에서의 크리스마스를 보았으니, 이제 지역 사회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지 눈을 돌려볼까?


교회의 지역사회 나눔 크리스마스 무료 공연

킹스턴에는 로즈 시어터라는 지역 사회 중심 공연장이 있다. 대규모 뮤지컬을 제외하고 런던의 인기 공연들은 대체로 관람할 수 있는 극장이다. 아이들 뮤지컬 공연도 교육적으로 볼만 한 것이 많다. 분기에 한 번쯤 그리 비싸지 않은 금액으로 아이들에게 문화 체험을 시켜줄 수 있는 것을 보면, 런던이 뮤지컬과 문화의 도시인 것은 맞나 보다.


‘캐롤 엣 더 로즈’ 티켓 예매 안내


서둘러야 한다. 킹스 처치의 '캐럴 엣 더 로즈'는 초대규모 버라이어티쇼를 방불케 하는 웸블리의 크라이스트처치 공연에 비할 수는 없지만, 대신 편안하게 크리스마스의 로망에 푹 젖을 만큼 러블리한 공연이다. 어른들이 2세 이하의 아이들과 공연을 즐길 동안 키즈나 주니어 언니 오빠들은 아이들만을 위해 준비된 야광 파티, 공예놀이, 달달한 먹거리 만들기, 편을 나눠하는 게임 등 그들만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길 수 있다. 2층 공연장 옆에는 어른 문화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지 못할 아가들을 위한 임시 놀이 공간도 있다. 2살 된 레이카와 함께 갔던 우리는 짧은 공연 관람을 뒤로 우리의 주니어들이 나올 때까지 레이카와 유아존에 있었다. 그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킹스처치의 캐롤 엣 로즈 공연 현장


오잉? 아파트에서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40년 된 아파트였다. 한국 같았으면 진작에 재건축에 들어갔을 아파트겠지? 혹은 최소한 열띤 논의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건물을 부신다(다시 짓는다는 말도 나오기 전에)고 하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영국 사람들은 건물의 내구 연수를 몇십 년으로 생각할 리가 없다. 몇 백 년 된 건물에서도 흔하게 살고 있으니.

종종 들었던 말이,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부터 살았어요."였다. 우리 아파트는 우리처럼 유용할 가치라기 보단 그들에겐 사는 곳이었다. 물론 그곳에 살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보통 주택에 산다. 아파트에 잘 살지 않는다. 그러니 이민이나 유학, 잠시 살다가는 사람들의 거처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살던 아파트에는 비영국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부터 살았어요."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는, 그들은 이웃이고, 커뮤니티라는 것이다. 너무나 궁금했다. 아파트 로비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니!?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서 읽었던, 아파트 크리스마스 파티 공지.

‘멋지게 그들 사이에 끼어서 웃고 떠들며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음을 물론, 둘도 없는 친구를 바로 그날 밤 사귀게 되었다.’라고 썼더라면 어느 영화나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을 테지. 하지만 역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떡하니 낄 자신은 없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척하고 지나가며 구경을 했더랬다.’가 현실. 로비에는 누군가가 이 파티를 위해 직접 구웠을 쿠키와 조금 조금 기부받았을 달달한 것들이 나름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도네이션(기부)로 먹거리들을 굽고 만들어 왔겠지?


영국의 지역 행사나 모임들은 늘 그랬다. 영국 인구의 반은 인도인이가 싶을 정도로 영국 곳곳에 침투해있는 인도인조차도 영국인들의 문화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로비에 나가보니 모두 백인들이었다. 이 아파트에서 평소에는 잘 볼 수도 없던 백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살고 있었단 말인가. 어쩌면 이방인이어서 못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알고 지내는 모임에 새로운 사람이 새롭게 끼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은 원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변죽이 좋거나.

어쨌거나 그들은, 그 해 겨울, 따뜻해 보였고 지나가며 보기만 한 나도 같이 그 온기를 몸에 두르고 내 호수로 돌아왔다. 이것이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도 삭막하지 않은 이유들이었다. 기본적인 그 사회의 온화함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 말이다.

40년된 이웃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이젠 누군가의 집안으로 들어가 보자.

헤어디자이너였던 친구는 인테리어 감각이 좋았고, 런던의 전형적인 서민이었다. 럭셔리한 집은 아니었지만,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내도록 센스 있게 꾸몄었다. 영국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에 열심히 카드를 쓴다. 아이는 학교에서 왜 그러나 싶을 정도로, 친한 친구부터 친하지 않은 친구까지 카드를 많이도 받아왔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영국인들은 집 벽에 받은 카드를 쪼로록 걸어두는 것으로 영국인들답게 조용하게 인기도 자랑을 한다. 그래서 그렇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전에 많은 카드를 수집하려고 친구들에게 선 카드를 뿌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가.

기본 블랙 바탕에 묵직한 벨벳 커튼, 그리고 빛으로 장식한 친구 집
크리스마스카드 자랑질!

12월이 되면 모든 가정에서 아이들을 위해 마련하는 것이 있다. 그 맘때 모든 마트와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은 크리스마스 초콜릿 캘린더다. 크리스마스 캘린더가 무엇인고 하니, 12월의 1일부터 24일까지의 달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날짜에 맞춰 뽁! 창문을 열어 그 안에 든 초콜릿을 꺼내 먹는 것이다. 초콜릿 모양도 다 같지 않아서 오늘은 어떤 모양일까 설레며 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초콜릿 달력의 문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그만큼 신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19세기 독일 프로테스탄트가 벽이나 문에 날짜를 표시하며 크리스마스를 세는 유례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고 1950년대에 그 전통을 캐드버리사가 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초콜릿 달력은 나무로 된 것부터 캐드버리 초콜릿 달력처럼 종이로 된 간단한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 초콜릿 달력은 아이들에게 간단한 선물로 참 좋다. 캐드버리사의 초콜릿 달력은 보통 2~10파운드까지 다양하지만, 반값 세일도 흔하게 하기에 단돈 1파운드, 우리 돈 1500원에도 양질의 초콜릿을 매일 꺼내먹는 기쁨을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한철 어린 날의 낭만으로 선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빠지란 법은 없다. 원래 초콜릿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1950년대 크리스마스 초콜릿 달력을 재탄생시킨 캐드버리사의 단돈 1파운드!짜리 초콜릿달력.

1파운드라고 해서 초콜릿이 양질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영국을 떠나고 가장 아쉬운 것이 초콜릿의 질이다. 영국에서는 아무 초콜릿을 집어 먹어도 입에서 살살 녹으며 팜유를 넣은 것이 아니라 코코아 오일을 넣은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웬만한 초콜릿보다 맛있는 느낌이다. 고디바같이 비싼 초콜릿도 슈퍼에서 싼 값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영국을 떠나며 잃어버린 것 중 하나.

다양한 초콜릿 캘린더
나무 상자로 만든 초콜릿 캘린더


덤으로 보는 크리스마스 전경


학교의 크리스마스

초등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짧은 2주 간의 방학을 한다. 그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도 그레이비를 곁들인 터키(칠면조) 요리와 민스파이 같은 것이 나오는 특별식이 점심으로 제공되고, 학교 식당의 식탁에도 크리스마스 식탁보가 깔리고 캐럴을 들으며 식사를 하나보다.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으로 메리크리스마스라고 하는 듯한 병아리처럼 입을 벌린 모습이 학교 페이스북에 올라왔었다.

그리고 박봉이라고 알고 있는 영국 초등학교 선생님에게서 선물을 받을 줄은 몰랐다. 산타와 크리스마스트리 지우개가 달린 연필, 진저쿠키맨 지우개, 동전 초콜릿, 영국인들이 집착하는 배지! 깨알같이 아이들이 좋아할 것들만 모아주신 센스가 엿보인다. 소소한 행복이다.


비행기에서도 메리크리스마스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만났었다. 비행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던, 빨간 음료에 초콜릿 쿠키, 별모양 초콜릿. 별것 아닌 것도 우연히 만나면 마음이 아롱아롱해지는 것을.

정말 빛나는 별이 마음에 와 박혔다.


영국 일상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그러하였더랬다... 올해 전세계적으로도 코로나 치레를 열심히 하고 있는 영국은,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일상이 모두 무너졌다고 한다...


@표지출처. Kim Com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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