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낭패 본 일 in 런던

조금 불편한 현실, 그리고 위험한 여행

by Scribblie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어. 원래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니까요.


차로 평소에는 25분 정도 거리인 체싱턴에 사는 친한 언니가 25일 저녁 식사에 우리를 초대했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낼 크리스마스 저녁에 초대라니, 아마도 남편이 연말에 영국에 못 오게 되어 꼬마와 나 둘이 외롭게 크리스마스 밤을 날 것이 딱하셨나보다. 물론, 자가용을 이용해서 갈 생각이었다.


그 댁에 가져갈 선물들을 둘레둘레 싸들고 내려가 차에 키를 꼽고 돌렸다. 띨띨띨... "큰 일 났다", "다시 해봐", "될지도 몰라", "오늘은 RAC도 안 해서 배터리 점프도 못할 텐데", "누가 배터리 점프 좀 해줄 사람 없나", "크리스(아파트 관리인)..크리스도 없겠지?", "버스는 뜸하게라도, 한 대씩이라도 다니겠지? 그래도 24시간 운영 버스도 있는 런던인데", "아님 택시?", "안되면 우버!", "이것저것 준비하셨을텐데, 안 갈 수도 없고..." 나의 두뇌회전 속도가 그렇게 빠른 줄 몰랐다. 한순간 그렇게 많은 생각이 동시에 튀어나오다니.


하지만, 시동님은 결국엔 걸리지 않았다. 이놈의 똥차! 영하도 아니고 추우면 얼마나 춥다고 시동이 안 걸려~! 영국은 어떻게 다 노상주차야! 아니 매일 안 탄 것도 아니고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시동이 안 걸리냐고! 아이를 이끌고 한낱 희망을 걸고 한밤 중 같은 런던 골목을 걸어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그곳에선 절망만 만났다. 버스 도착 알림 전광판에는 운영 정보가 없었다. 그 말인 즉,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알고 있긴 있었다.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에는 대중교통이 '대체로' 멈춘다는 것을.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모조리 다 멈춰요? 기차를 탈 일이 있어서 기차 운영에 대한 안내를 보면서 크리스마스와 다음 날엔 운영을 안 하는구나, 누군가에게 들어본 일이 있었는데 진짜구나하고 사진까지 찍어왔었다. 그때도 참 신기하게 생각했다. 대중교통이 하루, 이틀, 통째로 멈추는 일,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땐 이것이 나에게 위기를 가져다줄 줄은 몰랐다.



편의와 효율 vs 인권과 불편


영국과 한국이 정말 다른 것은, 한국은 명절이면 대중교통 운영시간을 연장하여 이동을 원활하게 하고, 영국은 중요한 명절에는 그냥 모두가 다 같이 안 움직이는 걸로 한다. 사실 나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 사람이다. 효율은 결국 누군가의 인력을 갈아 넣어 만들어져 나오는 미트볼 같다. 그렇게 사람 갈아 넣어 한국이 이만큼 성장했고 지금도 빠르게 변하는 효율적인 나라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헬조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두를 위해 너 하나쯤은.

모두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의 반대말인 것이다. 모두를 위해 '나'하나쯤은. 하지만 그 '나'는 주로 힘을 가진 자로부터 힘을 가지지 않은 자로 이동하여 '너'가 된다. 그것들은 항상 상대적인 고리 안에 있기에, 누구나 희생되는 너가 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사람 미트볼을 만들어 굴려야만 할 만큼 그렇게 못살지 않는다. 이젠 전체보다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나'로 존재하는 사회로, 모두가 조금씩 더 행복한 사회로 드라이브하는 운항표를 짜고 '너'를 너가 아닌 '나'와 같은 존재로 여기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비록, 크리스마스에 낭패를 겪었지만, 버스 운전기사, 기차 운전기사, 매표원, 그 외에 보이지 않는 모든 사회의 기반을 받치고 계시는 분들의 사람다운 삶을 나의 불편으로 맞바꾸고 싶다. 우리도 설이나 추석 당일 하루, 모두가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나라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 불편할 뿐.


하지만! 여행으로 런던에 오신다면, 25일 26일은 피하세요. 발이 묶일테니까요. 아니면 비싼 대가를 치르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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