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관련 커뮤니티들을 보면 집계약 사건 사고에 대한 사연들이 자주 올라온다. 유학생이나 가족 없이 단신이어서 집을 쉐어하거나 에이전트를 거치지 않고 계약을 하는 경우, 집을 정식으로 구하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손쉬운 듯해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똑바로 체결되지 않은 계약 관계나 책임질 제삼자가 없어서 더 고생을 하기도 한다. 보증금을 반환해 준다고 하고 반환해 주지 않고 임대인이 연락두절되는 경우도 허다했고, 심한 경우는 몇십 년 된 신발장에 오히려 하자를 발생시켰다면서 보증금 이상의 배상비를 청구하여 이김에 집을 리모델링할 비용이라도 뽑으려는 듯하다는 하소연 글을 본 일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동산 용어나 권리 관계도 올바로 모르고 어떻게 타국 땅에 가서 집을 계약했는지, 무식하여 용감했다. 알음알음 소개받은 분도 이런 건 설명해주지 않았었는데, 현지의 삶에 익숙해지고 나면 이런 기초적인 것들이 너무 당연해져서 설명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진다는 것을 1년쯤 지난 뒤에 나도 깨달았다.
그래서! 알고 나면 참 당연한 것들이지만 모를 땐 알 수 없는 부동산 거래 기초 용어와 아주 기본적인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기본 권리, 계약 절차, 계약서 상 확인해야 할 권리 사항, 흔한 관행들을 소개해드리니,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께서는 이 정도의 기초 지식이라도 갖고 영국 부동산과 권리 관계를 따질 퐈이팅!을 해보시길 바란다.
듣기도 거북한 Landlord
Lord? 무슨 Yes, my Lord도 아니고, 참 듣기 싫은 용어였다. 우리에게도 집주인이라는 표현이 더 통용되긴 하지만, 꼭 임대인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 편이다. leaseholder라는 표현도 있을 텐데 계약서 상에도 Landlord라는 표현을 쓰더라. 더러워도, 집주인 그러니까 임대인이라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임차인은 평범하게 Tenant이다.
완전 빠져들어 잠도 안 자고 보았던 영드가 또 하나 있는데, 다운튼 애비 Downton Abbey였다. 다운튼 애비의 매력은 영국은 세계 1차 대전 전후로 세상을 나눌 수 있는데, 그 이전은 고루한 옛 사회가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면, 그 이후는 격변의 시대가 사람들의 고정된 사고를 깨고 워커 계급도 돈을 벌거나 전문직을 가짐으로써 지위 상승 때론 신분의 상승까지도 꿈꾸게 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반대급부에는 Lord로서 살던 귀족의 지위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광활한 영지를 유지 운영할 고민을 해야 한다. 평화로운 자신들만의 영역을 깨고 그곳에 집을 짓고 평민들을 들여 임차료를 받아 영지를 유지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파격을 맞이 하게 된다. Lord, Landlord. 그곳에서 왔을까...?
부동산중개업소, 계약서, 보증금은?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찾으면 Realty dealer, Real estate agent, Realtor가 1,2,3번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냥 보통 Agent라고 부른다. 그럼 계약서는 뭐라고 부를까? Contract? 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Tenency Agreement라고 부른다는 사실. 보증금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Deposit이라고 부르는 것이 쉬이 와 닿는다.
듣보잡 용어들
여기까지는 한국에도 있는 개념들이었다. 하지만, 사회가 다르고 부동산 관련 제도나 관행이 다르기에 우리에겐 개념조차 없는 단어들이 있다.
Reference Check
레퍼런스라고는 참고자료. 논문 쓸 때 참고하는 자료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쉬이 말하면 "뒷조사"정도 되려나? 임차인이 돈을 잘 낼 수 있는 지 아닌 지, 수입 등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레퍼런스 체크도 돈이 든다. 그런데, 임대인은 위한 것인데도 2019년까지도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였었다. 결국 아쉬운 사람이 내라는 원리였을까? 다행히도 2019년에 부동산 관련 규정에서 임대인이 내도록 하여 더 이상 임차인이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Inventory Check
인벤토리 체크는 집에 입주와 퇴거하는 날 아침 검사원이 나와서 집의 상태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말한다. 보증금 반환을 100%해줄 것이냐 차감할 것이냐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입주 시에 임차인 입장에서는 꼬투리 잡을 것은 꼼꼼히 잡아내어 보고서에 기록토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 혹여나 나중에 사용자 과실로 잡히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신없이 입주하는 중에 검사원을 따라다니며 잔소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입주하고 2-3일 내에 발견된 하자는 부동산에 통보해서 보고서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었다.
Deposit Protection Certificate
한국에서는 임대인이 받은 보증금을 어쩌든 임차인이 어찌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에크로와 유사한 성격으로 보증금을 제3의 기관에 의해 보호토록 할 수 있고, Deposit Protection Certificate은 보증금 보호 증서를 의미한다.
참, 한국에서 계약을 위해 사전에 집을 보는 행위는 Viewing이라고 한다. 영국 입국 전부터 써먹어야 하는 단어이니 꼭 알아두자. 계약이 아닌, 집을 보러 다니기 위해 부동산과 약속을 하고 집의 조건을 이야기하기 위한 용어는 실전 집구하기 편에서 실전적으로 다뤄보기로 한다.
부동산 계약 절차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집을 뷰잉(Viewing)한 후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함에 이의가 없다는 것이 구두상으로 확인이 되면, Balance Invoice를 중개사무소에서 작성해주었다. 정식 계약 이전에 레퍼런스 체크를 하고 본계약을 체결하게 되므로 그 비용과 보증금, 인벤토리 체크비, 첫 달 임차료가 기재된 내역서라고 할 수 있다. 그중, 그 집을 다른 임차인에게 뷰잉이나 계약하지 못하게 하는 계약금에 해당하는 Holding deposit과 레퍼런스 체크비는 바로 지불하였다. 그 이후 입주 전 계약서 Tenancy Agreement를 쓰게 된다. 밸런스 비용은 입주 일주일 전까지 부동산으로 납입하라고 되어 있지만, 영국 입국 후 5일 만에 계약하고 10일 만에 입주한 번갯불에 콩궈먹듯 집을 구한 스피드였기에, 계약서 쓰는 날 나머지 밸런스를 입금했었다.
계약은 전자계약을 했었다. 중개소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이메일로 전자계약서류를 보냈고, 각자 서명날인이 끝나면 시스템에서 계약이 완료되었다는 이메일을 보내주었었다. 한국에 이제 서서히 전자계약이 도입되고 있는 듯 하지만 아직 한국 중개사무소에서는 낯설기만 한 일 같다.
입주일에는 짐을 들이기 전에 인벤토리 체크를 한다. 가급적 검사원을 따라다니며 문제가 있는 부분은 꼼꼼히 지적하여 보고서에 담기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보고서가 작성되어 이메일로 오면, 빠진 것은 없는지 없는 것이 있다고 쓰여 있지는 아닌 지 확인하고 수정을 요청하자. 나중에 퇴거 시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말이다.
자, 인벤토리 체크가 끝나면 드디어 짐을 들이고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어 본다. 이제 각종 제세공과금 등록과 아이 학교 배정 신청 러쉬가 기다리고 있다.
내 나라 부동산법도 다 알지 못해 때때로 당하게 되는 것이 집의 거래인데, 하물며 외국에서는 언감생심, 그저 집을 구했다는 것에 감사하였었다. 그런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이것 정도는 계약할 때 확인해두자."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요즈음처럼 코로나로 인해 예정보다 일찍 귀국을 해야 하거나, 유학생들도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어 잠시 한국에 갔다가 재입국을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여 근래 부동산 문제가 많이 포스팅되는 것을 보았다. 계약서를 다 읽기 힘들면 1장 요약본이라도 꼭 읽어보자.
Break Clause
계약 파기 조항이다. 전체 계약기간의 절반이 지나면 서로 2달 간의 기간을 두고 계약 파기를 통보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집의 상태가 살아보니 너무 안 좋을 수도 있고, 코로나와 같은 예측하지 못하게 중도 퇴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계약 파기 조항이 있는지, 확인해보자.
Deposit Protection
보증금은 법에 따라 제3의 기관에 의해 보험과 같은 보호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을 확인하자. 주인이 보증금을 다 써서 없애고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증금을 차감(Deduction)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 증서를 꼭 받아챙기자.
랜드 로드는 1도 손해보지 않을 거야 - 인벤토리 체크
계약 당시 부동산이 말하길, 들어갈 때 하는 인벤토리 체크 비용은 임차인이 지불하고 퇴거 시에는 임대인이 한다고 했었다. 현재는 임차 관련 법조항이 발의되어 레퍼런스 체크 비용과 함께 인벤토리 체크 비용도 임차인에게 물릴 수 없게 되었다. 다행이다, 관행적으로 주인을 위한 편의임에도 임차인이 부담해오던 인벤토리 체크 비용을 이제는 2019년 이후 법적으로 임대인이 내도록 되었으니!
업체써서 청소해라 아니면 물린다? - 무브 아웃 클리닝
퇴거 시 프로페셔널 클리닝을 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라는 계약서 조항이 있었다. 필자의 계약은 2018년 2월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조항이 불법이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19년 바뀐 법에 따르면 더 이상 무브아웃 청소도 임차인에게 물릴 수 없도록 바뀌었다.
디포짓, 넌 믿을 수 없으니 6개월치 땡겨놓자?
흔히 레퍼런스 체크 시 재정증명을 할 수 있는 직장인의 경우는 보증금을 1.5배를 받았었고, 재정증명을 할 수 없는 학생의 경우 6개월치 까지도 보증금으로 내곤 했다. 하지만 현재는 한 달치 보증금(최대 5주치)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관련링크] https://england.shelter.org.uk/housing_advice/tenancy_deposits/paying_a_tenancy_deposit
복지나 사회 약자를 위한 행정 제도가 발달된 나라일 것 같지만, 임차권의 보호나 권리 부분은 사실 우리나라의 제도에 아주 못 미쳐왔다. 오죽하면 가디언지에서 랜드로드는 사회의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기사 타이틀을 뽑았을까? 자본주의, 계급사회, 귀족사회라서 가진 자 중심인 게 더 심한 것이었을까? 땅에 집을 지어 내려주던 Lord이기에?! 그 법을 만드는 주도권도 그들에게 있기에?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