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이 연습이던 나날들. 영국 입국 5일 만에 집을 계약하고, 7일 되던 날 차를 샀으니 참 용감했던 삼십 대 말이었다. 가라지가 차고인 줄만 알았던 그때,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고 만리타국에서 차를 샀었을까. 영국에서 차를 살 때 꼭 알아야 하는 용어와 행정처리 사항들을 알려드리니, 여러분은 자신감 장착하고 가라지로 가시길 바란다.
생각해보면 결국 다 차가 모여있는 곳이니, 카센터를 가라지라고 하는 것도, 중고차 딜러를 가라지라고 하는 것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가라지라고 하면 차고만 생각하지 말고, 자동차 수리점이나 중고차 거래상을 말하는 거라고 이해했으니, 이제 가라지로 가봅시다.
카자이언트나 오토트레이드에서 사고 싶은 차를 찍었다면, 차와 운전자 정보를 보험사에 보내면 견적을 받아볼 수 있다. 영국사랑에서 찾으면 한인이 중개하는 한인 보험 에이전시도 몇 개 찾을 수 있다. 영국 보험사에 직접 하는 것보다 얼마를 더 내게 될 수 있겠지만, 제정신으로 집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다니는 건지 싶도록 멍한 때에, 자동차 보험에 대해 영어로 그것도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두어 군데 비교 견적을 해보고 한 군데 정하였다. 가라지에 가서 차를 사는 즉시 보험사에 연락하면 한두 시간 기다리면 보험처리가 된다고 했다.
차에는 워낙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런던에서 새로 시행되고 있는 환경오염 규제 중에 LEZ가 있다. 주로 런던 시내에 적용되고 점차 지역을 확대해갈 예정이라 런던 외곽에 사는 경우는 지장이 없겠지만 그래도 우편 번호를 입력해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오래된 디젤 차량은 LEZ기준에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면 된다. 차량 번호를 입력해도 그에 해당되는지 확인해볼 수 있으므로 차를 사기 전에 자신이 살 지역이 LEZ에 해당이 되는지, 사려는 차가 이 기준에 걸리는 차량인지 TfL(Transportation for London)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즉석해 알아보고 결정하자.
MoT는 Ministry of Transport의 약자로 우리의 자동차 검사와 같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2년에 한번 검사를 받아야하지만, 영국은 1년에 한번이다. MoT검사를 받았던 서류가 매년 있는지, 어떤 결함이 있는지 확인해보자. 차 번호로 아래 언급되는 DVLA사이트에서 검색하면 MoT이력을 모두 확인할 수 있고 문제가 되었던 부분들도 확인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수리했던 내역들을 최대한 챙겨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나중에 되팔 때, 중고차 매입업체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 수리내역이 없는 경우에는 차 값을 덜쳐준다. 이유는 차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차의 상태를 알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되기 때문이다. 차를 살 때도 과거 수리내역이 있는 차를 사고, 타는 동안에 수리 했던 내역도 잘 보관하자.
앞으로 자주 접해야 할 이름이 DVLA, Drive and Vehicle Licensing Agency이다. 운전면허를 관장하고 있는 영국 중앙정부 산하기관쯤 되겠다. 처음에 가라지에서 차를 살 때, 그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소유권 변경을 위한 거래신고를 하는 것을 보고 자동차 딜러라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하며 관공서에 직접 가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신기했다. 나중에 차를 팔 때 보니, 현 소유자가 직접 DVLA에 인터넷으로 소유권 변경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네이버 사전에 Log Book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재밌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구식이 되어감 (특히 차량) 등록증” 하하. 회색으로 쓰여 있는 ‘구식이 되어감’에 한번 웃는다. ‘맞아, 영국은 구식이야. 구식과 함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게 영국의 사랑스러움이고 영국을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영국을 잊지 못하는 이유지.’라며 웃는다. 구식일지 몰라도 진짜로 여전히 공식, 비공식 모두 차 등록증을 Log Book이라고 부른다. Log라고 하면 사전 1번만 외웠던 나는 통나무만 떠올렸던 기억에 또 한 번 웃는다.
자동차 등록증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일반적인 개인 승용차량은 V5C라는 등록이다. 차 대금을 지불하면 초록색 부분을 부욱 찢어서 주는데, 그 부분이 새 주인이 갖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 자리에서 소유권 이전 신고를 마쳤기 때문에 임시 소유증으로 생각하고 갖고 있으면, 나중에 우편으로 DVLA에서 새 Log Book을 보내준다. 무슨 고지서나 차 정보라 생각하고 버리면 안 된다. 잘 갖고 있다가 차를 팔 때 새로운 소유자에게 우리도 초록색 부분을 부욱 찢어줄 날이 생기기 때문이다.
음? 차를 샀는데 세금을 길에다 낸다고? 우리는 자동차를 재산으로 보고 처음 살 때는 취등록세를 내고 매년 재산세도 내지만, 영국은 재산이라서 세를 내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세금을 낸다. 그러니 차를 살 때 차 가격만 내면 되지 기타 취등록세를 많이 낼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Road Tax는 DVLA에 납부하는 순간 차를 끌 수 있다.
자동차 가격을 실랑이하던 중 판매자가 웨랜티를 그럼 조금 더 길게 들어주겠다고 했다. 사고보험과 달리, 소모품이 아닌 차의 주요 기관이 고장 났을 때 수리비를 1000파운드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보증 보험과 같은 것이었다. 자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470 파운드면 1년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차야 1년 간 지켜보면 이전 이력에 의한 주요 고장은 다 나오리라, 나머지는 내가 잘 타면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판매자가 3개월치의 워렌티를 내주는 것으로 우리의 합의는 끝이 났다.
그렇게 벤츠 B클래스 180 스포츠는 2년 간 우리의 생활을 책임질 영국차가 되었다. 요즘도 가끔 한국 거리에서 드물게 만나면 아이가 "P다!"라며 반가워한다. 그 차의 이름이 왜 P인지는 차를 사고 난 뒤에 빠르게 해야 할 일들에서 이야기하기로 하자.
P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