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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blie Feb 02. 2021

아군은 없어도 적군 하나는 기똥차게 잘 뒀다.

잘 싸우면 남는 게 있는 직장 내 적과의 대결

그랬다.

지금부터 6년 전이었다.

회사에서 하나의 안건으로 서로 다른 논리를 가지고 각자의 업무 그리고 과대 과 차원에서 우리는 대적하는 사이였다.

나는 그보다 두 단계나 낮은 급이었고, 드물게 괜찮은 적수를 만났었다.


흔히 입장 차이의 업무적 대립은 이성의 선에서 끝나지 않고, 감정싸움으로 진전되기 마련인데...

그는 선수였다. 음... 얼렁뚱땅 나도 선수였다고 묻어가자, 선수도 비선수를 만나면 선수의 자세를 지키기 어려우니까.


그 과와의 회의에 우리 측 팀장님이 혼자 다녀오셨고, 팀장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그 선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달랐고 그 둘은 서로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끼어들었던 기억이 어렴풋 지나간다. 아닌 걸 어떻게 아니라고 말할까 겁나게 고민했던 기억도 함께. 왜냐하면 그는 이 상황에서는 단지 급이 두 단계 높은 걸 떠나, 그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힘 우위의 과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괜찮은 적수였던 이유는, 감정을 이용하지 않았고, 힘과 비논리로 뭉개고 지나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결국 온 캐비닛을 다 뒤져 옛 문서에서 근거를 찾아냈고 승리하였고 위기를 넘겼다. 그 문서 덕에 진 사람 없는 모두가 편안한 승리를 하게 되었던 것. 그리고 그 선수와 나는 사이좋은 사이가 되었다. 직장에서 나에게 사주까지 봐준 드문 친분.


하지만 그 대립 관계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살짝 다른 안건으로 서로 뜨거운 감자를 토스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내가 그 업무를 놓고 6개월, 한국을 떠난 뒤 1년쯤 뒤에 그 사안은 감사를 받게 되었던 만큼 정치적인 일이었다. 그 선수와 나는 서로 뜨거운 감자를 니미락 내미락 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며 상황 판단하고 사이좋게 뜨거운 감자를 토스해나갔다. 그가, 적이 너와 내가 아니라 그 위에 있다는 걸 아는, 선수였기에 가능했던 일 아니었을까.


그 뜨거운 감자가 감사를 받게 되었을 때 그 선수가 영국에 있던 나에게 한번 연락이 왔다. "00가 00라고 이야기하던데, 실수일까요, 의도일까요?"라면서 말이다. 그는 나의 판단이 궁금했던가보다.


복직을 앞두고 상황적으로 진퇴양난의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사실,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는 것도 먼저 연락 온 6년 전 그 적수와의 이야기 끝에 알았다. 자기 일도 아닌데 알아봐 주고 추천에 인보증까지 서주겠다니.


아군은 없어도 적군 하나는 기똥차게 잘 뒀다!

물론, 이런 미담은 드물고, 길가다가 닮은 얼굴만 봐도 화들짝,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적들이 지난 배틀의 족적마다 수두룩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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