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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니 Sep 08. 2024

글쓰기는 조각과 같다

글쓰기와 조각의 공통점

나의 미술 감각 없음은, 일찍이 알았다. 그림을 못 그리는 똥손임은 말할 것도 없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안목도 약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미술 시간이었을까.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는 ‘여백의 미’에 있다고 했다. 당시 그게 왜 ‘미’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그림은 채울수록 좋은 게 아닌가?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다. 길게 쓰는 게 능력이고, 묘기를 부리는 듯한 화려한 문장이 잘 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미사여구를 붙여댔더란다. 그땐 그게 잘 쓴 글인 줄 알았다. 읽는 글 안목만 있고, 쓰는 글 안목은 없어서 생긴 문제다. 문장가들의 글에 익숙해져 눈만 높아진 상태에서 내 필력은 그보다 훨씬 아래에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탓이다.


MBC에서 방송을 할 때였다. 당시 문화예술프로그램을 맡았는데, 각 분야의 예술가와 작품을 보고 글을 쓰는 게 나의 일이었다. 일이 되니 자주 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들여다보니 안목이 그제야 조금 생기는 것 같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쓰는 일이 업이 되어 계속 쓰다 보니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안목은 빈도에 비례한다. 미술 작품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여백의 미를 알게 된 것처럼, 읽기 못지않게 쓰기를 하면서 덜어냄의 미학을 깨닫게 된 것처럼 말이다.

멋진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를 위해 꾸밈말을 덕지덕지 붙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다 가끔, 내 글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걸 볼 때면 성질이 확 난다. ‘왜 이따위로 쓰고 있는 거야’ 같은… 호흡이 길어지면 허리를 분질러버리고 싶고, 글이 모호해지면 수식어와 조사를 다 쓸어버리고 싶은 그런 마음.. (간결함을 얻기 위해 성격을 버렸다.)


깎을수록 아름다워진다는 조각처럼, 글도 덜어낼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조각 중에서도 덜어냄의 미학, 그 정점에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품이 떠오른다.


2015년 뉴욕 경매장에서 1,549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낙찰받은 그의 작품(<가리키는 사람> 1947)은 기존 조각과 달리 볼륨감이 없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앙상한 뼈대엔 그의 강렬한 삶이 녹아있었다. 고독, 존재, 불안정에 관한 고뇌가 응축된 결과물. 떼어내고 덜어낸 여백에서 그의 고뇌가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글도 이렇게 쓰고 싶다. 날것 그대로의 삶을 녹여낸 덩어리를, 덜어내고 떼어내 완성하는 글쓰기. 걷어냄으로써 하고자 하는 말이 더 선명해지는 그런 글쓰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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