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사랑의 생애>를 쓰신 이승우 작가님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진행자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였고요. 이동진 평론가는 이승우 작가의 오래된 팬으로 유명하죠.
북토크는 예상했던 것처럼 읽는 일과 쓰는 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지만 오가는 질문과 답은 예상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이었는데
아무래도 넓고 깊은 이동진이고, 치열하게 깊은 이승우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승우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질문의 깊이를 채우고
관객이 궁금해할 만한 정확한 지점을 찔러 물었습니다.
그가 한 질문은 자신의 안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는 것이었겠지만, 듣는 사람은 초면이기에 맥락을 알 수 있게 배경을 충분히 설명함은 물론이었고요.
이승우 작가는, 아마 그의 책을 보신 분은 알겠지만 뻔한 결론을 도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결론이 억지스럽거나 인위적이거나 과장된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할 이야기가 없으면 없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왜 그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지 차근차근 밟아나가며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이동진) 음악에 대해서 굉장히 집착하는 작가들이 굉장히 많고, 한국이 특히 그런 것 같거든요.
음악을 창작자나 독서를 이 독자로서 어느 정도 즐기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승우) 제가 음악을 듣는 귀가 안 열렸어요. 아시겠지만 제가 음치잖아요. 음치이기 때문에 많이 즐기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집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지내긴 하는데, 거의 신경을 안 써요. 음악을 듣는 귀가 없다는 건 매일 돌아다니는 우리 동네만 돌아다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이승우 작가님.. 좀 귀여우십니다. 앉아 있는 자세나, 어색할 때 혹은 멋쩍을 때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작은 행동, 특히 웃을 때가 정말이지.. 귀여우십니다.
‘책,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이승우) 저는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라 빨리 읽는 분들 보면 좀 부럽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그래요.
이동진) 빨리.. (저) 왜 부끄럽죠?
이승우) 이렇게 잘 이해하는 특별한 분들도 있죠.
저는 책을 빨리 못 읽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책을 끝까지 읽거나 다 읽어야 만족하거나 하는 그런 것도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어떤 책을 읽다가 그냥 덮어도 돼요. 그리고 어차피 다 읽어도 조금 지나면 줄거리 다 잊어버리잖아요. 그리고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받은 어떤 인상이나 거기서 어떤 나를 나의 어떤 삶에 자극을 주거나 뭔가 불러일으키는 영감 같은 게 거기에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책을 읽다 보면 마지막 페이지를 꼭 덮어야 만족감 드는 거 있잖아요. 그게 일종의 허전한 포만감인데 거기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허전한 포만감’이 정확했습니다.
책에서 중요한 건 줄거리나 완독이 아니라
인상, 자극, 영감, 무언가 불러일으키는 것임에도
진정 그 중요한 것들을 얻는 읽기였나, 하면 아닌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까요.
저를 비롯해 그 자리에 온 모두가 궁금해한 것, 아마도 이승우 작가가 사유하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집요하고 치열하고 숨 막힐 정도로 밀도가 높은(이동진 평론가 曰)’ 글이, 이승우 작가를 대표하는 것이니까요.
이동진) 어떻게 하나의 화두를 이렇게까지 파고들어서 문장의 완성도나 삶의 깊이를 만드시나. 어떻게 밀고 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승우) 제 약점이 결과적으로 만들어낸 장점이 된 케이스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제가 쓴 문장들에 들어있는 내용을 한마디로 한두 마디로 요약을 잘 못해요. 한두 문장 따라가 읽으면서 다음 문장이 나온 거거든요. 그래서 첫 문장 써놓고 그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문장이 그 꼬리에서 뭔가 새끼를 치는 거예요. 그 문장이 반드시 다음 문장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다음 세 번째 문단은 안 나오거든요. 그래서 저도 아슬아슬하게 쓰는 거예요. 따라가면서 정리하다 보니까 도달하는 지점들이 때때로 피상적이지 않은 결론을 유도해 내고 그런 것 같고요. 이렇게 쓰지 않으면 문장을 쓸 수 없는데 결과적으로 그게 어떤 분들, 특히 이런 이동진 씨 같은 분들이 좋게 읽어주니까 그냥 고맙죠.
이동진) <고요한 읽기>를 손에 들고 단숨에 읽었다, 라고 하면 저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읽을 수가 없는 책이고요. 계속 책을 덮거나 아니면 책이 아마 진도가 굉장히 안 나갈 겁니다. 진도가 안 나가는 게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이유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