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청춘으로 말하는 - 김훈 <하얼빈>

2025.03

by 김서니

세자매 독서모임의 다음 도서. 3·1절을 앞두고 있어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제안했다.

*작가의 <칼의 노래>는 어렵게 읽었으나 <허송세월>은 유쾌한 필체에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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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영화 하얼빈을 본 세 자매 모두의 뜻이 맞아 2월 도서는 <하얼빈>으로 선정했다.


안중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거라 생각했지만, 꽤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다. 안중근 의사는 물론이고, 이토 히로부미, 조선의 황태자 이은, 천주교 사제, 국가(조선/일본)와 집안(안중근) 등 하나의 사건을 두고 몇 겹의 시각이 덧붙여지니 이야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읽혔다.



작디 작은 이토 히로부미


소설에선 이토의 외관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꽤 등장한다.

안중근이 이토에 관한 소식을 듣고 그의 사진을 접하고, 그를 실제로 보았을 때 그러했는데 꼽아보자면 이런 대목이다.


10월 중순의 저녁 무렵에 안중근은 하숙집에서 날짜 지난 일본 신문 한 조각을 보았다. 하숙집 주인의 친척이 품팔이 일자리를 잡아서 서울에서 연추로 왔는데, 그때 이삿짐에 묻어온 신문 조각이었다. 제호가 찢겨나가서 무슨 신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발행 일자는 1909년 2월이었다. 여덟 달쯤 전에 나온 신문이었다.
거기에 고려 왕궁 만월대의 폐허를 순행하는 순종과 이토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 순종과 이토의 뒤쪽으로 무너진 만월대 계단이 보였고 호종 대열이 사진의 중앙에 늘어서 있었다. 계단 너머의 폐허가 하늘과 잇닿아 있었다. 오백 년 전에 멸망한 고려 왕조의 폐허가 오늘 아침의 멸망처럼 보였다. 안중근은 일산 옆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토가 거기에 있었다.
……이것이 이토로구나.
사진 속의 이토는 체구가 작아 보였다.
……듣던 대로, 이토는 덩치가 작구나. 이것이 이토의 몸이로구나.
- 순종과 만월대에서 찍은 이토의 사진을 보고


이강 주필이 일본 신문 한 장을 안중근 앞으로 내밀었다. (…) 신문 1면 상단에 이토의 인물 사진이 실려 있었다.
(…) 이토의 얼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안중근은 숨이 막혔다. 이토의 얼굴은 차가운 평면의 느낌이었다. 턱수염이 무성했다.
……이것이 이토의 이목구비로구나. 보통 사람과 아무 차이 없구나……
남만주철도를 시찰한다면 이토는 시모노세키에서 기선 편으로 대련에 와서, 열차를 타고 봉천, 장춘을 거쳐서 하얼빈으로 올 것이었다.
-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기사 속 이토의 사진을 보고


"나는 이토의 덩치가 너무 작아서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 우덕순과 이토 저격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러시아 군인들 사이로 두 걸음 정도의 틈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이토가 보였다. 키 큰 러시아인들 틈에 키가 작고 턱수염이 허연 노인이 서 있었다.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 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이토의 주변에서 키 큰 러시아인들이 서성거려서 표적은 가려졌다. 러시아인과 일본인들 틈에 섞여서 이토는 이동하고 있었다. 이토는 가물거렸다.
- 하얼빈 기차역에서 내린 이토를 조준하며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토. 작은 몸을 가진 이토. 괴죄죄한 이토.

저 작디 작은 인간이 조선을, 동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구나.


그를 사살하려는 안중근의 목적은 이토의 육신 자체보다는, 그의 행위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세상을 헝클어뜨리는 이토의 행위를 멈추는 것이 주 목적이나

그의 목숨을 제거하지 않고는 작동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렇다기보다도, 이토가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토의 한 생애의 자취를 모두 소급해서 무화無化시키는 쪽이지 싶기도 했는데, 그 지우기가 결국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는 일이 되는 것인지는 생각하기가 머뭇거려졌다.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지 않고서, 그것이 세상을 헝클어뜨리는 작동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살 그 너머를 생각한다. 이토 사살의 두 번째 목적이다.

살(殺)하고 난 후에 세상에 말할 수밖에 없겠다고. 그냥 말하면 세상은 듣지 않으니, 살한 후에 세상에 말한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안중근이 말한 세상은, '이토'와 '일본' 그리고 '세계'였다고 생각한다. 이토가 죽은 이유가 그들에게 과연 닿았을까?


이토를 살려놓고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이토에게 말해주었으면 좋았겠는데 이토가 죽었다면 이토를 죽인 이유를 이토에게 말해줄 수가 없겠구나. 메이지는 이토가 총을 맞은 이유를 알고 있을까. 이토가 죽었다면 이토 없는 세상에서 이토를 죽인 이유를 말해야 하지만, 그 세상은 이토가 만들어놓은 세상이므로 내 말을 알아듣기가 어렵겠구나. 이토가 죽었다면, 총알을 맞고 나서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왜 총에 맞았는지를 알았을까?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더라도, 총을 쏜 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알고 죽었을까. 이토가 죽었다면, 그것을 물어볼 길이 없겠구나.
- 이토의 사망 여부를 모르는 뤼순 감옥에서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일본 재판관이 진행하고 세계 각국의 인사가 참석한 법정에서


이토는 안중근의 총에 거의 곧바로 사망했다. 그리고 죽기 전 눈을 가늘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바보 같은 놈" 이 말이 무얼 뜻하는지. 자신이 죽은 이유를 안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1909년 이토 저격 후, 일본은 약 1년 뒤에 조선의 국권을 피탈한다. 세계는 일본의 만행을 알면서도 방관하고 조선 이권 침탈땅따먹기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이토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결국 안중근이 말하려는 바는 세상에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일어난 봉기와 정변과 의병 투쟁을 보면 아무래도 조선에만 들은 듯.



정당한 살인이라는 게.. 있을까? 없을까?


안중근은 이토를 저격해 죽였다. 보통 절대적 진리로 말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폭력은 안 된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이다. 여기에도 예외가 있을까?


직전에 읽은 <나의 한국현대사>에는 폭력에 관한 칼 포퍼 문구를 인용한 대목이 있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는 개혁이 불가능한 전제정치에서 폭력 행사는 정당하다. 그런데 그 목적은 오직 폭력을 쓰지 않고도 개혁을 할 수 있는 민주정치를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민주 헌법과 민주주의적 방법을 파괴하려는 안팎의 공격에 대항하는 폭력 행사 역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시민의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이토 저격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안중근은 살인자인가? 종교적 관점, 국가별 관점에 따라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나라를 빼앗긴 자의 입장에선 그를 그렇게 규정할 수 없다. 나라를 빼앗겨 본 적이 없더라도, 나라를 사랑하는 자라면 역시 그러할 것이다.



하얼빈의 의미


하얼빈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본다.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곳, 의거한 장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은 후, 교차하는 철로만큼이나 여러 의미가 응집된 곳이구나 싶었다.


하얼빈은 만주의 중심이다.
대륙의 철로가 모두 하얼빈으로 모이는구나.
철도는 하얼빈에서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 조선을 오가는 철로는 모두 하얼빈에서 만나고

그 철로는 다시 하얼빈에서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곳이다.

철도는 산업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의 야심을 대변하기도 한다는 생각이다. 하얼빈은 그런 곳이다.


그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이토를 사살했다.


또한 하얼빈은 모이고 흩어지는 곳으로, 여러 지역에서 하얼빈으로 모였다가 다시 하얼빈에서 흩어진다.


하얼빈역에서는 옴과 감이 같았고 만남과 흩어짐이 같았다.


살아서 하얼빈으로 왔던 이토는

시신이 되어 다시 돌아간다.


장송열차는 이토가 대련에서 하얼빈으로 온 철로를 거꾸로 달려서 (하얼빈에서 다시) 대련으로 향했다. (...)


일본은 대련을 침략해 점령 후, 그곳을 발판 삼아 하얼빈으로 진출했다. 그곳으로 이토는 되돌아가고 있었다.

거슬러 가고 있다는 건 망가진 세상을 원래대로 복구시키고자 하는 안중근의 바람을 담은 비유였을까.


김훈의 <하얼빈>이 말하고 싶었던 것


작가의 말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이 말을 듣고보니, 안중근의 가난과 청춘이 조금 더 선명히 느껴졌다. 그가 살아있음이 생생히 다가왔으나 안중근의 고뇌나 내면은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이토를 들여다본 점은 예상치 못한 부분으로, 신선했다. 놀랍고 당황스러웠던 건, 그의 말(논리적인 개소리)이 꽤나 합당하고 그럴싸하게 들릴 뻔했다는 거다.


조선 유림의 사표師表로 일컬어지는 최익현의 고루함을 보라. 그가 이 세계의 물성에 관하여 무엇을 아는가. 그가 역사의 층위와 발전 원리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시대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그가 힘의 작동 원리를 아는가. 그가 웅장하고 허망한 언사를 설파함으로써 약동하는 세계의 풍운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무리에게 시운을 기탁한다면 조선은 스스로 보전할 수 없다. 스스로 독립할 힘이 없는 자는 적대하는 여러 방면의 힘을 끌어들여서 그 완충의 자리에서 홀로 설 수 없다. 여러 힘들이 조선 반도에서 부딪치면 평화는 기약할 수 없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길은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독립이고 동양의 평화이다.


끝의 두 문장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고.. 다시 한번 이 대목이 놀라웠고.. 그럴듯한 말로 되뇌는 세뇌가 무섭고.. 교육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은 대목이고......

일본이 괜히 정신교육으로 조선의 민족성을 말살시키려 한 게 아니다. (조선어 사용 금지, 창씨개명, 문명개화의 은총 어쩌고, 궁성요배, 황국 신민서사 암송 시키기, 신사 참배, 내선일체 등.. 민족 말살 통치 만행은 너무나도 많다.)



역사 속 한 줄이 300페이지가 되는 일


한국사를 공부하다보면 방대한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요 사건도 한줄이 되어 지나가고 마는데 (1801년 백서사건의 황사영, 1905년 을사의병 최익현과 신돌석, 1907년 정미의병 이인영 등)

<하얼빈>을 읽으며, 배운 인물들이 진행한 작전과 그들의 말로를 조금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열아홉 살 청년 신돌석은 경북의 바닷가 영해에서 백여 명의 민병으로 일어섰다. 신돌석은 동해안을 따라 울진, 삼척, 강릉, 양양을 아우르며 북상했고 청송으로 진격할 때는 군세가 천에 달했다. 날이 추워지고 군량이 떨어지자 봄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신돌석은 병을 해산했다. 신돌석은 부하의 집에 몸을 숨기고 봄을 기다리다가, 배신한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이인영이 원주에서 일어서자 수천의 민병들이 모였다. 이인영은 탐학하는 관료배들의 재산을 빼앗아 군자금을 조달했다. 이인영은 여러 고을의 의병들과 연합해서 통수 계통을 세우고 스물네 군진을 편성했다. 이인영은 서울을 회복하려고 동대문 밖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때 부친의 별세를 알리는 부고가 도착했다. 이인영은 상을 치르려고 문경으로 내려갔다. 부하들이 울면서 매달렸으나 붙잡지 못했다. 이인영은 문경에서 삼년상을 치렀고, 그후 노모와 처자식을 데리고 추풍령 아래 황간 산골에 숨어살다가 족적을 찾아 따라온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이인영은 경성감옥에서 죽었다.


최익현은 국권회복을 위해 우선 임금의 성심聖心을 바르게 할 것을 거듭 상소했다. 그의 정조는 비통했고 문장은 거칠었다. 그는 말을 내질러서 글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임금은 ‘너의 충정을 알겠다’고 비답했고, 그의 말을 쓰지 않았다. 그는 당상의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갔다. 최익현은 일흔네 살에 전북 태인에서 봉기했다. 최익현은 군진의 전개를 몰랐고 군사들은 의기충천했으나 명령을 받을 줄을 몰랐다. 일본군이 총검으로 밀어붙이자 군사들은 흩어졌다. 최익현은 대마도로 끌려가서 곡기를 끊고 옥사했다.


황사영은 박해를 피해 달아나다가 캄캄한 산골의 옹기굴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북경 주교 구베아에게 보내는 문서를 썼다. 황사영은 비단 보자기 한 장에 일만 삼천여 자를 썼다. 황사영은 순교와 박해의 실상을 소상히 기록하고 서양 나라의 선박 수백 척과 군사와 대포로 조선 조정을 협박해서 천주교인을 죽인 죄를 물어야 한다고 구베아 주교에게 호소했다. 훗날 이 글은 백서帛書라고 불렸다.

황사영은 토굴에서 체포되었다. 황사영은 몸이 여섯 토막으로 잘려서 거리에 버려졌고, 일족은 멸문되었다. 황사영은 스물일곱 살에 죽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동학군-관군'의 대치 구도만 존재할 거라 생각했는데, 또다른 한편에 동학군과 대치하는 백성이 있었다는 것 역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동학군이 마을을 약탈하고 지나가면 관군이 들어와서 동학군에게 식량을 내준 백성들을 잡아갔다. 동학군이 관아를 불지르고 아전들을 죽이면 아전의 아내가 동학군의 은신처를 밀고했고, 끌려가서 죽임을 당한 동학군의 아들이 밀고자를 죽였다. 삼 년쯤 전에 이 지역에서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포수와 청년들을 모아서 군사 조직을 갖추고 마을을 위협하는 동학군을 쳐부수었는데, 그때 열여섯 살 난 안중근이 그 선봉의 역할을 했다고 빌렘은 뮈텔에게 말해주었다.


조선 땅은 매일이 전쟁이고, 도륙나는 조선인의 절규가 울려 퍼지며, 살육의 피비린내가 풍기는데

일본 땅은 너무도 고요하여 황궁 내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인 장면의 대조 역시 인상적이었다.


또한 조선은 피의 강물이 흘러 넘치고 있는데,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는 일본은 매일이 축제일 수밖에 없는 현실.


조금 더 깊게 그 시대의 그 순간에 빠져들 수 있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제 3자의 위치에서, 어느새 조금은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본듯한 경험. 이런 가치는 소설이 역사를 소재로 할 때 특히 빛나는 듯하다.


+) 추가로, 종교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었으나.. 이하 짧게 생략.

안중근이 어떤 천주교 신자였는지 알았고

뮈텔 주교는 읽는 내내 별로였는데 주석을 보니 역시 친일 행적이 있었다 하고

빌렘 신부는 진정한 성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움의 중첩에서 얻은 것


공교롭게도 요근래 역사를 되돌아 볼 일이 많았다.

2024년 12.3 계엄령과 1980년 5.18 계엄령, <나의 한국현대사>,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그리고 김훈의 <하얼빈>까지.

그 과정에서 발견한 공통점이 있었다.

역사를 올바른 쪽으로 이끈 주인공은 피지배층으로 대변되는 백성, 시민, 국민과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는 것.


대체 이놈의 국가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매번 위기때마다 단결해 힘을 모으는지.

이번 소설에서도 그랬고(이토는 '썩은 왕조의 탐학으로 껍질만 남은 조선 민중이 무너져가는 왕조를 이처럼 치열하게 옹위하고 있는 사태는, 어려운 일이다.'라고 했고 조선에서는 전국적으로 의병 활동이 있었다), 한국사를 배우는 내내 그랬고, 얼마 전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그랬다.


대부분의 문제는 위정자들에게서 시작되었고(권력 다툼, 내분 그러다가 자멸하는 엔딩) 그 다음은 무능력한 지도자(휘둘림, 조력자 못 믿음, 외세 끌고옴)였다. 그런 망국을 구해내는 건 언제나 국민이었다.


국민만 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인가. 대체 국가를 사랑하는 정치인과 지도자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보기 어려울 일인건가.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인가, 정치를 하다보면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기)게 되는 것일까.


역사 속 고비마다 시민들이 결집해 위기를 극복했다는 걸 알기에 비관적 미래를 그리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조금 더 욕심내보고 싶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위정자들이 지금보다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이런 생각은, 요즘 같은 혼란한 때(...)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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