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불평등을 선호한다? <한국의 능력주의>

2025.04

by 김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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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 프란츠 카프카


카프카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책이란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보통의 인간은 똑같은 일상의 반복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시대를 객관적으로 조망하기 어렵다.

생사를 오가는 수준의 사고가 발생하거나 그에 준하는 정신적 충격이 가해지지 않고는, 변하기 어렵고 기존 인식을 벗어나기 어렵다. (시대 이념과 체제의 중요성을 깨닫는 요즘이다.)

이런 강력한 충격 없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게 몇 있는데, 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은 과연 나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주었나?


네 번의 균열


1. 당연의 위험


'원래 그렇다'는 말은 듣기에 진절머리 나지만, 또 자주 하는 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은 무감각해지고 문제의식이 둔해진다.


어떻게 모든 걸 예민한 감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래동안 그래왔던 흐름' 안에 살고 있다면, 더더욱 어렵다.


과거 우생학이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이론이라는 걸 알지만, 그 시대 주류 체제에 속해있던 독일과 일본 사람들에겐 그게 당연히 맞는 이론이었을 것이다. 멀리서 조망해 판별하는 게 가능했을지.


이제 나의 시대에 대입해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맞다고 생각하는 이론 혹은 주의들 중 잘못된 건 없는지. 있다한들 내가 그걸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지.


책을 읽으며 그 '당연함'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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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화론이 능력주의와 관련해 갖는 핵심 의의는 경제적 합리성 내지 효율성이라는 당위에 생물학적 필연성을 덧칠했다는 점이다. 일단 우열 구분이 자명하고, 우열 경쟁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 고 나면, 그때부터 능력주의는 합리적 행동 지침이자 자연적 섭리가 된다. (...) 능력주의자들 상당수는 오늘날도 여전히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에 대한 지원은 부정되거나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효율성의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그것이 자연법칙 (약자 도태)을 위배한다는 이유에서다. (57p)


경제적 합리성, 효율성이라는 당위에 생물학적 필연성을 덧칠했다. 이 문장이 핵심이다.

능력주의가 행동 지침, 자연적 섭리가 되면서 약자 도태를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자연화한 능력주의'라 말한다.


'자연화한 능력주의'는 적어도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직관적 호소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오늘날 만연한 각종 혐오범죄 및 차별선동의 기저 논리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58p)


'자연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는 참으로 간편하지 않은가?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라는 한 마디면 되는 무적의 논리다. (마치 하느님만 갖다 붙이면 모든 이야기가 통하는 하느님 만능설처럼). 직관적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표현이 통쾌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은 비웃고만 있어도 되는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스쳤다.

나는 그러지 않았는가?



2. 공정하다는 착각, 평등이라는 신화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안다. 평등이란 판타지에 가깝다는 것을. 아니 절반만 읽어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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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성공에는 개인적 자질과 가정 환경 그리고 사회적 공공 자원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연히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성공한 개인이 받은 보상은 본인의 재능, 노력, 기여에 의한 평등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보상을 어떻게 책정해야 한다는 말인가?

100% 평등이라는 게 가능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질문이 전부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건 자본주의와 평등은 양립할 수 없고

민주주의가 평등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며

자유=평등도 아니라는 것이다.



3. 승자독식 피라미드, 특권의 강화


요즘 들어 어떤 현상을 볼 때, '여기서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사회 현상을 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공식 같다. 갈등으로 예를 들자면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고통 받는 사람이 있으면 꼭 어딘가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로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었다.


요컨대 시험이라는 선발 과정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극단적으로 불평등하게 설계된 승자독식 피라미드다. 이 불평등은 너무나 심각해서 기여에 따른 분배, 재능에 따른 분배', '노력에 따른 분배'라는 기준 중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자원을 독점한 승자들은 '지대추구'와 '사다리 걷어차기에 몰두하며 공동체의 장기적 생산성마저 떨어뜨린다. 극도로 불평등한데다 불합리하기까지 한 자원 배분 시스템이야말로 '암흑의 핵심'인 것이다. (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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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문제는 ‘불평등하게 설계된 승자독식 피라미드’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회의 불평등, 일부에게 돌아가는 몫의 불평등 수준이 아니라

대다수의 일상을 피폐하게 만들어 (1%의 승자가 아닌) 99%의 고혈을 빨아먹는 일, 배를 곯게하는 현실적 문제가 된다.


극단적 사례를 들자면, 산업혁명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 속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자본 점유 및 독식한 승자)를 위해 희생한 케이스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때처럼 대놓고 하는 착취(장시간 노동, 말도 안 되는 급여 등)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티 안나고 은밀하게 (책이 말하는 능력주의로 인한)착취가 진행되고 있는 거다.



4. 차별, 배제, 혐오. 문제는 능력주의였어


약자와 소수자 혐오, 차별, 배제 문제는 젠더 이슈 이상의 큰 사회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모르지 않을텐데, 사회는 어째서 이렇게나 배려가 부족한가.


소득 수준이 아무리 올라가도 좀처럼 공공성, 타인에 대한 배려, 소수자•약자에 대한 관용 수준이 높아지지 않고 여전히 그악스럽게 살아가는 한국인 (173p)


이 말처럼 소득 수준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랐어도, 관용 수준은 그를 따라지 못하는 간극을 보며 도대체 왜 그런가? 궁금했다.

팍팍하고 치열한 경쟁으로 경제 수준은 발전했으나 아직 그 수준을 누릴만큼의 마음의 여유는 없는 것인가, 하는 두루뭉술한 추정만 했을 뿐 명쾌한 답은 없었다.


연구에 따르면 '장학금을 줄 때 가정 형편보다 성적을 고려해야 한다' 같은 문항에서 청소년들은 높은 수준의 능력주의 태도를 보였다. 흥미로운 부 분은 이런 성향이 본인의 계층이나 학업성적과 크게 관계없이 고르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각자의 출발선이 아무리 달라도 객관적 지표나 성적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는 이런 생각은, 아마 약자,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배려정책에 대한 집단적 적대감의 원천일 수 있을 것이다. (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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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를 내면화한 한국인.

평등과 반대되는 위계질서, 배제의 정당화, 차별의 당연시 등이 본문에서 말하는 능력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느낌표 다섯개 정도(!!!!!).

너무 어렴풋해서 엄한 데 긁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명확한 원인 제시로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은 기분,,,


이에 대한 근거는 이후에도 책 곳곳에서 나온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도적/문화적 폄하, 계급 차별적 혐오표현, 좋은 대학 출신이 아니란 이유로 혹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내뱉는 차별과 비하와 멸시적 발언, 특정 직업 비하(특히 육체노동) 등...


인종 차별 하지말라고 부르짖으면서, 계급 차별적 혐오표현은 왜 그렇게 만연한다는 말인가.

이 모든 게 능력주의에서 파생되고 있었다.




이렇게, 책을 읽기 전 후로 확실히 이 네부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 정도 읽다보니... 애초에 평등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싶다.

평등 100인 사회가 될 순 없지만, 100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는 뻔해서 이제 지겹고..


무엇을 대안으로 제시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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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쉬웠다. 제시한 내용이 조금 미적지근했달까..


누가 이 문제에 관해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 있겠냐마는, 앞에서 깔아둔 밑밥때문인지 어떤 대안을 꺼내놓을지 기대가 컸단 말이다..

아무래도 통찰력 있는 진단과 개념과 문제의 명확한 간파 덕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불평등이라는 문제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질량을 생각하면 그 대안 역시 거대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어떤 대안은 황당무계한 몽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몽상은 포기되는 대신 구체화되어야 한다. (303p)


어려울지라도, 지속적으로 꾸준히 구체화해나가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난 최후의 능력주의자로 남은 것 같다(...)


최후의 능력주의자는 능력주의의 문제를 머리로 알고 있음에도 몸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며 아파트 경비 노동자 를 비하하는 주민을 지목해서 "공부 안 하면 저렇게 교양 없는 소리를 하게 된다"고 비판하는 '교양 있는 주민'을 떠올려보자.

겉보기에 그는 노동자를 대놓고 비하하는 주민보다 똑똑하고 선량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본질적으로 사람을 차별 하는 능력주의자인 건 마찬가지다. 학벌주의에 반대하는 말도 학벌 좋은 사람이 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는 심성,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힘을 기른 뒤에 행동하라는 조언, 진보는 지능의 문제라는 인식, 어떤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열등감의 발로라는 진단 등 얼핏 능력주의와 무관해 보이는 행태들도 사실 은 정확한 의미에서 능력주의의 갈래들이다. (298p)


‘학벌주의에 반대하는 말도 학벌 좋은 사람이 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느끼는 심성,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힘을 기른 뒤에 행동하라는 조언’ 이거 내가 했던 말과 생각 그대로라, 어디서 지켜보기라도 했나 싶어 흠칫했다. 아니 약간 충격먹은 것 같기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고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나는 아직 능력주의자다.. ‘문제를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 그게 나란 말이다.


이 책은 날 정말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쨌든 난 바다를 깨는 일에 실패했다



한국은 부동산이라는 불로소득으로 터무니없는 부를 쌓아올리는 게 오랫동안 용인되어온 사회였다. 그런 사회의 평균적 구성원에게, 한방병원 대신 들어온다는 장애인학교는 '억울한 피해'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배려', '관용' 같은 모호하고 말캉거리는 단어는 "왜 우리만 '호갱님'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는 냉철하고 절박한 소비자에게 위선으로 들리기 쉽다. 소비자 정체성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도덕적 설교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의 냉소만 강화할 뿐이다. (165p)


(소비자 정체성) "구매자 아니면 빠지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런 논리를 내면화한 이에게 ‘환대와 연대' 같은 사회적 가치는 한낱 목가적 백일몽에 불과하다. (166p)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논리 앞에 약자들에게는 대항논리가 없었다. (175p)


이에 대한 반복 혹은 대항 논리를 여전히 찾지 못했다. 사회적 손실과 진정한 평등의 필요에 관해 얘기한들, 도덕적 설교와 목가적 백일몽에 불과한 얘기들을 일장 연설 늘어놓게 되는 게 아닐지?

결국에는 이들이 억울해지지 않으려면 그 억울함을 (제도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해소해줄 기득권, 즉 강자들의 힘이 필요하지 않나?

강자들이 약자들 편에 서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인가?

여전히 이런 생각이 든다.


또한, 내 스스로도 능력주의를 극복해야 할 내적/외적 동기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극복 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는덴 동의하고

책을 읽으며 있었던 네 번의 균열이 또 언제 내게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능력주의 극복에는 실패했지만 그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다.




네 개의 질문으로 정리하는 책



내용이 좋아 발췌도, 메모도 많이하며 읽은 책이지만

다 옮기진 못하겠고 책을 읽으며 들었던 중점 질문을 추려본다.


1. 능력주의와 불평등은 왜 떼어낼 수 없나?
2. 불평등을 선호하는 한국인. 왜 불공정은 참지 않으면서, 불평등은 넘어가나?
3. 그렇다면 불평등은 왜 문제인거야?
4. 능력주의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한 거야?


이에 대한 답이 결국 책의 정리더라.


1. 능력주의는 왜 불평등한가?

온전히 개인의 능력으로 그 결과(고시, 취업 등)를 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경적 영향이든 사회의 기여든 그런 것들의 축적으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이거지 그에 비해 부와 명예는 골고루 나눠지지 않고, 한 개인에게 몰빵. 즉 과도한 보상이라는 것. 재능, 능력, 기여를 정확히 책정할 수 없고. 사회 기여도와 보상(부, 명예)가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이같은 특권의 집중은 결국 그 외의 사람들에게 기회의 제약이 된다.

또한 능력주의에 수반되는 위계질서, 배제, 차별 정당화는 불평등과 무관하지 않으니까.


2. 불평등을 선호하는 한국인. 왜 불공정은 참지 않으면서, 불평등은 넘어가나?

능력주의가 체화된 거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1~3부에서 설명하고 있고.

한국적 평등주의가 일반적인 평등주의와 다른 점은 —> 고루 나누자는 평등이 아니라 부자와 나의 비대칭을 조율하자는 의미의 평등.

한국인에게 불공정이란 ‘기회에 접근하는 불평등’인 것. 그 외엔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해서 불평등이라 인지 못한다는 것. 균등한 기회를 받고 기여, 투자, 노력에 의해 비례적으로 보상이 차등 분배 되었는지. 평등이 '모두에게 같은 몫의 분배'라면 형평은 '기여, 투자, 노력 등에 따른 차등 분배’ --> 한국의 공정성 개념은 평등보다는 형평에 가깝다는 것.

요컨대 한국인은 모두 같은 분배 결과(몫)를 받는 것에는 반대하며, 불평등하게 분배받는 것을 선호함 --> 불평등한 분배를 선호. ‘분배’가 불평등하길 원한다는 건, 평등과 거리가 멀다.


3. 그렇다면 불평등은 왜 문제인거야?

6장 단순한 ‘분배적 정의관’을 넘어,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 (빌거 휴거 이백충 등) 능력주의는 차별, 혐오의 죄의식 경감. 차별과 혐오를 ‘공정’하다고 믿게 만듦. 능력주의는 단순한 분배적 정의관을 넘어 개별 인간의 가치를 (주로 자본주의 가치 기준에 따라) 서열화 차별, 멸시적 표현이 능력주의에서 파생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적대적인 말이 차별이 되고, 물리적 폭력이 된다는 전개 양상은 예사롭지 않음 (예시로 나온 유대인 학살처럼) 능력주의가 극단적 폭력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임.

8장 약간의 불평등은 성장동기 될 수 있으나, 지나친 불평등은 성장에 해로움 (by.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도 해로움. (약물 중독, 살해, 비만 확률 -> 불평등한 선진국 시민이 더 가능성 높다) 능력주의는 (특히 자본주의적) 불평등을 재생산


4. 능력주의 불평등을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한 거야?

9장에서 그 대안에 관해 이야기. 하지만 약하게 느껴졌음. 어쨌든 핵심은 ‘특권의 해소’ 사회적으로 ‘불평등 해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는데 동의하지만, 능력주의에 체화된 사람들을 움직일 강력한 외/내적 동기가 부족하게 느껴짐. (나부터도 그런 걸..)

자본주의 사실 능력주의를 걷어내면 그 이면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 최종 보스는 바로 삶의 모든 부분을 정하는 사회/경제 체제. 즉, 자본주의. 상당수 부자들은 실제 사회 기여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가져간다. —> 이 사회에서 소득/급여는 ‘사회 기여’보다 ‘희소성’으로 책정되기 때문이지. 자본주의 사회잖아. 사회 체제의 전복 없이 세부적/미시적 해결책으로 능력주의를 바꿀 수 있나? 회의감이 듦. 하지만 모든 건 작은 균열에서 시작하듯. 세부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개혁함으로써 사회 체제 변화를 이끌고 종국에는 능력주의까지 바꿀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함.

해결책 관련해서 ‘사회력 키우기’인 이 파트는 그나마 좀 구체적인 것 같기도 해.

그럼에도 (책에서도 말하듯) 나는 최후의 능력주의자(능력주의의 문제를 머리로는 알지만 몸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로 남을 것 같고,,,

또한 그럼에도.. 문제가 거대하게 느껴지고, 대안들이 몽상으로 느껴질지라도 포기 대신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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