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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립씨 Aug 04. 2022

III: 책의 정체성

서점이 정해주는 책들의 장르

서점의 매력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가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날 때가 있다. 휴대폰 화면에서 클릭 몇 번만 해주면 다음 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현관문 앞으로 책이 든 박스가 배달된다.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책도 저렴할 뿐더러, 집 앞까지 책을 가져다주니 편하다. 물론 나의 게으름은 내가 온라인 서점의 충성 고객으로 등극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 E-Book으로 당장 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책 배달을 기다릴 수 있는 정도의 인내심은 남아 있다. 머지 않아 그 인내심도 사라질 것 같다.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가 있다. 책장이 가득한 "현실에 존재하는" 서점 말이다. 서점에 들어가자마자 즐길 수 있는 그 중독적인 새 종이 향 때문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이는 서점 방문의 이유로 충분하지만, 고맙게도 현실의 서점은 집구석에서는 느끼기 쉽지 않은 자잘한 매력을 선사한다. 책이 한가득 꽂혀 있고, 시끄러운 번화가 중심에 있는 서점이라 할 지라도 서점 안은 무슨 "법"이라도 있는지 꽤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책 냄새를 즐겼으면 이제 서점만이 가진 그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게으름을 이겨내고 서점까지 간 것에 대한 짭짤한 보상이다.


          그렇게 감각을 통해 서점을 즐기고 난 뒤에야, 드디어 '활자'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 쯤에야 서점이 주는 조그만 매력 하나를 더 발견할 수 있다. 서점에서는 생각치도 못했던 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내가 찾는 책을 검색하면, 1초만에 내가 원했던 책의 커다란 표지가 눈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현실의 서점에서는 원하는 책을 찾아 책장을 가로질러 갈 때면, 내가 즐겨 읽지 않는 장르의 책장에서도 여러가지 책들이 나의 눈길을 끈다. 당연히 내가 도착한 책장에서 원하는 책을 뽑고 나서도 그 주변의 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훑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가끔 생각치도 못했던 책들을 구매해 썩 만족하며 읽은 적이 있다. "독서의 편식"을 고치기 위해서는 서점 방문은 꽤 효과적인 것 같다.


그런데 네가 왜 거기 꽂혀 있는지?


모호한 분류


아무튼 편식을 의도치 않게 고치다 보면 이 "요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일 중독이라도 걸린 것인지, 서점을 들르면 항상 "역사"라고 적힌 책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역사 분야 책장 안에서도 여러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예를 들자면 "영국사", "프랑스사"와 같은 방식이다. 별 생각없이 눈으로 책장을 넘겨보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책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 꽂혀 있다는 생각이 들 때이다. 적어도, 다른 책장에도 꽂힐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20세기 중반에 벌어졌던 알제리 전쟁을 예시로 들어보자. 대개는 프랑스사 분야에 꽂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의 전쟁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알제리사 혹은 (조금 더 확장된 범주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사에 넣는 것이 조금 더 매력적인 분류로 보이기도 한다. 분류의 애매함에 대한 예시는 수없이 많다. 가령,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기를 다룬 책이 있을 때, 이 책은 어느 책장에 꽂혀 있을까? 대개 영국사 분야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영국사에 꽂혀 있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인도사 혹은 주제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제국사/제국주의사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앞선 예시들보다 더 많은 나라가 엮여 있는 홀로코스트 역사의 경우 더 다양한 책장들에 발을 걸칠 수 있겠다. 이렇듯, 어느 한 역사를 하나의 범위에 국한하여 "번지수"를 정해주는 것은 종종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당연히 이런 엉뚱한 생각을 현실의 세계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찌됐든 각각의 책들은 "정해진" 책장에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책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해당되는 책장마다 넣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서점의 책장을 죄다 뒤엎어버리고 다시 책장의 이름을 붙이고 책들을 넣자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위의 예시로 든 것도 오롯히 나의 기준이기 때문에 책장을 다시 정리하자는 것도 앞서 이야기한 문제를 똑같이 발생시킬 것이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분류'는 한 번쯤 생각해볼 거리가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서점에서 즐길 수 있는 꽤 재미있는 활동인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이런 분류는 누가 정한 것일까? 아, 물론 서점 주인이겠지. 그럼 서점 주인은 어디서 영향을 받아서 그러한 분류를 한 것일까? 특정 시기의 특정 학계의 입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회에 널리 퍼진 고정관념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기준으로 책들이 꽂혀있든, 우리 각자는 그 책들이 다른 곳에 꽂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특정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 중 누구의 관점으로 그 역사를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책이 가야할 책장도 정해질 것이다. 책을 펼치기 전에 책이 꽂혀있는 장소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소위 말해 '비판적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을 한층 더 재미있게 (혹은 한층 더 꼬아서) 즐기는 방법도 있다. 책의 분류는 시대별로도 달라졌고, 서점마다도 조금씩 미세한 차이가 있다. 장르에 대한 분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은 특정 지역/장소마다 한 역사를 얼마나 다르게 보는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운 관전포인트이다.




디저트도 모양, 맛, 크기에 따라 나누어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여러 곳에 놓일 수 있다. 반드시 한 곳에 정해질 이유는 없다.


서점이 정한 분류를 생각하며 다른 분류에 들어갈 수는 없을지를 생각하게 되면 조금 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런 생각을 해본다면 역사, 사회, 정치 등을 포함한 인간 세상을 1차원보다는 3차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3차원으로 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욱 생동감 느껴지게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각각의 분류에 따라 음식도 그 정체성이 달라진다. 사진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한가득 쌓여 있는 에클레르도 프랑스 음식이라는 분류에 들어갈 수도 있고, 디저트로 분류할 수도 있다 -- 물론 둘 다도 동시에 해당될 수 있다. 책도 그렇다. 어느 한 분야에 국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서점에 간다면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이 책들이 어느 책장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을지 생각해보는 나의 이상한 취미를 공유하고 싶다. 게으름을 이겨내고 서점에 들르게 된다면 수많은 책들이 한 눈에 들어와서 이를 비교하는 것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당연히 이 요상한 취미를 즐겨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다. 서점에 가자마자 느껴지는 그 향긋한 새 종이 향만 맡고 와도 서점 방문의 목적은 충분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점의 냄새와 분위기를 다 즐기고도 여전히 시간이 남는다면 책의 분류를 구경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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