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이'라는 말은 때때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정반대 아닐까?"
여름 휴가가 다가온다. 해외 여행을 떠날 사람들은 간만의 기대와 설렘을 감출 수 없다. 몇 십 년전과 비교하면, 해외를 마주하는 것은 오늘날 꽤 잦은 일이 되었다. 해외 여행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때는 한국 밖의 나라들, 문화들, 그리고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서나 겨우 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고정된 이미지' 등으로 편견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부터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을 방문하였고, 동시에 우리에게도 해외 여행의 문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세계 각지의 문화 및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은 다소 "폐쇄"적이었던 우리의 인식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드디어 문화의 상대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 차이'라는 인식은 우리네 삶에 꽤 중요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네들의 대화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문화 차이'라는 말이 이따금씩 가져오는 '상대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고/외면하는' 아쉬운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물론 '문화 차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중요한 인식은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포용성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령, '문화의 우월성' 따위를 따지는 실수와 잘못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기도 한다. 문화 차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더욱 더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우리가 가졌던 시선을 조금 더 확장하여 다양한 타자들을 마주하며, 동시에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종종 '문화 차이'라는 단어를 그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쓰는 경우도 잦다. 이 "마법의 말"은 서로를 인정해주는 듯 하나, 불행히도 서로를 용납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내려다보며, 결국은 대화를 단절해버리는 것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 이는 단순히 국적의 다름을 너머, 즉 같은 한국 국적자 사이에서도 생기는 일이다 --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따금씩 의견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다툼이나 언쟁에서 금새 지쳐버리고, "그래 문화 차이야 (마치, "너와 나는 공유하는 문화가 달라, 그러니 그만하자."라고 말하는 것 같다)"라고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앞서 말했듯, 여기에서 '문화'는 단순히 국적의 다름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 내에서도 우리는 수 많은 요소들에 의해, 각자는 각기 다양한 문화의 조합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자면, 경제적인 부분, 지역마다의 문화, 혹은 다양한 교육 배경에서 얻게 되는 문화적 배경 (이 외에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많은 요소들이 있겠다) 때문에 각각의 개인은 결코 완전히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나"와 "타인"은 결코 완전하게 일치하는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언쟁이라도 생겼다가 끝내 해결 못하고 지쳐버릴 때면, 결국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 복잡스러운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버리고 정당화시켜버리는 것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유래되었는데, 자세한 설명은 글의 마지막을 참고하면 되겠다)' 마냥, "그래 문화 차이야"라는 말로 대화를 끝낸다. 안타깝게도 "그래 문화 차이야"라는 말은 언쟁을 풀기는 커녕, 모든 대화와 소통을 중단시켜버린다. 당장 그 순간에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종종 그 반대이기도 하다. 언쟁으로 더욱 꼬여버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문화 차이"라고 선언해버리는 것은 이따금씩 '내가 공유하는 "우월한" 문화를 너는 이해하지 못해'라는 것을 내포하기도 한다. 즉,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언쟁 중인 상대는 "내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는 "낮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때때로 들어있다.
결국, 이것은 소통의 부재를 너머,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수준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문화 차이(를 이해한다)'라는 말이 가진 본래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작동할 수 있다 -- 너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결국 문화 차별로 이어지며, 인종/국적/지역/경제적 등 각종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화 차이"라는 말을 다소 쉽게 내뱉는 것 같다. 결국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배려와 나 스스로에게 우월감을 부여하는 데 이용된 말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부디 '문화 차이'라는 말이 언쟁의 귀찮음을 해결하기 위해 쓰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말보단, 가슴 속에서 진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갖고 (때때로는 답답할테지만) "언쟁"을 이어나가보길 바란다. 결국 이것은 서로간의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우리 사회 내에서 그리고 글로벌화된 오늘날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건전한 소통을 만들어 낼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배려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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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뭐냐고?
번역하자면 "기계로 만들어진 신"이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 -- 종종 희곡에서 -- 에서는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들)"이 되겠다) 만능의 존재가 나타나서 극에서 갈등을 일으켰던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해버린다. 당시, 극에서 만능의 존재라는 역할을 맡았던 배우는 각종 기계장치로 꾸려진 무대장치 (즉, '기계') 를 타고 극에 등장한 뒤, 극적인 연출과 함께 극의 중심에 있던 문제를 일순간에 처리해버린다. 그렇게 연극은 막을 내린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다소 문맥없이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것에서 쉽게 내뱉어 버리는 "그래 문화 차이야"라는 것은 마치 우리들의 대화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