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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립씨 Feb 13. 2024

토론토의 사람들

2015년 봄

정체성, 그 알쏭달쏭한 무엇에 대하여


프랑스의 유대인사. 나의 전공.

미국에 있을 때 몇몇 사람들이 이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묻곤 했다. 내가 있었던 대학의 인문대학처와 했던 짤막한 인터뷰에서도, 어느 한 교수에게서도 그리고 어느 한 박사학생에게서도 이 조심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한국인이 프랑스의 유대인사를 공부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간단하게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전공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어떤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전공에 완전히 안착하는 것에는 4-5년 정도가 걸렸다. 프랑스사를 선택하게 된 것은 석사과정에 들어가서야 정해진 일이지만, 유대인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학부를 마쳐갈 즈음이었다. 내게 불쑥 나타난 ‘정체성’이라는 것이 시작점이었다.


정체성이라는 것의 성질은 이어령비어령이라는 말이 아주 적절하다. 근현대를 접어들던 유럽사회에서는 인종, 민족, 종교, 사상 등 많은 것들이 자신과 타자를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점으로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실상, 그 기준들은 무척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었다. 토론토에 머물렀을 때, 그 곳의 사람들이 보여준 수많은 정체성‘들’은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토론토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주제에 맞는 마땅한 토론토 사진이 없다. 위의 사진들은 프랑스 정체성에 대해 떠오를 때마다 긁어모았던 사진들이나 이미지들이다)



토론토는 세계에서 손꼽아주는 다문화 사회다. 그 도시에는 영국계나 프랑스계 캐나다인 또는 북미 원주민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도 함께 살고 있다. 가장 최근의 자료로 보이는 2021년 토론토 시의 통계를 보면: 영국인,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인도인, 이탈리아인, 필리핀인, 독일인, 프랑스인, 폴란드인, 포르투갈인, 유대인, 자메이카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그리스인, 아프리카인 (여담인데, 왜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의 경우에는 국가별로 나뉘지 않고 대륙으로 묶이는지 모르겠다), 스페인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셀 수 없이 많다. 종교만 하더라도, 기독교,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 불교, 시크교 등 많은 종교적 신념을 가진 공동체들이 함께 공존한다. 물론 내가 토론토에 있던 시절도 이것과 비슷했다. 내가 살던 곳에서 남쪽으로 가면 이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고, 북쪽으로 가면 러시아인들이 살던 동네가 있었으며, 동쪽에는 중국인들이 큰 지역사회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민자들이 꾸린 여러 공동체들은 동화처럼 행복하게만 어우러져 사는 것은 아니었다. 인종, 국가, 종교 등 온갖 기준점은 서로를 나눌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를 시기하기도 했고, 온갖 편견은 다 만들어내서 서로를 싫어하기도 했다. 가령,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아마도 동북아시아인 한정이었을 것이다) 토론토를 비롯해 캐나다의 집값을 올려놓는다는 편견이 공공연히 돌았다. 반유대주의자들이 으레 떠들어대듯, 유대인들이 토론토의 부를 거머쥐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다.이런 말들을 하는 이들은 결코 믿지 않겠지만, 가난한 동북아시아인들이나 유대인들도 많다. 무슬림들의 경우 ‘테러’와 엮여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고는 했다. 돈에 인색한 인도인, 가난한 동유럽인 등 토론토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온갖 폄하가 토론토 전역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이런 얘기들이 종종 나오곤 했다. 그런 모습이 꼭 유령 같았다.


서로 편견 딱지들을 쉴 새 없이 부과하던 이민자들끼리도 “주류 백인 사회”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합치곤 했다. 서로를 지독히 시기하다가도 ‘이민자’라는 정체성으로 모두가 합쳐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꽤 신기했다. 이와 반대로, 캐나다 사회에서 하나의 큰 공동체라고 여겨지던 것이 실제로는 서로를 튕겨내는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을 때, 정체성이라는 것은 더욱 내 관심을 끌었다. 가령, 인도인과 파키스탄인들은 서로를 엄청난 경쟁 상대 - 간혹 적대적으로 보는 것 같기도 했다 - 로 여기는 관계, 똑같이 동유럽에서 왔다고 생각했지만 폴란드인과 러시아인 사이의 해묵은 적대적 관계, 캐나다라는 먼 곳에서 으레 아시안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곤 했지만 서로 미묘한 감정을 가지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관계 등이 있었다.


어렸던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것이라면 ‘한국인’이라는 것도 잘게 나누어진 조각들의 모임이었던 점이다. 예를 들자면, 나와 같은 사람처럼 잠시 캐나다에 머물다 갈 사람, 한국계 캐나다인 그리고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함께 할 때도 있었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각자에게 차지하는 지분은 모두 달랐다. 말하자면, 어떤 한국계 캐나다인은 자신은 캐나다 여권만 가졌을 뿐 한국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또다른 이의 경우에는 자신이 “우연히 한국어를 할 줄 알거나, 우연히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일 뿐”, 자신을 완전한 캐나다인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한국인에 대한 불미스러운 이미지가 토론토 사회에서 언급될 때면, 이들 여러 한국인은 서로에게 그 불명예를 떠넘기려 하곤 했다.


토론토에서 볼 수 있었던 정체성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다양한 기준 (인종, 민족, 종교, 사상 혹은 그 어떤 기준이든)으로 정하는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부여된 정체성도 있었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과 더불어, 이로 인해 사람들 간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고교 시절 여러 사람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던 성미가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희생은 사랑의 연장선상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 즈음하여, 홀로코스트사(史)를 수강하게 되었다. 2015년이 시작하던 때였다.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던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고등학생 시절 보았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문득 생각났을 수도 있고, 그 강의가 정체성에 대한 것을 다루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순히 강의 평점이 괜찮다는 이유로 혹은 현대 유럽사에 관심이 생겨나던 차에 눈에 먼저 띄었던 강의 일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사 강의에서는 2차세계대전기에 전(全) 유럽적으로 벌어졌던 유대인 박해, 탄압 및 학살에 대해서 다루었다 -- 나치 독일 뿐만 아니라 많은 유럽국가들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를 다루었다. 특히, 정체성을 다루는 문제가 끔찍한 폭력의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각각의 유럽국가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들과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구분했는지’, 이와 동시에 ‘각 유럽국가에서 살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등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다양하게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인간사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폭력은 정체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대학원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홀로코스트를 중심으로 정체성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던 때였다.




적잖은 사람들이 질문했던 것에 대해 지금이라도 제대로 대답해보려 며칠동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드라마틱한 순간은 없었다. 수 년에 걸쳐 내가 보고 들었던 것들은 내 전공 선택의 한 조각이 되었다. 이것이 유대인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다. 어쩌다 프랑스사를 하게 되었는지도 추후 설명할 것이다 (이것은 다소 어이없게도 흘러가듯이(?) 정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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