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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립씨 Jun 12. 2022

I: 사람 이야기를 쓰다

사람은 활자나 숫자가 아니다

우선, 다소 직접적인 내 질문에 머릿속으로 아무렇게나 대답을 해주었으면 한다.


역사를 쓰는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간단하게는 '과거를 쓰는 것'이라든가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있다. 어쩌면 한 때 많이 읽혔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을 비롯해, 최근 관심을 받는 '빅 히스토리' 분야처럼 선사시대 이전부터 지구의 역사 (지질학적이거나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역사말이다. 가령, 지구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혹은 자연의 역사를 쓰는 것이라 대답할 수도 있다. 조금 더 있는 체하며 말한다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분석해내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 편의 목적은 역사를 쓰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보다는 앞서 밝혔듯, 과거의 사건들과 사람들을 서술해가며 어느 한 사학과 대학원생이 들었던 감정을 고백하고 싶다.


          사람을 공부하는 인문학의 한 갈래인 '역사'에서 오늘날 쓰여진 글들을 읽거나 혹은 스스로가 글을 쓸 때면 이따금씩 이 활동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 개론서 같은 것을 처음 접했을 당시 머릿속을 스치던 생각은 사람의 이야기가 다소 딱딱하게 쓰여졌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시대에 관련하여서도 짧게는 몇 문장, 길어도 몇 문단으로 정리되어 쓰여져 있었고, 무엇보다 사상자 관련한 이야기들은 간단한 표로 정리된 것들이 많았다. 수 많은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역사를 이룬다고 생각했는데, 딱딱한 문체로 적힌 검은 글자들과 마치 엑셀 표를 보는 듯한 사상자에 대한 표는 나로 하여금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써내려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분쟁과 전쟁은 계속되었다. 나의 전공인 유럽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수천 혹은 수만이 죽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일어났으며, 중세 즈음 일어난 십자군 전쟁에서는 약 2백여년에 걸쳐 셀 수 없는 사람이 죽어갔다. 근대와 현대에는 어떤가? 두 개의 세계 대전에서는 더 이상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수 천만이라는 숫자의 사람이 희생되었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게도,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전쟁에 휘말려 죽기는 일쑤였다.


          최근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보라.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자면 참담하고 가슴이 아프다. 꽃다운 나이인 20대 중반의 어느 한 우크라이나 해병대원은 다리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자, 자폭하여 스스로를 희생하였다. 마리우폴에 갇혀 "최후"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던 절망적인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에 대한 뉴스는 연일 보도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아들들을 전쟁터로 보낸 어머니들이 울먹이며 인터뷰를 하던 모습도 머릿속을 스친다.


          이 전쟁뿐만 아니라, 사실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수천 혹은 수만의 병사들과 민간인들은 각자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가족과 고향을 잃은 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우리들의 눈시울을 붉게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역사책에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리 "관심 있게" 기록된 경우는 적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활자와 숫자라는 역사로서 쓰여지곤 했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각 전쟁이 주는 "거시적인 의미"가 검은 활자들과 숫자들에 이어 설명될 것이다 -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 국가기록원에서 찾은 서류 박스 그리고 쏟아져 나오는 누군가의 이야기들

          그러나 아카이브에서 사료를 뒤적이다 보면 잊혀졌던 개개인의 이야기들은 시대별로 셀 수 없이 쏟아진다. 가령, (다행히도) 아카이브에 잘 보관된 편지 같은 것을 읽을 때면 그 개인의 감정이 전해져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역사를 쓸 때 잘 전해지지 않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어느 한 개인의 이야기는 운이 좋으면 기록원에 보관되어 가끔씩 역사학자에게 읽힐 뿐이고, 많은 경우는 어디에도 보관되어 있지 않고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다.


          논문이라도 쓸 때면 '내가 하는 활동은 나도 모르게 개인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고는 했다.


          나는 개인의 이야기를 조금 더 생명력있게 담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료를 통해 과거를 더듬어 나가며, 잊혀져버린 이들의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다. 내가 써내려 갈 역사는 잊혀진 개인들을 위한 의미있는 활동이 되었으면 한다.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거창한 말은 집어치우고, 잊혀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하여 다시 탄생시킨다는 것이라는 의미있는 활동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생명력 넘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딱딱한 문체에 가두고 싶지도, 빽빽한 숫자들에 넣어버리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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