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인종차별

한국인 김철수 씨에게 사과를 고합니다.

by 김서록


Where are you from?
(어디에서 왔니?)



영어 교과서에서 거의 처음 접했던 문장으로 기억한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정답은 ‘I’m from Korea (한국에서 왔어)’였을 것이다.


막 영어를 익힌 김서록 어린이도 ‘아임 프롬 코리아’를 외쳤다.

어쩌다 영미권 사람을 만나 이 문장을 또박또박 말하면 그들은 풍부한 표정과 몸짓으로 반응한다.


Wow, Your English is good!
(너 영어 잘하는구나!)


그 말을 들을 때면 ‘맞아, 나 영어 진짜 잘하지’하며 뿌듯함에 으쓱대던 시절이었다.

한 두 마디만 했을 뿐인데 ‘잘한다고 해주는’ 상황이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언어를 막 배우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는 순간이다.

나 또한 그런 반응에 신나서 외국어 말하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외국어로 먹고 산다.


어느 날인가, 이 말이 굉장히 ‘인종차별적’이라는 의견을 접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 같은 토종 한국인에게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민자 출신의 가정에는 엄청난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라고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나라에서 나고 자라면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소속감을 가진 상황에서

외모나 발음 등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면 유쾌할 수가 없으리라.






문득 '김철수 (가명)' 씨가 떠오른다.

그는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할 방글라데시의 혼인증명서 때문에 이메일로 서류 준비를 의뢰했고,

향후에 내 사무소를 방문하여 완료된 서류를 찾아가기로 한 고객이었다.


의뢰받은 서류를 대충 확인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김철수 씨의 국적은 대한민국, 배우자인 여성의 국적은 방글라데시.

일을 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인 남성과 방글라데시 여성의 국제결혼일 뿐이었다.

그런데 서류를 제대로 살펴보니 김철수 씨의 부모도 방글라데시 사람이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일부 국가의 혼인증명서에는 신랑 신부의 부모의 개인정보가 포함된다)



뭐지?



그의 구체적인 배경을 직접 들은 바는 없지만

추가로 보내준 철수 씨 명의의 기본증명서 등을 보았을 때

철수 씨는 서류에 '본관'도 기재된, 완벽한 한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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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그가 사무소를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커다란 쌍꺼풀, 구릿빛 피부에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그는

예상보다 빠르게 업무가 처리된 상황에 기분이 좋았는지,

“아이고, 행정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주변에 아는 외국인 친구 많거든요.

행정사님 사무소 많이 소개해드리겠습니다.”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가 한국 사회의 일원임이 분명히 느껴졌다.

전형적인 한국인의 외모가 아닐 뿐.

그래서였을까. 반사적으로 그의 한국어 실력을 칭찬했다.


아니, 어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세요?



철수 씨는 내 말에 껄껄 웃으면서 다시 한번 고맙다며 서류를 챙겨 사무소를 나섰다.

자리를 뜨는 그 뒷모습을 보며 ‘대단한 사람이야’ 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이런 내게 유튜브 알고리즘이 충고를 해주고 싶었던 걸까?

그날 저녁, 유튜브 추천 영상에 인종 차별 관련 콘텐츠가 보여서

별생각 없이 클릭해 보았다.

“왜 인종차별을 하고 그런대”하고 읊조리는데,

동영상을 다 보고 나니 철수 씨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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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싶었다.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그에게 실례를 범한 것 같았다.


누가 나에게 “한국말 잘하시네요”라고 칭찬한다면?

상대방이 악의 없이 순수하게 말하더라도 갸우뚱했을 것 같다.

딱 하루, 딱 한 번만 그랬다면 장난처럼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루에 최소 한번, 사는 내내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에게 미안해졌다.

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 ‘보였으나’

철수 씨가 속으로 상처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인종차별이 멀리 있지 않은 듯하다.

다각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을 접하는 번역행정사 특성상

더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다.

덕분에 반성을 많이 했다.


고맙게도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친구들에게 우리 사무소를 소개해주었다.

소개를 받았다며 찾아오는 방글라데시 국적이 사람들이 늘었고,

그와의 일화를 떠올리며 세심하게 응대하고자 노력했다.




철수 씨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의 인구 구성이 다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사무소에 의뢰하는 고객을 보면 여전히 한국 국적자가 많지만,

외국 국적자의 의뢰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인, 영국인 등 서양권의 고객부터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등 의뢰인의 출신지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게 여러 문화권의 사람을 접하다 보니 때로는 ‘아차’ 싶은 순간이 생긴다.


모르면 오해할 수 있고, 본의 아니게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함께 살아가는 사회임을 늘 기억해야겠다.

모르면 알려하고, 실수했을 때는 사과하고 개선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방치는 언제든 갈등으로 바뀔 수 있다.

일개 개인의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수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케이스가 쌓이다 보면 무시할 수 없는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한다.

늘 배우려 노력하며, 행동거지를 바르게 해야겠다.


오늘도 무사히...!






*서록의 말

평일 점심에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건 처음 같아요.

글 길이가 조금 길어서 가독성이 떨어질까 싶어

Sora AI로 이미지를 생성하여 끼워 넣어 보았는데,

조금이라도 더 즐거움이 있으시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드디어 금요일! 우리 조금만 더 힘내요.

응원해 주시는 독자 분들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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