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도 없을 때 검색창이 의외로 힘이 됐다
타이슨이 그랬다지.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나 또한 그랬다. '한한령'에 얻어맞기 전까지는.
로드샵 매장에 들를 때마다 중국인 관광객이 화장품을 털어 가다시피 하던 광경과 중국인 친구에게 화장품 구매를 부탁받는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퇴사 후에 화장품 구매대행을 할 계획으로 야심 차게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사업자 등록을 한 지 오래지 않은, 바야흐로 2016년. 싸드 (THAAD)를 구실로 중국에서 이른바 '한한령'을 내리게 되는데 (...)
결론: 첫 사업 망함!
남들이 낙오자로 볼 법한 상태가 되었다. (남들의 시선이 무슨 상관이겠느냐만- 그 당시엔 신경 쓰였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모든 경험은 경험치를 높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머릿속에서 복잡하게만 펼쳐지던 내용을 노트 한 권을 펼쳐 적어 내려갔다. 좋은 성과가 있었던 영역, 부족했던 영역, 앞으로 잘할 법한 일과 스스로 잘 해내길 바라는 일... 정작 대학에서는 고심해 본 적 없는 것들에 관하여. 키워드는 곧 3개로 추려졌다. 글쓰기, 외국어 그리고 전문자격으로.
자, 키워드는 얼추 뽑았다. 그러나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직업이 있긴 할까?
돈도 빽도 없으니 ‘질문’이라도 잘해야 뭐라도 건질 텐데, 이 질문이라는 것도 뭘 알아야 할 수 있는 법이다. 자문자답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질문에 답해 줄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 그럴 때 제일 해볼 만한 방법이 검색창 활용이었다.
검색어는 '구체적'으로 적어야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는다. 누군가 '점심 뭐 먹을래?' VS '한식 중식 일식 중에 뭐 먹을래?' VS '제육볶음하고 비빔밥 둘 중에 뭐 먹을래?'라고 물을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답변자 입장에서 가장 마지막 사람에게 하는 답변이 가장 쉽고 명확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3가지 키워드를 한꺼번에 적으려다가, '전문자격증'을 먼저 검색해 보았다. 전문자격 특성상, 결과값이 제한적일 테니 그 결과값에서 나머지 2가지 키워드와 맞닿는 부분을 찾겠다는 생각이었다.
검색 결과, 국가 전문 자격 목록이 나왔는데, 흔히 들어본 전문 자격 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자격증이 있었다. 나머지 키워드와의 관계성을 고려하며 자격 정보를 훑었는데, 아무래도 모든 키워드를 충족할만한 자격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로 가기 직전, 눈에 띈 하나의 자격증.
외국어번역행정사
외국어라는 키워드, 글쓰기의 하나인 번역까지 모두 섭렵하는, 대한민국 행정사법에 따른 국가전문자격사.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수행직무에 관한 설명을 읽었다. 설명은 간단하게 한 줄로 쓰여있었다.
‘행정기관 업무 관련 서류의 번역과 번역한 서류를 위임자를 대행하여 행정기관 등에 제출하는 업무’
더 알아볼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주의* 이 한 문장으로만 번역행정사란 직업을 이해하게 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음) 개정 수험서 출간과 동시에 1차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텅장'이 주는 공포감 때문에 용돈벌이 수준이라도 일거리를 포기하지 못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1차 시험에 합격한 후 2차 시험 때는 일을 그만하고 공부에만 집중하기로 했으면서도 종종 불안했다. 다만, 공부가 워낙 재미없었던 터라 한 번에 합격 못하면 미련 없이 방구석을 뜨겠다며 열의가 불태웠던 건 다행이었다.
‘귀하를 모실 수 없어…’ 같은 류의 문장을 또다시 마주할 까봐 합격자 확인 버튼 누르기가 괜히 망설여졌다. 흡-하고 숨을 들이키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카카오톡이 먼저 나섰다.
‘외국어번역행정사 2차 시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큐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Note
흑역사 에피소드는 아주 많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쓰도록 하고 (향후에 필요하다면 다시 쓸 계획!)
다음 주부터는 외국어번역행정사로서의 에피소드를 쓸 예정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안온한 일요일 밤 되시길 바라요:)
23. 03.05
김서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