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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록 Feb 19. 2023

스타트업에서 부자 맛보기  

번역행정사 김서록 과거사 - 스타트업 D사 재직 에피소드 


만나는 사람이 좋든 나쁘든 간에 배울 점이 있다지만 연이어 흑역사를 쓰다가는 누군가 (본인 포함) PTSD가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또 다른 흑역사인 C사 에피소드를 나중으로 미뤄두고, 스타트업 D사에 관한 에피소드를 적어보려 한다. 좀 더 근무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본 유일한 회사니까. 


D사를 알게 된 건 페이스북 덕분이었다. 이직을 해야겠단 마음을 굳힌 차에 우연히 채용공고를 보게 됐는데 그게 바로 D사의 공고였다. 그동안 봐 온 채용공고와 다르게 예비 구성원에 대한 성의와 배려가 돋보였다. 스타트업 쪽에 몸담고 있는 지인이 '스타트업은 복불복이라 급여가 짤 수도 있다'라고 조언했지만 어차피 대기업 취업 아니면 뭐... 망설일 이유가 있나? 결국 면접까지 가게 되었다.  


나나 잘하세요 

면접은 수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이사 직함을 단, 비슷한 연배의 여성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담소를 나눈 게 다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으면 편히 해보라는 말에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 로켓에 올라타고 싶어요.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요. (잡스앓이...?) 회사에서 준비하는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고, 거기에 제가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이사님은 내게 당돌한 구석이 있다며 웃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난 뒤에 대표님을 뵐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는 전형적인 면접 분위기였다. 그러나 질문이 그동안 받아 본 질문과 달랐다. '이성친구가 있나요?'라든가 '결혼 계획이 있나요?' 따위의 질문은 전혀 없고, 업무에 관한 핵심 질문만 정중하게 물어볼 뿐이었다나중에 내가 면접관 역할을 한다면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질문이 좋았다. 긴장을 해서인지 모든 질문이 기억나진 않지만  마지막 질문 하나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은가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답하기를 주저했다. 


"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가 보군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입사해서 회사가 주는 일을 하다 보면 기회가 생기겠거니 했으니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조차 그 순간에야 깨달았거창한 꿈을 꾸는 모습에 취해 그동안 주둥이만 나불대고 다녔구나. 면접 질문이 늘어갈수록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진 반면, 회사는 나를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 맛보기     

연락이 없을 줄 알았는데 D사의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회사는 나까지 총 3명뿐인 작은 스타트업이어서 여력이 많지 않았지만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인수인계를 잘하고 오라며 한 달을 기다려주었다. 한 달 후 정식 입사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회사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을 살려 유연한 의사 결정이 이뤄졌고, 움에 인색하않은 환경이라 연봉 이외의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공부를 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IT 유망주로 이름을 날린 대표님의 행동과 생각을 곁에서 보고 들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당시에는 잘 모르고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은 부분도 있다


대표님은 자신이 경험한 좋은 것들을 직원과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는데, 종종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근사한 곳에서 직원들 점심 먹이기를 좋아했다. 하루는 신라호텔 파크뷰에서 회식을 하고 사무실로 복귀하려는 참이었다.


"얘들아, 우리 대한민국 최고 부잣집에 가볼래?"


차는 곧 한남동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경사가 제법 있는지 엔진소리가 제법 커지다가 소리가 점점 잦아들면서 차도 느릿느릿 움직였다. 


"여기야. 대한민국 최고 부잣집."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벽이 높아 건물이라는 사실 정도만 인지할 수 있는, 하지만 누가 봐도 으리으리한 곳이었다. 입모양이 '오'하고 동그랗게 변하는 그런 집. 


"대단하지? 근데, 회사 다녀서는 이런 집 못 산다." 


그가 말을 마치자 차는 다시 언덕길을 내려갔다. 

바보가 아니라면 모를 리가 없는 사실인데, 새삼스레 그 짧은 순간이 강렬하게 남았다. 

대표님의 말은 내 귀에 이렇게 들렸다. 


'회사원으로 살지 마. 창업을 하고 기업가가 되렴.' 

   

'퇴사 권유'라고 쓰고 '해고 통보'라고 읽는 그런 게 아니라, 그대로 '권유'. 

즉, 퇴사를 추천받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Note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쓰겠다고 마음먹고 쓰는데, 겨우 1분 남겨놓고 업로드하네요. 

혹여 기다리신 분을 위해 업로드 시간이 너무 늦지 않도록 앞으로 노력해 보겠습니다^^;

글을 좋아해 주시고 구독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23.02.19

김서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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