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있는 수술간호팀의 우리 과에, 소속된 방이 하나 늘어난다. 타과에서 인력을 받고, 그들을 트레이닝 시키는 사이에 그 '새로운 방'의 어사인이 문제였다. 비뇨기과,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가 요일별로 다르게 모두 배정된 잡방에 누구를 보낼 것인가. 거기에 일반 자궁경, 방광경부터 복강경수술, 로봇 수술까지 수술 종류와 난이도도 들쭉날쭉한 그 방에 가게 된다. 방장과 액팅 그 사이에서 나랑 연차가 같은 동기랑 둘이. 허허. 일단 임시로나마 새는 댐을 막아야 할 느낌이지만 일이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차지 선생님께서, 현재 데이하고 있는 방에 점심 식사교대 후 여유가 될 때마다 그 방에 미리미리 가서 안 해본 수술들을 좀 배워보라,고 해주셨다. 그 방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양해를 구하고, 조금씩 인계를 받고 새로운 수술들을 익혀나가고 있다.
수술실마다 돌아가는 시스템이 다르지만, 우리 병원의 경우에는 각 방마다 요일별 오전오후로 교수 배정이 있다. 해당 교수의 수술이 최우선 배정이라 오전 정규 수술때는 대부분 루틴하게 같은 수술방에서 수술을 진행한다. '수술간호팀'은 해당 진료과 방 별로 구성되어 '과'를 이루고 그 안에서 데이, 11a, 이브닝, 나이트가 나온다. 그래서 어느 정도 반복되게 수술팀원이 되면서 진료과의 디테일을 학습해나가고, 진료과 입장에서의 수술지원이 원활하게 되기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진료과가 섞인 그 방에 간다는 것은 과 로테이션 만큼이나 커다란 변화인 것이다. 물론 우리 과나, 수술이 넘어온 과에서 우리를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겠지만 어중간한 위치다 보니 수술을 지원해주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매번 다른 수술 공부와 해당 과의 수술 인계를 받아야 한다는 점, 못해 본 타과의 수술을 할 때 잘못을 지적해주거나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 진료과가 연차가 낮은 방장과 액팅을 보고 만만히 여길 수 있다는 점, 새로운 방 세팅이라는 커다란 업무 로딩 등.
제일 걱정되는 것 중 하나가, 부딪치기 싫어하는 나의 성향과 맞지 않게 불편하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진료과와의 만남이다. 최근에 있었던, 부서가 다름에도 가르치려들거나 강압적으로 굴거나 상대를 비꼬면서 비난하거나 했던 상처들이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사람을 봐가면서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이기 때문에, 방장을 고연차 액팅을 저연차로 짝을 지어 수술지원을 하는 이유도 있다. 이런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하지만 이제 강하게 나가는 것도 배워야지." 라는 응원 아닌 응원을 받아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그것도 맞다.
신규 시절이 생각났다. 독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을 것이다. 매일을 긴장하고, 걱정하고, 그만큼 공부와 연습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했던 나날들. 하지만 그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가,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나를 채찍질하던 나날들.
일찍 수술방이 닫혔던지, 프리셉터 선생님이랑 뒷정리를 다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힘들지? 어떤 게 힘이 들어?"라고 여쭤보셨다. 그 사근사근하지만 생경하고 다정한 말씨에, 잠깐 사이에 어찌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어떤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내 어깨를 쓰다듬어 주셨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마지막은 웃으시면서 "으이구~ 잠시 화장실 다녀올래? 선생님이 여기 지키고 있을게." 하셨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화장실 찾아들어가서 또 훌쩍이다가 얼굴 정리하고 방에 들어간 기억.
나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지지하는 응원은 이런 것이다.
잘 하고 싶고, 완벽하고 싶은 건 이해한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기대다.
매일의 현실적인 기대와 목표를 삼고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일이 익숙해지고 전문성을 띄기 위해서는
매일의 지식과 경험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
내 노력에 따라 그 경험의 폭의 밀도를 좁혀나갈 수 있을 뿐,
처음부터 잘 해나갈 수는 없다.
과에 신규 동기가 없었다. 고연차 선생님들 사이에서 둘러싸여 일을 하다보니 너무 다른 수준의 지식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괴감만 커졌고, 고민을 토로하며 공감을 받으려 먼저 다가서기도 힘들었다. 그저 혼자 지치고 힘들어하고 긴장하고 자책하던 시기에 '노력할 나를 믿고, 자신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법'을 배운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 준비하며 배워야 할 것들도 차근히 해나가자. 조금씩 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성장하고 자연스럽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주변의 선생님들을 보면서 직간접적으로 역할을 보고 배우자. 내가 가진 정보와 경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수준을 넘어서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배움과 도움을 요청하자. 다만, 할 수 있는 일과 해야할 일에는 조금 더 용기를 내자. 우리의 자존을 깎아내리거나 부당한 요구와 응대에는 외면하지 말고 반응을 표하자. 당신이 소중한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으며, 실수로 잘못된 말을 했을 뿐이라고 명확히 인지시키자. 스트레스를 끌고 다니지 말자.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예전 신규 때만큼 두려움에 떨지는 않는다. 다정한 사람들이 나를 여기까지 성장시켰다. 나를 향한 믿음들이 참고 견디며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용기가 되어준다. 법정 스님의 표현대로 '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주는 것들'을 생각하며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