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이라는 부서 특성상, 병동 간호사들의 루틴 업무에 약한 편이다. 실습 때가 끝이었던 환자 간호 사정, 오더, 처치, 검사, 병동 생활 안내 같은 업무들은 거의 기억의 바닥에 흐르고 있다. 간호대학 다니면서 열심히 반복 시험치고 실습한 기본간호학 술기들과 '간호학의 꽃'이라는 성인간호학도 어느 정도 관련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응용하거나 적용할 데가 없으니 잊혀간다.
가장 근래에 배운 학문도 그러한데, 예전에 학을 뗀 수학과 과학 같은 경우는 더 하겠지? 그렇지만 최근에 초등학생 수학을 써먹은 적이 있다. 새로 들어온 데모 hemolok 기구를 사용하면서, 기구가 핸들링에 따라 각도 회전을 몇 도나 하는지 진료과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따로 기구의 특성에 대해 설명 들은 바가 없었기에, 업체에 전화하거나 기구 펨플릿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찾아보기로 했다.
수술 필드 안에서 수술용 펜과 자는 있으나, 각도기는 없는 상황. 45도와 60도 각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생각하다가 정사각형과 정삼각형을 떠올린 것이다. 정사각형을 만들어 대각선을 그어 장비가 0도에서 45도까지 회전 가능함을 알아냈다. 30도 혹은 60도를 찾으려 했으면, 주사기의 뚜껑을 따라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정삼각형을 만들어 증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술 기구와 장비들은 인체에 대한 연구와 실용성에 대한 고민들로 점차 발전해가기에, 필요성을 판단하면 45도가 최적의 옵션이었나보다. 포셉에 손 미끄러지지 말라고 잡는 부분에 컷팅이 들어가 있는 디테일이나, 포셉을 잡은 손이 포셉 끝을 가리지 않도록 설계된 베이요넷 포셉 bayonet focep 같은 기구의 설계적 특징을 보면 인간의 필요와 구조적 특징과 한계가 발전을 가져옴을 실감한다. 이에 대한 감탄 때문인지, 생활용품을 살 때도 아이디어가 들어가 일상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녀석들을 만나면 반갑고 선뜻 집어들게 된다.
아무튼 45도 증명은 어릴 때 배운 지식이 기억의 밑바닥에 흐르다가, 톡 튀어나온 셈이다. 기억의 가능성과 유연성을 다시금 깨달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잊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 관대한 시선을 가지기로 마음 먹었다. 그 때 열심히 공부했던 것들은 잊히지 않는다. 다만 시간과 자극이 조금 더 많이 필요할 뿐이다. 자꾸만 잊어가는 나 자신이 위축하지 않기를 바라며, 희망을 전하는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