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서 그런 게 아니었네 : 입사 동기 간호사 이야기

by 간호사K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동기가 있다. 병원 생활에서 동기는 아주 큰 힘을 발휘하며 의지하게 되기에, 데면데면한 동기가 있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동기들은 가족과 친구가 해주지 못하는 역할을 해준다. 병원, 그것도 수술실이라는 특수 파트에서 생기는 일은 가까운 이들도 잘 이해해주지 못한다. 선생님들이나 의사들에게 부당하게 혼나거나, 무시당하거나, 감정을 투사당한 경험을 나누며 짧지만 우리의 시각에서 지식과 경험을 보태며 힘이 되어준다. 일하면서 생기는 시시콜콜한 의문을 물어봐야 할 때나 주말 근무 시 타과의 응급 수술 인계 때도 동기가 힘이다. 동료 그것도 나와 비슷한 눈높이의 편한 동료가 있다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처럼, 동기 단합력은 우리의 힘이다. 정신 건강의 근간이 되는데 아주 크게 기여한달까.


예전부터 동향이기도 했고, 같은 방에서 일하기도 해서 친하다고 생각하는 동기가 그 친구다. 신규 때 같이 알고 있는 진료과에 대해 푸념하며 많이 의지했고, 실질적인 도움을 얻어서 고마운 마음이 엄청 큰 친구다. 친구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지 않으면 더 말이 없어서, 같이 일할 때 표정을 봐가면서 대화를 걸곤 했다. 같이 일할 때 기분 좋으면 서로가 먼저 쫑알대기도 하고... 서로 말없이 눈빛과 수신호로 스크럽과 써큐를 보며 그렇게 의지하며 보냈다. 그런데 방을 옮기고 복도에서 마주쳐도 나만 반갑나, 싶은 무심한 표정과 인사가 잦았다. '다른 동기나 선생님들이 "둘이 친하지 않아?" 할 정도로 나 혼자 친하게 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저 친구는 왜 저러지...' 하고 오랜 시간 고민했다. 오늘도 그 친구를 보면서 먼저 인사했다. 오늘은 가볍게 받아주더라. 문득 든 생각이, '내가 미워서 그런 건 아닐 수도 있겠다.'였다.


친구 관계에서 서운하게 만들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냥 무심한 성격, 표현의 정도와 방식이 다른 것이다. 혹은 예전에 의사가 어린 우리를 오해하여 범했던 무례를 또 받고 싶지 않아서? 그 때 그 말을 듣고 둘 다 어이가 없어서 '저 사람이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하는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고 눈빛으로 욕했었다. 그 의사는, 끝끝내 먼저 사과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비슷한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은 없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무례와 오지랖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는 했나보다.


뭔가 응어리처럼, '친하게 지냈잖아, 갑자기 왜 그래?'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오늘 좀 사르르 녹았다. 좀 속상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는데, 그냥 그게 그 친구니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게 자기합리화인지, 객관적 관찰자 시각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한 번 고마워했던 사람을 밉게 생각하는 재주가 없다. 예전에 네가 나를 힘들 때 위로해주고, 수술을 가르쳐주기 위해 일부러 시간 내줬던 마음을 잊을 수가 없는 걸. 밉게 생각할 수가 없다. 둥글게, 이쁘게, 내 머릿속에는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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