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숙의 시간

by 간호사K

매 순간 긴장하고 버틴다.

업무에 임하기 전에 공부하고, 손으로 연습하며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그렇지만 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스크럽 손을 씻고 장갑을 끼는 손은 떨렸다.


...


병원에서 이런 일이 잦았다. 학생 때는 경험해보지 못한 긴장감, 책임감, 늘어나는 학습량, 거기에 사람들 성향에 맞춘 반응까지. 인턴 기간 2개월이 지나 정직원이 되고, 1인분의 몫을 해내면서 초반 몇 달은 불안과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적기도 했었고, 광범위하게 습득해야 하는 지식과 술기가 버거웠다. 그런 시기가 지나서 수술실에서 다른 진료과로 이동도 하고, 이제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가르쳐주며 함께 일한다. 본능적으로 어떤 흐름과 패턴을 파악하려하고, 미리 반응하는 것이 조금씩 숙달되고 있다.


'어떤 성숙의 시간.'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주 하는 생각이다. 어떤 성숙을 위해 감각과 행동이 길러지기까지, 충분히 인내하고 나를 믿어야 한다. 잘 못하는 낯선 것을 인지하고, 내 방식으로 받아들여 몸으로 해내고 습득해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수많은 자극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뇌는 한 두번, 하루 이틀 마주한 것들을 내 것으로 체화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반복해야 하기도 하고, 계속해서 인지하고 의식하는 의식적 자극도 필요하다. 습관을 만드는 데 시간과 노력이 든다.


유년기에 네 발 자전거를 탔다. 학창 시절을 뛰어넘어 대학생이 되어 두 발 자전거에 도전했다. 엄마가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르쳐주겠다며 자전거를 끌고 가, 뒤에서 잡아주며 살살 가는 것을 지켜봐주셨다. 페달을 밟고 균형을 유지했다. 두 발 자전거를 탄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타다 보니 잘 나아가는 거다. 바람을 쐬는데 신이 나서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았다. 학창 시절 마라톤, 배드민턴 등으로 알게 모르게 나의 체육 신경이 발달해서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됬구나.' 싶었다. 더 어렸을 때 탔다면 조금 더 헤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공부도 그랬다. 초등학생 때 몇달 동안 방과후학습지로 영어 알파벳을 배웠다. 학교의 영어 정규 교과목 시간에 단어와 문장을 습득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단어 공부와 함께 문법책을 보았다. 글의 구성을 익혀나가는 시간이 길었다. 수능 영어는 난해하고 또 부연이 길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학습해나갔다. 듣고 말하는 자극이 적었기에 영어 듣기는 정말 힘들었지만, 독해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끊어읽기를 하고 문장의 의미를 받아들였다. 단어의 의미도 크게 크게 학습하여, 번역가나 연구가가 아닌 생활학습자로서 영어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take와 관련된 숙어를 학습하기 위해 영어단어를 뒤지다가 'take (무언가를) 취하다'로 이해하니 모든 것이 되는구나 스스로 깨달았다. 그 느낌. 무언가를 가져와서 본인의 것으로 만들다, 가진다는 개념적 의미.


이러한 시행착오 과정을 줄이기 위해, 우리에게 교육자가 존재한다. 한 생명이 태어나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기능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빨기, 잡기, 모로 반사 등 생득적 반응만 하던 아이가 뇌신경과 미세 운동기능이 점차 발달해나간다. 빠는 것에서 씹는 것으로, 옹아리에서 대화로, 기는 것에서 걷고 뛰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우리를 다그쳤던가. 그저, 성장의 시간을 믿고 안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주었다. 결국은 혼자 해낼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또 믿고 있는 것이다.


모든 순간을 의존하여 배울 수는 없다.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배워나가게 되더라도 결국은 이해하고 조금씩 성숙해가는 시간이 온다. 스스로가 답답해질 때,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될 때 자주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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