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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n년차 수술실 간호사가 전하는 수술실 간호사로서 만들어가는 우리의 기록


끝을 생각해본다. 나를 울고 웃고 뿌듯하게도 마음 아프게도 했던 나의 직장과 일에 대해서. 차분한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마주했던 대학병원 수술실 간호사 생활에 대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까.



병원에서 간호사는 끊임없이 들어 오고 나간다. 신규 간호사 시절에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데 정신없이 세월이 흐른다. 연차가 차면 일은 똑같이 하면서 책임과 교육, 관리 감독의 범위가 더 높아지는 임상 현실 속에서 간호사는 어떻게 지속가능한 것일까? 직업에 대한 적성과 흥미, 사명감 만으로 지속하기에 끊임없이 요구되는 긴장도, 부담감, 위기 대처 능력, 지속적인 직무 지식 습득, 교대 근무와 장시간 긴장하며 서서 일하는 환경이 주는 신체적 부담감 등의 저울이 훨씬 무겁다.



이대로 괜찮은가, 미래완료의 시제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본다. 영화 <컨택트>의 주인공 앨리처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처럼,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산다고 해도 나는 나의 길을 선택할까? 그 모든 고통과 좌절과 슬픔의 순간들마저 긍정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며, 끊이지 않는 의미에 대한 성찰에 대해 답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낭만과 의미,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 사이에서 균형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대학병원 수술실 간호사’로서의 삶을.



인생은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한참 많던 시기에 자주 커리어넷에서 심리검사와 직업 적성 검사를 하고, 내가 알지 못해서 꿈조차 못꾸는 직업이 있을까 직업을 탐구해나갔다. 세상 어디에 내 마음과 능력에 걸맞은 직업이 있을까 답답했다. 하고 싶다, 할 수 있겠다, 나와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주저와 두려움이 일었다. 주변에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을 좇아 이야기를 나눴다. 상담실 선생님과 친해졌고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크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저 공백으로 둘 수 없어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 칸을 채웠다. 미래를 선택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성적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경험을 끌어모아 내가 원하는 세상을 발견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에 책 속 글을 좇아 '모든 순간은 배울 수 있을 뿐'이라는 자세로 살았다. 그러다 사건과 경험과 성숙이 쌓여 무언가 하나의 진로가 구체화되었고, 정서적 지지와 자극이 되어 준 많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랜덤뽑기 같았던 간호사 희망 부서 배정에서 수술실에 배정받았다. 어느 새 시간이 흘러 가르침을 받던 입장에서 자연스레 가르치고 또 서로에게 계속해서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타지 생활, 주거 불안정, 연차가 높아짐에 따라 요구되는 책임과 고난이도 업무 등 사실 온전히 만족하며 지낸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떻게 일의 장점만을 바라보며 살겠는가. 어떤 일이든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그저 담담히 바라보고 견디며 기쁨을 찾으며 사는 수밖에. 직업의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애증을 느끼면서도 마음이 깊어진다. 나를 키운 건 단순히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경험과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연금술은 관심과 적성을 보이는 분야에 꾸준히 침착하여 경험의 결과를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하지 않을까. 국립대학의 상급종합병원 수술실 간호사로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 노동자로 생활하며 일상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업무 외에 개인적 시간에는 꾸준히 책과 미디어 매체를 통해 영감을 얻고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나간다. 일상을 보내면서 감정적 동요나 자극이 일어날 때면, 일기와 블로그 포스팅을 통해 스스로를 가다듬고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마음의 움직임을 돌아본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주요 수단은 아무래도 '글을 통한 소통'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담담하게 고통을 헤쳐나간 경험을 주 소재로 삼아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눈다. 공감을 주고받으며 소소한 성취감과 인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온오프라인에서 사회적인 관계를 넓혀나갔다. 꾸준히 경험을 갈고 닦아 언젠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지만, 꼭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결과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인생의 깊은 뿌리가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내게는 그것이 성공이고, 성공을 위한 수단이다.



인생과 일에는 계속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포기해버리지 않는다면, 포기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들볶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망가지 않고 계속 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나의 그릇을 만들어가고, 주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나의 그릇을 넓히고 다듬어간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과거에 귀감이 되었던 책 속 구절과 시를 일기장에 옮겨적고 종종 읽어본다. 아직까지도 그 때의 가르침은 자주 잊히며, 다시 만날 때마다 나를 다독이는 따스한 위로가 되어준다. 그때 내가 큰 위로를 얻은 메세지들은 '행복을 좇느라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말 것'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가치를 얻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 '작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것의 힘을 믿을 것' 이었다.



이 책은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수술실 간호사로서의 성장과 생각의 변화를 담았다. 어른이 되어 마주한 직업 정신의 성장기이자, 현재 우리가 하는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는 왜곡되고 잊히기 쉽다. 그 안에서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을 담았다. 내게 직업에 대한 철학을 가르쳐 주고, 긍정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준 모든 동료와의 교류와 만남에 깊이 감사한다. 언젠가 문득 그리울 수 있는, 수술실 간호사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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