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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수술방 식구들의 개성 표현법

수많은 동료들의 이름과 특징 기억하기


대학병원 수술장에는 수술실 간호사가 참 많다. 우리 병원만 하여도, 수술실 단체 대화방에 각종 휴직자를 포함해 170여명이 들어와 있다. 전체 4팀 중 우리 팀에는 30명이 넘는 간호사가 있다. 신규 채용, 경력직 채용, 원내 부서 이동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임신 출산, 휴직, 퇴사, 부서 이동으로 사람이 나가면서 계속 순환된다.


인간관계론에서 가장 반복되는 이야기는 '상대는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가장 쉽게 관심을 주는 방법으로, 그의 이름을 외우고 내가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라.'는 것이다. 신규 시절 얼마나 동기와 선생님들 이름을 열심히 외웠는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고 다가가고 싶어서. '내가 선생님 이름 석자 그대로 부를 일은 없지만 수술간호기록과 멸균 의뢰 사인지에 선생님 이름을 정성껏 써드릴 수는 있어요.' 라는 마음으로 누구와 마주할 때마다 이름을 외웠다.


수술복에 일회용 수술 모자와 마스크로 개성이 사라진 우리들에게 특색있는 무엇이든 이름을 외울 도구가 되어준다. 수술실 간호사는 소독간호사 업무를 하기 때문에 반지, 시계 등 악세서리는 착용하지 않는다. 작은 고정형 귀걸이나 피어싱은 하더라도, 멸균 영역에 떨어질 우려가 있는 귀걸이 등은 하지 않는다. 정형외과 같은 경우는 눈화장 가루가 떨어질 우려가 있어 속눈썹 연장이나 짙은 화장도 지양한다고 들었다. 그러다보니 개성 표현이 한계가 있고 공통 요소이지만 디테일의 차이로 사람을 구별하게 된다.


수술실에서 제일 사람을 구분하기 좋은 것은, 사원증 명찰 줄과 신발이다. 명찰 줄은 캐릭터 굿즈든 스포츠 용품이든 포럼에서 의료기기 업체가 나눠 준 업체 이름이든 뭐든 좋다. 많은 이가 착용하고 있는 병원에서 기본 제공하는 병원 로고가 새겨진 파란 목줄만 아니라면, 저 멀리서도 눈에 띄어 쉽게 사람을 구별하게 도와준다. 분홍색 목줄은 OO과의 OOO선생님, 보라색 목줄은 OO과의 OOO선생님. 개인 신발이 아니라 병원에서 제공하는 특수화를 신더라도 이름이나 이니셜을 적어주신 분들은, 친절하게 힌트를 주는 셈이다.


가끔 익숙한 얼굴에도 이름을 부르고 적을 일이 없어 이름을 잊어버릴 때면 참 난감하다. 아는 사이에 물어보기가 굉장히 머쓱하고 민망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여유가 되면 파트에서 가나다순으로 일일이 찾아보다가, '이거다!' 하며 속으로 웃는다. 그 외에도 피부 질환이나 짧은 머리, 취향으로 천모자를 하시거나, 라텍스 프리 글러브 등을 끼는 사람들도 나름의 개성으로 기억된다. 거기에 더 익숙해지면 그 사람 특유의 마스크 묶는 스타일, 수술 모자 사이의 머리핀까지도 보인다. 나중에, 소소하게 누군가를 이야기할 때면 이런 점들이 추억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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