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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수술실의 냄새

직장 생활의 '향수' 그 자체


문득문득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떤 게 향수가 될까’하는 생각을 한다. 병원이라는 곳에서 간호사는 부품처럼 돌아가서,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게 쉽지는 않다. 임상의 여러 요소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는 건 개인의 가치 추구에 달린 문제다. 언제든지 내가 좇는 가치가 달라지면 원하는 욕구도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지금 사는 삶에 책임감과 나름의 성취감도 느끼지만, 이게 영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는 거의 접하지 못할 내 직장 만의 특징이 무엇일까. 오늘은 후각적인 측면에서 반추해보았다. 일하는 내내 통제 구역이기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마스크를 뚫고 오는 냄새들에 대하여 말이다. 개복 수술, 복강경 수술을 하면서 느끼는 보비(전기 소작기)로 피나는 혈관과 조직을 지져 피와 살 타는 냄새. 수술 중 피와 살을 태우며 발생하는 수술 연기surgical smoke는 유해하고, 수술 필드의 시야도 가리는 터라 집도의를 돕는 어시스트가 석션(흡입기)로 연기를 계속 흡입하는데도 강렬하게 기억된다.



산부인과 수술이나 제왕절개술 때 만나는 피비린내. 대장 혹은 소장 수술을 할 때 장을 자르면서 나는 똥냄새. 특정 수술들의 검체 담을 때 사용하는 포르말린의 그 악하고 이질적인 향. 기구를 멸균의뢰 내기리 전에 뿌리는 단백질분해 세척제 향도 강한 편이고. 의외로 베타딘, 알코올제 소독약 냄새는 빨리 휘발되어서인지 인상깊지 않다. 그리고, 기쁜 냄새로는 수술장 내부 직원 식당으로 밥먹으러 가는 계단에서 풍겨오는 맡는 밥 냄새. 가끔 선생님들과 퇴근 후 원내 카페 혹은 탈의실에서 마시는 커피 냄새.


그 옛날 주말에 응급 대장 수술하는 환자에게서 나왔던 수십개의 똥묻은 거즈들을 카운트하기 위해 바닥에 펼쳐내며 하나씩 세아린 적이 있었다. 그 어떤 푸세식 화장실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직접적이고, 괴사되고 있던 장과 변에서 나던 강렬한 향취는 형용하기도 잊기도 힘들다. 게다가 관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장 수술이다 보니 똥이 얼마나 많고, 이를 닦아내기 위해 거즈를 얼마나 많이 쓰던지.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숨을 깊이 참고 거즈를 정리했었다. 



그리고 응급으로 블리딩 컨트롤을 위해 수술했던 환자에게서 피떡을 거즈로 퍼내며 필드 밖으로 내던질 때 나던 피냄새도 있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무리하고 피로 흥건했던 바닥과 주변에 만연하던 냄새는 청소 사원님들의 정리와 락스 걸레질, 수술실 공기순환 시스템으로 인해 이내 사라질 수 있었다. 지나가다가 본다면 어떤 생명을 오가는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온하게 정돈된 수술방이리라. 



그 모든 체액, 혈액, 냄새에도 불구하고 수술방은 원상복귀된다. 그 이전 수술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언제나 환자를 위해 준비된 수술실로 되돌아오는 풍경의 반복을 마주하며 산다.기본적으로 감염관리를 위해 온도와 습도가 통제되어 무취가 기본인 내 직장이다. 여기에 어떤 후각 경험이 또 추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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