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대학병원이자 상급종합병원(2023년 10월 기준 39개 수술실, 1335병상)은 수술간호팀장 아래 각 팀의 수간호사가 있고, 진료과 별 차지 간호사가 있다. 그 아래 진료과 별로 소속된 간호사들이 있어 그 안에서 데이번 간호사(방별 방장 간호사, 액팅 간호사), 식사 교대를 위한 11A 간호사, 이브닝 간호사 등으로 근무 듀티 별 간호사가 나뉜다. 방에서 소독간호사, 순회간호사를 하며 직접적인 수술지원 업무를 하는 간호사 뿐 아니라 수술실 입구 간호사, 전처치실 간호사도 있으며 특수 업무를 맡은 교육 간호사, 물류 간호사, 멸균 간호사도 있다.
그래서 수술실 간호사의 업무는 다양하다. 수술 환자 관리와 통계, 수술 보조와 지원, 수술 감염 관리, 수술 장비 및 기구 관리, 수술실 약품 제제 및 물품 관리, 수술실 안전과 환경 관리, 수술관련 행정 업무, 수술실 교육 업무, 내외부고객에게 수술 관련 교육자 역할 수행, 수술실 보안과 감염 관리를 위한 입출입 통제 등.
병원수술간호사회 수술간호학회지에 2019년 발표된 김숙경 외 <일 병원 수술실 간호사들의 경력개발제도의 적용에 대한 인식 및 경력계획,경력 정체, 조직적 지원, 경력태도, 수술간호역량간의 관계>의 논문을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수술실 간호사의 업무 영역 뿐 아니라, 논문에 ‘전문직 활동’으로 인용된 내용을 곱씹어본다. ‘교육자 역할 수행, 교육자료 개발, 근거중심실무 또는 질 향상 활동, 학술 연구 등’. 신규 및 동료 직원 수술적 교육 외에도 환자 및 보호자 교육, 세척 및 멸균 관리 사원님 교육, 수술 프로세스에 필요한 의료진 교육, COVID 19나 결핵 등 각종 감염병에서 보호구 착탈의 안내와 환경 관리 등 생각보다 교육자로 활동할 때가 많다.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지침과 근거를 찾아서 알기 쉽게 제시해주고,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것. 나도 모르게 이러한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근거중심실무와 질 향상 활동이 있다. 간호학과 대학생 때 조별로 연구논문도 작성하고, 학술 대회도 참석하여 근거중심실무에 관심이 많았었다. 병원 입사 준비할 때 EBP (evidence-based practice)를 자기 소개서에도 언급해가며 이렇게 발전하겠노라, 꾸준히 공부하겠노라 했다. 관습에서 벗어난 연구와 근거 중심의 활동은 전문성 향상의 큰 화두다. 성찰적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 과정에서 그 방법과 과정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시하고, 나아가 새로운 인식의 틀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아동들에게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테피드 마사지 tepid massage (소아 발열에 대한 미온수 목욕)가 기화열을 이용한 일시적 체온 감소, 신체 접촉으로 인한 정서적 지지와 안정감 제공 등의 장점에도 오히려 오한으로 인한 발열을 유도할 수 있다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근거중심실무로 보았을 때, 근거가 약하므로 특정한 요구나 필요가 없다면 관습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것을 권장하고 보조요법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찾아보니 이러한 논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테피드 마사지는 지속되고 학습되며 전승된다. 교육 현장에서도, 의료 현장에서도 의학적으로 여전히 논란이 있는 건지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현장의 모든 활동을 검증하고 근거를 마련하며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관습적인 효과를 본 경험들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 듯하다.
2017년에는 하루 3번 식후 30분 복용하는 약의 복용 안내가 서울대병원에서 '식후 30분에서 식후 바로 복용'하는 것으로 바뀌기도 했다. 체내 약물의 혈중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인 복용이 중요해서 식후 복용 처방이 유래되었다고 알고 있다. 공복에 복용해야 흡수가 잘 되거나, 정확한 시간별 복용이 중요하거나, 식사와 같이 해야할 만큼 속쓰림 등의 위장관 증상이 심한 약이 아니면 '식후 30분 복용'이 대중적이다. 그렇지만 식후 30분 복용과 식후 복용이 약물의 흡수 효과에 큰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식후 30분을 지키려다 약 복용을 까먹거나 미루는 것보다 바로 복용하는 것이 기대효과가 더 높다는 연구에 따라서 병원은 복약용법 기준을 바꿨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병의원에서 식후 30분으로 처방되고, 기록되고, 설명되고 있다.
약 복용 '식후 30분'→'식사 직후'…의료계 복약 기준 변경 | 연합뉴스
약 복용 '식후 30분'→'식사 직후'…의료계 복약 기준 변경, 계승현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06-30 06:00)
현장에서 일하다보면 업무에만 시간과 노력을 대부분 쏟아 붓는다. 이에 집중하고 몰두하면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만, 그만큼 시야나 생각이 고립되기도 한다. 그래서 창의적 사고로 인한 문제 해결 활동을 교류하고, 영감을 제공하는 활동이 단체 차원에서 지원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업무 능력 향상과 직무 몰입을 통해 개인 업무의 중요성과 가치를 느끼고, 스스로 변화를 유도하게 될 테니까. 이를 위한 인적 자원의 업무 시간을 프로젝트식으로 따로 마련할 수 있으면 부담이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부가적인 업무는 늘 양날의 검이다. 성장시키느냐, 부담을 느껴 회피하게 만드느냐. 내, 외적 보상이 충분한 경력개발제도가 지속된다면 직장을 위해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