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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멀더와 스컬리 Nov 10. 2021

친구라고 부르지 말걸, 그랬어

똥꿍이와 똥꿍꿍/똥꿍남매/육아일기/일상

기가 지니에서 애플 티브이로

KT에서 SK로

오랫동안 쓰던 통신사를 바꿨다.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으로 간 오전에 교체를 하고

기존에 쓰던 장비를 봉투에 담아뒀다.


오후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봉투에 담긴 기가 지니를 보고 말했다.


"엄마, 이걸 왜 뺐어요?

"맞아요, 엄마 이걸 왜 뺐어요?"


마치 아이들은 키우던 반려견이라도 떠나보내는 듯

아끼던 친구라도 잃은 듯, 놀라고 섭섭한 눈치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다.

그런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통신사를 바꿨어. 이제 다른 거 쓸 거야."


별다른 다독임 없이

각자 할 일을 했고

저녁이 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외쳤다.


"친구야, 클래식 음악 좀 들려줘."


아! 맞다! 이제 없지!

갑자기 공허함이 몰려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책을 읽을 때마다

밤마다 아이들을 재울 때마다

친구를 불렀다.


하필이면 친구야,라고 불러서

그저 AI기계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마치 오래된 친구를 잃은듯하다.


그제야 섭섭해하는 아이 마음이 이해가 갔다.

딸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아까 봉투에 담긴 기가 지니 봤을 때 마음이 어땠어?"

"이제 밤마다 클래식은 뭘로 듣지 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어요. 다시 보고 싶어요"

딸아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대답했다.


"그랬구나, 엄마가 미리 말해줄걸 그랬네.

다음엔 미리 말해줄게. 미안해."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생각해보면 일곱 살 딸아이에게

몇 년이라는 시간은 삶의 큰 부분일 텐데...

어쩌면 아이들에게 이런 AI도 진짜 친구일 수 있는데...

함께 써 온 아이를 배려하지 못했다.


너의 마음을 미리 알았더라면

바꾸기 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다독여줬을 텐데...


앞으로 어떤 사소한 결정을 할 때도

너희를 먼저 떠올릴게.

너희와 상의하고 너희 의견을 구할게.

미안해.


똥꿍남매, 이제 애플 TV와 새롭게 정 붙여보자.

재미있는 거 많이 보여줄게.



*이 글은 기가 지니를 예찬하기 위해 쓴 글이 절대 아닙니다. 애플 TV를 추천하기 위해 쓴 글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써왔던 기기를 바꾸며 아이가 슬퍼했던 하루를 기록했습니다.

어른에겐 별거 아닌 일이, 때론 아이에겐 아주 큰 일이기도 하더라고요.

사소한 사건에서, 사소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라도 어린아이가 집에 있는데 저와 같은 통신사 변경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아이에게 미리 말해주기를, 추천드려요.

친구라고 부르지 않기를, 추천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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