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매달렸던 공시에서 떨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일분일초가 부족해서 시계를 보며 달려왔는데 이제 나의 시간은 갈 곳을 잃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울고 싶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도 될지...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이들까지 힘들어할까 봐 자꾸만 괜찮은척하게 된다.
괜히 더 웃고 긍정의 말을 하고 긍정의 노래를 부르며 버티다 보니 몸이 아프다.
오늘은 울어야겠다.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잖아.
수고했어. 잘했어. 결과가 나쁘다고 과정까지 나빴던 건 아니잖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잖아. 오늘은 울자격 있어.
툭툭 털고 일어나기 위에 하루쯤 아니면 며칠쯤 제대로 쓰러질 필요가 있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들어갔던 힘을 빼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제대로 늘어지고 쪼그라들어서 이리저리 뒹굴어야겠다. 어찌어찌 굴러가다 보면 다시 구멍을 막을 힘도 생기고 다시 부풀어 오를 수도 있겠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대로 공부를 접겠다고 다시는 이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되뇌면서도 또 그렇다고 책을 버리지도 못하겠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다시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 속에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지금이 답답하다.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지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 울고 내일 울고 일단 실컷 울어보고 생각은 그다음에 해야겠다.
걱정한다고 서두른다고 더 잘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어떻게 쉬어야 하지? 하루 12시간씩 공부하다가 갑자기 핸드폰 쥐고 하루 종일 유튜브 하고 넷플릭스 봐도 전혀 즐겁지가 않고 머릿속 생각만 복잡해서 그냥 평소처럼 공부하며 쉬기로 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중학생 수준의 국어독해와 영어독해 문제집을 주문했다. 틈틈이 공부하고 조금씩 일하고 또 조금씩 쉬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몸과 머리가 놀라지 않게 조금씩 공부를 줄여가고 조금씩 휴식을 늘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회복이 되었을 때 생각이라는 걸 하기로 했다.
그렇게 만난 독해 첫 장에서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를 만났다.
'길이 끝난 곳에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시 같았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혼자 겨울을 만나 털썩 주저앉아 버린 나는 이대로 꽁꽁 얼어버릴 수 없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나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잠시 쉬다가 일어나서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겠지. 나에게도 봄길이 열리겠지.
나와 함께 주저앉은 수천 명의 사람들도 이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발에 걸리는 돌부리 있으면 툭툭 차고 닫힌 문 있으면 먼저 열어 문 잡아줄 수 있게.. 하루 먼저 울고 하루 먼저 일어나야지.
일단 오늘은 울자. 너 그동안 참 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