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아름다움이 영원히 살아 있는 건축
타지 마할
우리가 입장할 곳은 4방으로 열린 관문 중 남문. 세계적 관광지답게 주변은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저렴하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드디어 타지마할 속으로 들어갔다.
로마 시대부터 서양에 영향을 준 아치 구조는 공간과 공간을 나누는 경계이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통하게 하는 관문인데, 모스크와 같은 이슬람 건축물들은 들어서는 이 아치형의 구조가 우아한 곡선으로 모이는 ‘뾰족아치’로 만들어졌다. 이슬람의 강한 영향하에 있는 이 지방의 다양한 건축물에도 뾰족한 아치 형태의 창문, 벽장식 등이 만들어져 있는데, 반원 구조의 천정도 단단함이나 육중함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이 뾰족아치에서 나타나는 둥근 곡선의 우아함, 정중앙에 맞물리는 단호한 점의 균형미는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그러나 역시 입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나. 명성에 걸맞게 안내 및 주의사항이 제법 ‘강력하다’. 이 아름다운 곳에 들어오실 때는 유적을 상하게 할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소지품도 소지 및 반입이 곤란하다. 돌로 만든 건축을 상하게 하려면야 송곳, 망치? 같은 공구일 터인데, 상상을 넘어 라이터, 칼은 물론이고 펜도, 각종 필기구도 금지다. 그 어떤 자그마한 가능성도 예상된다면, 그냥 압수. 정확히 말하면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맡겨놓고 찾아갈게. 제발. 비싼 펜이거든요’-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물품보관소를 위한 공간도 없다. <이 멋지고 위대한 유물>을 만나러 올 때, 그 정도의 상식은 기본이지! 매서운 관리인들의 소지품 검사가 낯설었다. 역시나 의외로 대범하면서도 순간순간 철저한 인도인들이다. 두근거리며 들뜬 마음으로 게이트에 들어오던 사람들의 입이 삐죽거리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일단 입장을 해보신다면 아마도 누구나 그런 불편함에 대한 서운함 따위는 금세 사라져 버리실 거라 장담한다. 카메라나 핸드폰, 지갑 정도만 가볍게 들고 오셔야 한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유원지도, 박물관도 아닌 그저 어느 여인의 무덤, 영혼이 담겨있는 조금은 엄숙해야 할 곳이긴 하니까.
타지마할, 뿌연 공기가 내려앉은 아그라의 중심에 자리한 어느 여인의 무덤. 멀리서 보면 이 도시의 뿌연 하늘의 색이 빛의 반사로 더욱 하얗게 반짝거리는 이 대리석 건물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게이트를 들어가면 바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원래 아름다운 대상은 깊숙이 숨겨두어야 하는 법이라도 있나. 둘러싸인 성벽을 지나 걷다 중앙으로 뻗은 인공 연못을 중심으로 꽤 긴 거리를 걸어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다. 예상보다 큰 규모의 건물이라 떨어진 거리만큼 관념 속의 원근법에 따라 훨씬 더 작게 느껴져야 하는데, (너무 규모가 크니) 그렇게 지각되지 않는 현상이 재미있었다. 너무 더운 여름날이라면 걷다가 지칠 판. 그래도 목표물은 (너무 커서) 명확하다. 모든 조경도 이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연못 좌우로 조성된 양 갈래로 길이 나누어진다. 이 시점이 정중앙에서 바라본 타지마할의 ‘증명사진’ 이 제작된 그 지점이다. 상상하던 실체와 마주하게 된 이때, 교과서에서 속의 작은 공간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약간의 흥분을 준다. 촬영 포인트에서 인증 사진을 찍느라 눈치 보며 줄을 섰다. 꽤 좋은 날씨였고, 구름처럼 검은 머리의 물결을 만드는 인파들 때문에 ‘그녀’와의 인증 사진 촬영에 방해가 되었지만, 꿋꿋이, 인내심을 갖고, 성실하게 수행했다.
더 가까이 진입. 긴 정원을 따라 중앙으로 들어가는 길. 청설모, 딱따구리, 들꽃도 만났다. 작은 생물들과 노닥거리며 점점 가까이 다다를수록 뭔가 거대한 하얀 괴물이 앞에 다가오는, 위압감이 조금씩 느껴졌다. 내가 알던 대상이 다른 어떤 존재로 바뀌고 있는 특이한 느낌이 들어 우리는 최대한 천천히 한 걸음씩 가까이 움직였다. 많은 인파를 제치고 나가기도 힘들었거니와 각각의 위치에서 만난 묘한 이미지의 차이들에 셔터를 눌러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앞, 발밑에 서니, 마치 ‘유한한 생을 가진 미물’들의 존재를 무색하게 위압하는 커다란 돌덩이 생물체가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 주위를 한참 이리저리 돌며 그녀의 발밑에서 맴돌았다. 보면 볼수록, 한 인간의 무덤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의 이 규모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일이냐. 이슬람 모스크의 양식대로 구성된 구조는 흰 대리석 정방형의 구조에 각 모서리의 4방향으로 탑이 올라 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 기단부로 오르는 얕은 계단을 따라가면 또 하나의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기에 줄을 서서 덧신을 신어야만 했다. 현지인들은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오르기는 했지만, 얇은 부직포 덧신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라도,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여기서도 ‘뭐 이렇게까지!’라고 따져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들어가 보시면 금세 쏙 들어갈 투정일 테다. 내부에 들어서면 벽면이나 천장 장식은 물론이거니와 하다못해 바닥에도 촘촘히 깔린 공들인 대리석 모자이크 타일을 만날 수 있다. 흑과 백의 색감을 대조적으로 사용한, 당대의 최고 도형 전문가들이 구상했을 것만 같은 테셀레이션이 온통 천지다. 게다가 오랜 시간이 흘러 손길과 발디딤에 닳아 반질거리는 돌의 질감과 윤기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수 백 년을 끈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탐스러운 둥근 돔 지붕을 중심으로 외부의 완벽한 대칭형을 뽐내는 건축물은 내부마저도 촘촘한 무늬로 가득 채워 그 자체로 부족함이 없는 형태미를 보여준다.
내가 이슬람 문화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이스탄불의 모스크이자 성당이었던 성 소피아 대성당. 그리고 블루 모스크였다. 회교도의 교리는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들 나름의 오랜 전통과 신념으로 지켜온 역사임을 그들의 모스크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사실 그들의 모스크나 ‘서방의 교회가 발전한 성당’이나 해석의 차이일 뿐, 곱고 아름다운 형태미로 그들의 신실함을 드러내려는 목표를 달성한 공간이라 보자면,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이 믿는 신의 말씀에 최선을 다해 따를 뿐. 형상을 드러내지 않고, 말씀을 새겨 넣거나 추상적 조형성을 통해 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예술에 대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에서 장식에 배어 나오던 반짝이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위한 그들의 최선의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동의 모스크와 다른 점이라면,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절제된 색채와 대칭에서 오는 완벽한 균형, 대리석과 보석류의 석재로 재료가 가지는 성격을 ‘무덤’이라는 용도에 맞게 구성한 차이가 있다. 물론 이 구조물이 종교를 위한 건물은 아닐지라도, 그 양식을 고스란히 잘 구현한 것으로만 보아도 그들의 믿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부를 사진으로 다 찍을 수 없던 터에, 모든 장면을 다 남겨오지 못한 것이 아쉽고, 눈으로 본 것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도 아쉽다.
바깥 외부 벽면이 8각으로 구성된 것처럼 내부 역시 별도의 8각의 가묘라 볼 수 있는 구조물이 있고, 진짜 그들의 관은 지하에 놓여있어 차단되어 있다. 무덤의 주인공 ‘마할’님께서 중앙에 누워있는 구조라 했다. 그녀를 사랑해서 이렇듯 큰 사업을 완성한 설계의 주인공인 샤 자한은 이후에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금되었다 힘없이 죽었지만, 결국 여기 왕비 옆의 자리에 누워 사후의 정을 계속 나누고 있다.
이 모든 조작이, '한 사람'의 권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 모든 아름다움에 더욱 비련의 감정을 섞어 낸 스토리텔링으로 승화된 면이 있다. 그의 사랑과 욕망만으로 이 결과물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다양한 조각의 돌들을 정교하게 자르고, 다듬어 짜 맞추었을 고단한 노동의 양을 따져본다면, 이런 예술품을 제작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 걸까. 어떠한 동력(動力)이 필요할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무렵, ‘이 모든 노동은 얼마나 고되었을까?’와 같은 노동의 양과 강도에 측은지심이 일기보다는 ‘과연, 이 노동은 과연 고통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혹자는 자신의 의지가 없는, 자신을 위한 예술이 아닌, 반복된 노동의 땀과 눈물밖에 없었을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권력의 힘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였을 시대였으니. 그러나 이 정도의 정교한, 맞춤의 결과들은 그 작업자의 집요한 몰두, 끈기가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겠지만(위키피디아의 기록에 따르면, 22만 명이라고, 과연 그 셈이 정확할 것인지는 조금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들이 함께 돌을 갈아내고, 각을 맞추어 한 땀 한 땀 무늬를 맞추어낸 그 순간 느꼈을 희열과 쾌감은 어느 역사책에도 기록되어있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들이 진정 창작의 기쁨을 모르고 그 돌을 갈아내는 인생, 돌가루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가능했을까,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이 휘두른 결과라 할지라도, 과연 이 세밀하고 거대한 예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조각을 배우면서,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소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성질 급한 나는 이에 쏟게 되는 노동의 양과 시간에 대해 절망한 적이 있다. 조각이라는 행위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조각가로서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 못한 것도 어쩌면 내가 그 행위보단 조각가라는 무형의 이미지를 동경한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만하지 않은 그 작업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지만, 두렵기도 했던 것 같다.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이 큰 작품 속에 많은 이들의 애정과 사랑이 비쳐 올라 반짝였다. 나는 또 한 번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질 무렵의 이곳의 빛이 너무나 멋지다고 하였기에, 우리는 시간대를 잘 맞추어 들어온 셈이다. 감사하게도 오후의 맑은 빛, 그리고 저녁의 따스한 붉은빛에 물드는 타지마할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오려면 살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관람 시간/ 외국인/ 개방 시간/ 요일, 그리고 라마단 기간 체크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여행 일정과 잘 맞아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내부의 관람을 찬찬히 마친 후, 창에서 내려다보는 아그라의 너른 땅도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슬람 모스크는 개방성이 돋보인다. 창은 있지만, 유리는 없다. 더운 지방이기에 대리석을 이용한 자체 온도조절 기능이 있고, 창은 유리가 없는 대신 촘촘한 무늬의 창살로 이를 대신한다. 처음엔 이 구조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다른 현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이 창살을 이루는 조각의 면을 깎아내어 내부에서는 외부가 보이는 각도를 만들어내고, 외부에서는 그림자로 인해 내부를 잘 볼 수 없도록 하는 역할, 그리고 바람이 들어오는 순환의 기능. 그리고 유리가 없는 대신 석재로 만든 창살이 벽체를 잡아주어 큰 창을 낼 수 있고 내부에는 조명이 없어도 빛의 효과를 들여올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창에서 흘러나오는 명암의 아름다운 효과, 저녁 햇살에 닿은 뽀얀 대리석의 색의 변화가 계속되었다. 이 건물의 동/서쪽으로 각각 부속 건물인 모스크가 하나씩 더 있었지만, 우리는 더는 부족함이 없이 그 빛의 변화를 좇느라 한참을 앞마당에서 노닐었다.
동행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타지마할 내의 우체국이 문 닫기 전 엽서를 보내야 한다고 재촉하여 자리를 뜨게 되었다. 그 엽서 보내기만 아니었어도 조금 더 노을의 시간을 만끽했을 것 같은데, 그 덕에 타지마할의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은 그 누군가는 참 좋았겠다. 돌아오는 길이 아쉬워 계속 뒤돌아보았다. 헛헛한 마음에 수제비를 파는 인도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뜨끈한 감자 수제비에서 익숙한 라면 수프 냄새가 푹 풍겼다. 이상하고 묘한 수제비를 깔깔거리고 넘기며 꽉 채워 보낸 하루, 그리고 또 계속될 내일의 모험을 상상하며 마무리했다.
다시 한번 여기 이 자리에 가 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