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 유적 둘러보기
완벽한 예술을 만나는 법
예술품의 존재를 온몸으로 맞이하고 이 도시에 들어온 감사와 위안의 시간을 잠시 가졌다. 야간 기차로 지친 터라 잠시 눈을 붙이고, 숙소로 데려다준 릭샤 왈라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에게 오늘 하루의 투어를 부탁하기로 했다. 아그라에 도착했으면 바로 타지마할로 뛰어 들어갈 법도 했지만, 완벽한 예술품을 만나기 전의 예열이랄까, 주변부의 탐색을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메타 박(Mehtab Bagh)과 Baby Taj. 아그라 성 등 이 도시에는 타지마할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얹힌 조연급의 건축물들도 아직 건재하다.
우리를 인도한 릭샤 왈라는 먼저 타지마할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유적지를 먼저 추천했다. 메타 박이라는 곳은 공원이지만 사실 공원이라기엔 조성된 형태나 관리된 느낌이 부실하다. 입장료도 있었다. 사실 여기엔 기대할만한 건축물이 남아있진 않은, 그야말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바라볼 수 있는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무덤인 건축물을 짓고 이를 구름다리로 연결하고자 했던 곳.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라 진위는 알 수 없다만,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역시 타지마할을 다른 각도에서 장애물 없이 볼 수 있는 조망을 가진 장소이며, 특히 해가 질 무렵에 참 멋지다는 평 때문인 듯하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오전. 저 멀리에 보이는 타지마할을 확인한 이후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래도 공원에서는 마실 나온 순박한 인도 소녀들과 사진도 찍고, 깔깔깔 웃어댔던 소풍 같은 여유를 즐겼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현지인들과의 small talk가 활력이 되거나 큰 도움을 받거나 즐거운 경험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등의 호객을 당해도 재밌게 즐겼고,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접근해 잠시 놀랐지만, 알고 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핸드폰에 홀렸었던 순박한 소년들, 그저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호기심을 내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는 사실은 여행의 또 다른 축복이다. 이렇게 만난 현지인과 '친구 맺기'는 굉장히 들뜨고 즐거운 일이긴 하다. 그 인연이 이어져 다시 모종의 목적으로 만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그때 그 순간의 그 행위 자체로 여행은 빛난다. 여행이 끝나고 한참 뒤, 다시 보게 되는 수줍게 적어 놓은 손글씨는 그들과의 '연결 가능성'에 있다기보다, 나에게는 기억이자 증거품으로 남는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뭐 큰 기대는 없기 마련이지만) 조심스럽게 자신의 메일 주소나 SNS 아이디를 적어주게 되는 것일지, 추억하는 자체로 의미가 있다. 가끔은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보다도 노트나 표 등의 메모지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손글씨'를 더 많이 모아두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저 멀리, 목표가 있었지만, 어디론가 사라질 대상이 아니었기에 동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 무엇보다 또렷하게 기억 속으로 파고드는 깊은 흔적을 만드는 일이다.
급하게 친해진 아이들과 아쉽게 헤어지며 두 번째 유적, ‘베이비 타지’라는 별명을 가진 유적으로 향했다. 베이비 타지는 우리가 알고 있던 타지마할을 흉내 내 만든 것이 아닌가 싶은 축소판 같은 흰 대리석 건축물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 듯.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현지인들은 '베이비 따지'라고 부른다.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1. 규모가 매우 상대적으로 작다. 2. 돔 지붕이 없다. 이슬람 모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중앙의 돔 지붕이 아닌, 사각 면이 곡선으로 우아하게 올라간 특이한 지붕 모양을 갖고 있고, 3. 모스크에 4개의 미나렛(탑)은 별도로 타소 투박하지만 견고한 팔각 면 위에 세워져 있다. 단순해 보이나, 귀엽고(?) 면이 잘 살아있는 조각 같은 구성의 건축물이다. 정교한 모자이크 구성을 위해 명도 차가 크지 않은 아이보리, 백색의 우아한 표면장식이 촘촘히, 정교하게 짜여 있다. 아이보리 색감이 들어간 자연석의 무늬는 훨씬 더 따뜻한 색감으로 건축물을 정겹게 만든다. 역시 좁긴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 관람할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다. 4대 황제 제항기르의 장인의 무덤이라는데, 샤 자한만큼은 아니었겠지만 아마도 이 당시에도 왕비가 된 딸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던 자는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정치나 권력과 같은 힘의 ‘재현’이 이렇듯 아름다운 건축물의 미학으로 대변되곤 하는 일이 가끔은 슬프다. 한편으로는 ‘베이비’라 불리는 건축물도 이렇듯 아름다운데, 본격적인 주인공은 어떨지 더 기대감이 벅차올랐다. 아마도 5대 황제의 샤 자한이 이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아그라 포트(Agra Fort)도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타지마할의 북서쪽에 세워진 성채. 무굴제국을 이끌었던 3대 악바르(Akbar) 왕에 의해 16세기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대의 왕들에 의해서 증축되고 개조되며 왕국의 상징처럼 든든한 요새를 이루고 있는 성채다. 곳곳에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들은 집요하게 관광객을 잡아보려 노력했지만, 우리 역시 끈기 있게 물리쳤다. 가끔은 가이드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것보다 그저, 그곳의 공기를 느끼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뛰어다니며 꾸준히 셔터를 눌러 오랜만에 인물 사진을 신나게 남겼다. 바라나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맑은 공기가 붉은 아그라 성의 벽돌과 대비되어 피사체들의 색감을 한층 돋보이게 해 주었기 때문일까. 펀자브 스타일의 인도식 의상을 오랜만에 걸치고, 한껏 분위기를 잡아보았다. 한참을 사진 찍기 놀이에 몰두하다 출출해져 릭샤 왈라에게 점심을 먹기 위한 레스토랑을 추천받았다. 현지인들이 드나드는 듯한, 정원이 딸린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치킨 카레를 점심으로 먹고 배를 든든히 채웠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우리의 목표, 타지마할로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