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부럽다. 말로써 타인을 잘 설득하고 소통하며 무슨 일이든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사람. 주변에 그런 능력 보유자가 있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남편이 논리왕이면 인생이 좀 피곤하고 서러워진다.
내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아가시절부터 어머님이 책장을 전집으로 꽉꽉 채워주셔서 글씨를 읽기 시작할 무렵 혼자 책 읽는 것을 그렇게 즐겼다고 한다. 특히 과학도서, 자연도서들을 열광적으로 보았다. 지금 주로 읽는 책도 과학책이나 철학서, 비문학책들이 많다. 나는 책을 이렇게 많이 읽는 사람도 신기한데 그것도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는 사람은 더 신기하다. 지금도 남편 서재의 책장은 숨 막히는 양장본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책을 많이 봐서 그런지 말할 때 포스도 남다르다. 예를 들어, '삼투압 현상이 뭐지?'라는 기초적인 질문에도 나는, '음... 소금이 없는 데서 더 많은 곳으로 가는 거?'라고 어버버 대고 헤매는 데다 답도 틀리는데, 남편은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이 이동하는 현상'이라고 정확한 포인트 단어를 활용하여 문장을 완성하는 재주가 있다.
이러한 능력은 연애시절 남편의 섹스어필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조곤조곤하게 설득하거나 요목조목 자기 생각을 말할 때의 그는 참 지적이고 순수한 소년 같은 데가 있었다. 내가 워낙 감정적이고 머릿속이 산만한 사람이어서, 그가 대신 내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해 줄 때면 편리하기도 하고 멋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의 필살기는 결혼하고 싸우게 되니 남편을 진짜 초강적으로 만들어줬다.
결혼 후 말다툼을 할 때 나의 머릿속은 서운함, 슬픔, 억울함 등의 온갖 모양감정들이 가득 들어차는 반면, 그의 머릿속에는 세련된 알고리즘이 하나 생성된다.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다. 감정에 휩싸여 한없이 흥분한 내가 뭐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는지 종국에는 알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을 때 남편은 깨알 같은 타이밍에 내가 무슨 말을 했고, 왜 이 말이 나왔고, 지금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차분하게 짚으면서 해결책을 제시한다. 격분해서 하나하나 반박해야 될 나는 어디로 가고, 나의 머릿속에는 커다란 물음표가 하나 생긴다. '그런가...?'
지옥의 집콕 육아시절. 아이들 어린이집도 보내기 전이라 나는 하루종일 남편이 퇴근해 돌아오기 전까지 집 밖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갇혀있었다. 초산에 쌍둥이는 진짜 지옥이었다. 그나마 아이 둘을 유모차에 실어 밖으로 나가도, 종일 아이들이 보채는 소리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하루종일 일하다가 집에 오니 더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몇 번 남편 퇴근하면 유모차로 한 시간 정도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러고선 나의 호의를 그도 알 것이라고 혼자만 생각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후, 나는 남편에게 지금 나의 상황과 처지를 하소연하며 남편 퇴근 후 한 시간만 혼자 카페에 다녀오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요구했다. 주에 몇 번일지 달에 몇 번일지 시간을 계획하고 조정하길 기대하는 와중에 나온 남편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왜? 너 한 시간 나갔다 오면 나도 한 시간 나 갔다 와야지?"
그동안 나름대로 빌드업을 해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거절은 선택지에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이후 내가 아무리 나의 처지를 설명하고 하소연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일한 사례는 계속 이어졌다.
나는 생일,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에는 서로 축하해 주고 생일선물도 교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인사이일 때도 선물을 주곤 했는데, 주로 내가 먼저 주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내가 생일 때 뭐가 받고 싶다, 내 생일 때 뭘 사줄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때도 칼같이 받아쳤다.
"너는 내 생일 때 뭐 사줬어? 왜 너 생일만 내가 챙겨줘야 돼?"
나는 매해 조잡한 실력이더라도 나름의 남편 생일상과 작은 케이크를 선물해주고 있었는데, 바로 그 전년도 이 번년도는 힘드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남편의 말을 들은 대가가 이렇게 혹독하게 돌아왔다. 결혼기념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득달같이 따졌다.
"내가 왜 너한테 뭘 사줘야 돼? 결혼기념일인데 너도 나한테 사줘야지."
그가 대답하는 말투와 사고하는 방식은 매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름 끼치게 같았다. 논리가 어쩌고 저쩠든 간에 그는 공감능력 마이너스 오천만 점 수준의 모지리였다.
나는 그에 대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무시무시한 저울이 있어서 너 반반, 나 반반. 무조건 받은 만큼 주고받는 것이라는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1순위인 '공평함'에 철저하게 치우쳐져 있어서, 그것을 깨는 다른 중요한 가치, 예를 들어 배려, 공감 등은 애초에 그가 숨을 쉬는 모든 상황에서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물론 그의 말이 옳다. 기념일이나 생일, 둘이 서로 챙겨줘야 하는 것이 맞는데, 나는 지금 수입이 없다. 내가 돈을 버는 상황이었으면 나는 남편 생일 선물을 당연히 해주었을 것이다. 우리 사이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과 손님 사이가 아니고, 연애하고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된 부부인데, 철두철미하게 내가 얼마 네가 얼마인지 따져야 되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놀고 있는 것만 같겠지만 전업주부의 삶은 의외로 할 일이 많다. 회사원일 때의 나도 몰랐지만 신경 써도 티 나지 않는 모든 일을 어떠한 보수도 없이 해야만 한다.
남편의 입장도 이해한다. 애시당초 내가 남편이 쉬길 바란다고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확인했어야 했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대해서도 내 입장에서는 서운하지만, 왜 너만 사줘야 되냐고 묻는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서운하긴 했지만 역시 그의 말이 맞긴 하니까. 하지만 역시 문제는 서운하다는 거였다.
애시당초 굳이 뭐가 필요해서 받고 싶은 마음보다도 공감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 시간 정도는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진짜로 필요했던 건, "많이 힘들었어?"라는 공감이었다. 그 한 마디만 있었으면 똑같이 거절하더라도 정말로 다 괜찮았을 것이다. 생일이나 기념일날, 비싼 걸 준다고 해도 부담스러워서 달라고도 못할 것이다. 그냥 이 날을 다른 날과 똑같이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조금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은 마음. 우리 사이가 내가 하나 주면 너도 하나 해줘야 하는 확실한 관계이고 싶지 않았다. 남 같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입장차가 뚜렷하게 다른 우리는 아이들의 성장이 쪼꼬미 시절에서 꼬꼬마 아동으로 넘어오는 동안 끝도 없는 전쟁을 벌이다가, 아이들이 7살이 된 지금에서야 다소 평화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내 남편이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건 그가 '변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수없이 이야기한 불만사항들은 어느 정도 들어주고, 이제 주말 아침에는 밥, 국만 고집하지 않고 나처럼 빵, 라면도 먹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가 변하려는, 그리고 변하는 이유 또한 모든 선택지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길 좋아하는 그의 유전자에 깊이 뿌리내린 t성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의 t를 미워할 수가 없다. 정말로 갖다 버리지 않을 거면 그냥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