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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담 Jul 10. 2024

인간

무수한 예쁨을 가진 사람들

 아이를 때렸다. 뭐 대단한 일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등원 전 준비시간에 먼저 준비를 다 한 서담이가 방에서 타요 장난감의 바퀴를 돌리며 놀고 있었다. 어느새 바퀴 소리는 거세지더니, 결국 왱왱하는 굉음이 시작됐다. 마루에 있던 내가 '그만해. 시끄러워.'라고 서너 번 정도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아마 저도 하다가 무아지경이 된 모양이었다. 참기 힘든 소음과, 분명 내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행동을 멈추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 감정이 나를 압도했다.  


 방으로 가자 여전히 바퀴 돌리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대로 나아가 아이의 등짝을 할 수 있는 힘껏 때렸다. 굉음은 멈췄다. 그런데 때린 만큼 감정이 시원해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내 행동과 동시에 뒤로 돈 아이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커다랗게 뜬 동그란 눈. 반쯤 벌린 다 튼 입술. 완전히 겁에 질려버린 얼굴이었다. 아이의 공포와 당황스러움, 놀라움의 감정은 오롯이 나에게 전도되었다. 이러려고 때린 게 아니었는데. 내가 이런 얼굴을 보려고 때린 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밀려들었다.  


 말 그대로 체벌이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한 벌칙의 의미. 하지만 내 행동은 내가 봐도 너무 심했다. 누군가 내 아이를 이 정도로 다루었다면 절대로 참지 못할 행동을 왜 나는 왜 아이에게 했는가.

내 안에 있는 화가 점차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어갔다. 놀란 아이들의 준비는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후다닥 준비를 마친 아이가 현관문 앞에서 등을 돌리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순간 내 사과를 안 받아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지나가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손길을 피하지 않고 날 올려다보았다. 다행이었다.


"아까 엄마가 하지 말라고 얘기한 거 못 들었어?"

"들었어..."


아이의 눈에 투명한 물막이 생기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내 눈길을 피하는 것도. 벌써 이렇게 다 큰 아이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는 얼른 서툰 사과를 시작했다.


"왜 그랬어. 때릴 일도 아니었는데 때렸잖아."

"..."

"미안해, 때리면 안되는건데 엄마가 때렸어."


 그동안 아이의 머릴 쓰다듬고 때린 곳도 쓰다듬었다. 아이는 거부하지 않고 내 손길을 반긴다. 너무 다행이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 유치원에 들어가 인사를 하는데 장난으로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한다. 장난치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나는 조금 뜨끔했다.


 집에 가는 길에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마음이 정말 편치가 않다. 기관에서는 등원 전 아이들한테 화를 내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의 일과중에 내내 그 기분이 남아있을 거라고. 아이의 기분도 그렇겠지만, 확실히 나도 하루를 망친다. 아이를 못 보는 시간 동안 내 기분은 엉망이 되고 만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계속 그 시간으로 돌아가 흩어진다.


 다음에는 때리지 말자. 말로 하자.

우리 아이가 특별히 개구쟁이이거나 말을 안 듣는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차분하고 말을 잘 드는 편이다. 그래서 사실 때린 적도 거의 없다. 게다가 이제 7살이라 얼마든지 말로 설득하고 훈육할 수 있는 나이인데. 조금만 참았어도 얼마든지 좋게 끝날 일이었다.


아이를 때림으로써 두 가지 측면에서 실수를 했다.

첫째, 잘못을 하면 엄마는 때릴 수도 있는 존재라고 각인시켰다.

둘째, 누군가 잘못을 하면 때려도 된다는 생각을 아이에게 심어주었다.

 

여기까지가 육아서에 나온 이유이고 내 나름 생각한 세 번째 이유가 또 있다.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되는 이유. 왜냐하면 내 아이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내 아이만은 다르게 키우고 싶어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한 어른으로서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할 책임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아이는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다.


평소에는 무표정인데 웃을 때면 얼굴 모든 근육을 아낌없이 써서 햇님처럼 환해지는 얼굴이.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가끔 다시 물을 때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럴 때 커다랗게 뜨는 큰 눈망울이.

아직 말이 서툴러 '그랬더래요.'라고 실수할 때의 말투와 표정이.  


 그런 사소한 특징과 행동, 습관들. 나와 남편에게서 유래한 이 아이의 고유함은 이 세상에서 독특하고 유일하다. 그렇다고 식당에 가서 된장국이나 계란후라이를 요구하거나, 선생님이 당연히 행해야 하는 교육에서 얘를 배제시키겠단 뜻은 아니다. 그저 우리 아이가 나한테 예쁘다는 말이다. 그 예쁨은 나나 아이와 가까운 사람들만이 알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까운 관계를 맺을 사람들만 알게 되면 된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평범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한테서 소중하게 태어난 자식이자 자라면서 관계 맺은 주변인들로부터 발견되었을 무수한 예쁨이 있는 존재. 그래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대해져야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과 친절을 베풀어야 할 이유다. 그러니까 우선 나는 내 아이한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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