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세이] 내 별명은 테토녀

꼬박 하루 동안의 일상

by 풍금이 있던 자리


EP1.


오늘 날씨 맑음, 비 온 직후의 텁텁한 습기가 관자놀이를 따라 턱 끝까지 어루만지듯 이어져 있다. 카페들은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파워 냉방을 빵빵 터트려주었고, 피난하듯 들어선 카페의 2층 자리에 앉아 이내 흡족해졌다. 거기에선 시계 視界의 적당히 먼 자리엔 야트막한 건물들이, 그래서 2층 건물의 눈높이로는 넓은 하늘이 보였고, 언젠가 먹어본 수플레 위의 하이얀 크림같이 둥글고 푸진 구름이 보였다. 그게 머랭이었던가?


%ED%81%AC%EA%B8%B0%EB%B3%80%ED%99%98zbynek-skrceny-MSrUdvVrKEE-unsplash.jpg?type=w1


글쓰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여자 둘 남자 하나, 익숙한 조합이다. 나누었던 도파민 터지는 우리들의 신변잡기는 글로 옮기지 않기로 단단히 약속했으니,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우린 글에 관해 얘기했다. 오직 그것만을 말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도덕의 계보’에 대한 논설을 적고 있는데, 여기에서 또 한 달을 멈추어 있다고 말했다. 좌중은 알만 하다는 선선한 반응을 건네준다. 나는 내 글이 지니는 고유함을 알지만, 거기 수반되는 완벽주의와 표독스러움이 힘겹다 말했고, 또 그 글만으로는 나를 전부 담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들도 그렇다고 말했다. 글을 먼저 접했을 때는 지금 내 모습을, 수다를 좋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아쉬운 일이다.


이내 그녀들은 힘 빼고 편안한 글을 써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딱 전형적인, 일종의 쓰여진 각본 같은 대화의 흐름이었다. 말하자면, 큰 사건이 없는 한 천연스럽게 이어지게 되는 것들. 마치 소설의 대부분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대사들 같이… 그러던 와중 L이 특유의 수구래하고 커다란 눈을 말똥히 뜨곤 약간 갸웃거리는데, 좌우로 번갈아 고개를 모로 갸우뚱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건 그녀의 특이점이다. 말없이 보았다, 이런 건 말 없이 보아야 하므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는 것으로 봐선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 자연스러우면서, 솔직한 것들. 소설에 이어, 이젠 만화 같다고 생각했다.


사선으로 기울어진 그녀의 눈이 ‘그냥 몸에서 힘을 빼면 되지 않아?’ 라고 입을 대신해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녀는 그것을 이미 자신의 글과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하면 오해할 법하지만, 딱히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실은 넘어져 땅에 철퍼덕거려도, 그렇게 좌중이 웃음을 터트려도 잠깐만 수줍어하곤 이내 별것 아니라는 듯이 툴툴 털고 곧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탄력성을 본다. 아, 또 묘사에 너무 힘이 들어갔나.


그래서 내 몸에 들어간 힘들을 돌아보았다. 우스갯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서 오랜 시간 관절 구석구석 차곡차곡 쌓여온 힘, ‘가오’와 그 내력들을 하나씩 기억 속에 꼽아보았다. 여전히 나는 망가지는 게 썩 어울리는 사람, 정확하게는 그것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승화해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힘을 빼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 광경은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과 넘어지지 않기 위해 힘을 잔뜩 준 사람이 마주 보고 눈을 맞춘, 그런 씬이다. 사내는 강직하게 우뚝 서 있고, 소녀는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여 올려다보는 그런.


나는 사실 수다를 좋아한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나와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알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비밀. 수다를 떨 수 없는 사람들과는 거의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그들에게 난 차갑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에겐 푼수가 된다. 그래서 내 별명은 테토녀다. 성향 테스트는 늘 INFP와 에겐남이 나오지만, 그것으로 어딘가 다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에겐남이라기엔 강하고 독단적이며, 테토남이라기엔 망설임과 사려가 구석구석 베어 있는, 축구보단 수다를 훨씬 좋아하지만, 한편 상냥한 것들보다는 비정한 것을 좋아하는. 그래서 여사친들은 테토남은 결코 아니면서 완벽히 에겐남도 아닌 내게 제3의 대지를 선사한 것이다. 문득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남한도 북한도 거절한 그는 양측의 회유에도 끈덕지게 ‘제3국’을 외쳤다. 그가 ‘제3국’을 향하는 커다란 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던 씬이 생각났다. 뜬금없지만 그만큼 내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그녀들도 내게 부여한 별명에 스스로 몹시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정체성이 ‘제3국’ 같다고 생각한다. 이쪽도 저쪽도, 어느 전형에도 완전히 맞아들어갈 수 없는. 실은 우리 모두가 어딘가 ‘걸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걸쳐진 것과 매달린 것의 차이가 내 고민의 성질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테토남도 에겐남도 아닌, INFP도 ISTP도 아닌, 마초적인 사내도 상냥한 남자도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가운데에 있는, 도덕과 파격 가운데에 있는. 그래서 어느 한 가지로 설명될 수 없는. 그렇게 어느 한 가지 분명한 설명을 지니기 어렵고 그런 무리에 속하기 어려워하는. 그래서 나는 테토녀라는 별명을 좋아하게 됐다. 절묘하지 않아, 에겐남도 테토남도 아니어서 테토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여자가 될 수 없거든. 성전환이라든지 개념적 성 정체성이라든지 하는 진지한 반론들은 떼놓고 얘기하자. 별로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아서 그래.



EP2.


자고 일어났다. 어제의 수다가 끝나고 간밤, 이사 나오기 전의 예전 집에 들러 가구를 다 끌어내 대형폐기물로 버리느라 온몸에 잔뜩 알이 배겼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과 옥탑에서 서랍, 책장, 신발장, 침대, 책상 등을 끌어냈다. 손 나눔 할 사람이 없어 계단의 경사에 의지해 혼자 끙끙대고 있는데, 다시는 대형 폐기물 처리대행에 돈을 아끼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책정된 20만 원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어깨의 통증을 통해 몸소 알았다. 그리고 나는 몸소 느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고집스런 사람이고, 그 때문에 달밤에 계단 위로 미끄러지는 책상을 어깨로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 뻘짓이 마치 시지프 신화의 리버스 오마주 같다고 생각했다. 퍽 재밌지 않아?


%ED%81%AC%EA%B8%B0%EB%B3%80%ED%99%98venti-views-bh4V3IEoXpI-unsplash.jpg?type=w1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다. 2주 만에 들른 내 오랜 집, 돈 없는 사회초년생 시절을 함께 버티어준 낡은 집과 그 집을 고스란히 빼닮은 낡은 동네는 곧 재개발된다. 노동조합과 건설사의 긴 실랑이가 끝났고,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졌다. 동네에는 서서히 구역 폐쇄가 이뤄지고 있었고, 이사 나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졌으며, 버려진 쓰레기가 그마저 얼마 없던 ‘임시’ 주차구역들을 하나둘씩 집어삼키고 있었다.


혹시 중고가전을 팔면 돈이라도 나올까 싶어, 동네의 늙은 가전 업체 사장님을 방문했고, 그의 낡은 씨티 오토바이의 뒤에 올라탄 채로 낡은 동네를 달려 내려갔다. 오도방구가 헤치는 여름 바람이 낯설었다. 가는 길, 아저씨는 이 일을 벌써 58년째 했다고, 내가 올해 나이 78세라고 말했다. 나는 응당,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각본처럼 당연한, 자연스러운 대사를 이어붙였다. 그러자 그는 “정열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몸이 늙을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묘했다. 그렇게 함께 도착한 내 집에는 돈 될 가전이 하나도 없었다. 싸게 산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는 법이지. 단돈 5만 원이라도 건질까 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사람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시시각각 무너져 늙어가는 내 집. 몰랐는데 주기적으로 물을 내려주지 않으면 싱크대와 변기는 조금씩 역류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젠장, 냄새로 알았어. 신발을 신은 채로 방에 들어서, 문과 창문을 전부 열었다. 그리고 대형 폐기물의 목록을 적곤 신청서류를 작성한다. 폐기 비용에만 8만 원이 넘게 들었다.


4시간에 걸쳐 대형 짐들을 전부 내렸다.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정작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내가 어깨로 떠받친 무게들이 아니라, 수없이 오르내린 계단이었다. 이건 꽤 재밌는 메타포이다. 노가다는 요령이라고, 실지 짐들을 아래로 내린 건 내가 아니라 중력이었고, 나는 요령껏 떠받쳐 중심만 잡아주면 되었기 때문에, 무게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커다란 방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수없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내 팔다리에 힘을 전부 빼두었다.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의자나 조명등 따위를 옮기는 것은 수월한 일인 줄 알았는데, 결국 계단 때문에 숨은 턱에 차고 땀으로 옷이 전부 젖어버렸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복싱을 8년 넘게 하면 뭐하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근육은 역시 실전 근육이구나 하는 생각에 동시, 나는 내가 퍽 약하다는 싱겁고도 서글픈 생각을 했다. 4년 전엔 이걸 어떻게 거꾸로 할 수 있었던 거지, 하는.


한번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다리쉼을 위해 옥상의 나무벤치에 걸터앉았다. 이 나무벤치는 내가 산 것 중 제일 효자상품이다. 그 벤치서 오래도록 바라보아온 마지막 풍경 앞에서, 여름의 더위가 아직 남아있는 옥상에서, 식지 않는 몸의 열기 속에서, 나는 이내 까무러치라는 심경으로 담배나 뻑뻑 태웠다. 여름의 밤은 늦게 찾는 법인데, 벌써 어스름은 깔렸고 곧 밤이 되든지 말든지 될 대로 돼라지 하는 심경으로 그랬다. 당이 떨어졌고, 맥주와 냉면이 몹시 말렸다.


마지막 짐을 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끝이라는 환희가 내 발목을 떼었다. 집은 좁은 골목 안쪽에 있기 때문에, 대형 폐기물로 길을 막을 순 없어서 골목 바깥으로 책상을 질질 끌었다. 우다다다당 하는 소리가 동네를 시끄럽게 채웠다. 그나마 가까운 가로등, 본디 가로등 밑은 쓰레기의 암묵적 고향인데, 거기에 테트리스하듯 차곡차곡 침대와 책상을 쌓았다. 그러자 동네 주민들이 나와서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졌다. 대형폐기물은 신고만 잘하면 원래 다 가로등과 담벼락에 두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하여튼 여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 어디에 두는 게 좋겠냐고, 내게 대안을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어쨌든 모르겠고 이러면 차가 못 다니니 얼른 빼버리라고, 지금 차가 나갈 거니까 당장 치우라고 말했다.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건가 싶었지만, 이내 나는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지 생각했다.


맥주와 냉면이 코앞이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1층으로 내려둔 짐을 다시금 야트막한 언덕 위로 밀어 올려, 50미터 바깥의 공원 근처로 옮겼다. 주민은 차에 가만히 앉아서 쌍라이트를 켜고 나를 지켜보았다. 자기 통로만큼만 치우고 나가지, 괜히 저런다 싶었다. 마음이 서두르려는 것을 참았다. 아니, 서두를래도 서두를 힘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나의 태연함이 못내 괘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한편 개중에서 쓸만한 것을 가져가도 되느냐 물어보는 사람이 있고, 그냥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 개의치 않고 다른 짐들을 옮기고 있노라면, 가져갔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가져와 곱게 내려두는 사람이 있고, 성가시게 길 한중간에 내던지는 사람이 있다. 짐을 옮겨둔 다른 쪽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양쪽에서 폐기물을 가져가는 사람과 다시 버리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사이를 계속 오갔다.


공원 쪽은 유동 인구가 많아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공원 쪽에는 외국인 아낙(머릿수건을 맨 것이 꼭 전형적인 아낙의 모습이었다)들이 물건을 기웃거렸는데, 그들의 몸가지에는 조심스러움과 불안이 베어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외국어로 양해를 구하는데, 짐짓 유쾌하게 대답했다. 흑인 사내는 자전거를, 아낙1은 책장과 서랍장을, 아낙2는 의자 3개를 서로 잘 분배해서 가져갔다. 그들은 내가 짐을 다 옮기고 폐기번호를 붙일 때까지, 옮겨둔 짐들 위에 앉아 나를 지켜보았고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게 괜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짠했다. 시간은 달이 땡그랗게 뜬 10시, 냉면 집의 문은 닫혀 있었다. 이태원역으로 걸어가며 카스 한 캔을 깠다. 흰옷에는 땀과 검댕이 잔뜩 묻었고, 내 바지는 슬랙스였다. 이태원의 밤에는 한껏 치장한 선남선녀들로 가득했다.



EP3.


눈이 잘 뜨이지 않을 정도로 몸이 고돼서 그런지, 간밤 아주 깊은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꿈에 한때 엄청나게 사모했던 사람이 나타났다. 이렇게나 생생한 꿈이 드물뿐더러, 여운마저 간직한 꿈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약속을 해두었나 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따위는 꿈의 세계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지, 우린 어떻든 이미 밥 먹을 만큼은 친밀해졌나 봐. 중국가정식 집에 들어서 같이 밥을 나누어 먹었다. 그때 나눈 이야기는 벌써 지워졌다. 하여튼 이야기하며 웃는 당신 얼굴만 기억이 난다. 그녀의 얼굴은, 내가 알던 시간대로부터 7년이 지났기에 조금 더 성숙해져 있었다. 놀라워라 나의 상상력. 그 얼굴이 몹시 아름답구나 생각하던 동시에, 더는 열락하지 않음을 알았다. 아마 7년이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관능적 열망이 지워진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렇게 너는 오직 아름답기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어딘가 수줍었다. 오, 나는 네가 혹여나 나를 부담스러워할까 봐, 꿈에서든 생시에서든, 언제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부담스럽게 느낄까 두려워 너를 얼른 돌려보낸다. 그리고 계산을 했는데, 분명 금방 뒤따라가려 했는데 세상에, 영수증엔 내가 먹지도 않은 각종 비싼 요리들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쯤부터 내 꿈은 희미해지기 시작하는데, 그건 아마 당신이 내 꿈의 무대로부터 퇴장했기, 아니 내가 너를 돌려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ED%81%AC%EA%B8%B0%EB%B3%80%ED%99%98andrea-de-santis-b0csP38v5i4-unsplash.jpg?type=w1


종업원은 중국 사람인데, 한국말도 기기 조작도 서툴렀다. 나는 얼른 내가 앉아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시정을 요구했으나, 중국인 종업원은 지배인을 불러오더니, 매끈한 말솜씨로 우리는 결제 취소가 안 되고 바우처 환불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바우처는 중국 어플을 깔아야만 받을 수 있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중국 어플을 깔려고 했으나, 구글 플레이스토어는 흰 바탕색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건 생시의 일이기도 하다. 내 알뜰폰 요금제는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어플 다운로드는 커녕 어플 구동도 자주 안 되곤 하거든. 그렇게 플레이스토어를 껐다 켰다, 겨우 다운로드를 눌러서 퍼센트가 차오르는 걸 바라보다, 화면이 꺼져서 초기화되다가, 이내 지친 나는 카운터에서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잠이 깨니, 손님은 하나도 없고 종업원은 가게를 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환불을 받지 않고, 집으로 걸어 돌아갔다. 버스가 다 끊긴 새벽 1시, 내가 향하는 곳은 내가 모르는 곳이다.


여느 지방도시의 시내 같은, 얼마 되지 않는 가게들이나마 모여있고 그 가변에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심어둔, 전형적인 길의 오르막을 따라 집으로 갔다, 그건 아마 영월 시내를 닮았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도로는 그 야밤에 교통 통제를 해두고 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전형적인 대학 축제처럼 래퍼가 가설무대 위에 올라 있었다. 스윙스랑 엠씨몽이 어깨동무를 하고 랩을 하고 있는데, 스윙스는 어딘가 늙어 보였다. 그리고 관객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를 대신해 겸연쩍음을 느끼며 그 길을 지나쳤다. 언덕을 지나자 토목공사를 하느라 펜스가 쳐져 있고 맨땅이 드러난, 삭막한 풍경이 등장한다. 임시 인도로 걸어가다가, 전방에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으니 지하의 우회로를 따라 이동하라는 안내가 쓰여 있는 매우 살벌한 안내판을 보고 꿈속에서 전율했다. 지하의 우회로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도 안내가 쓰여 있는데, 공사장 특유의 임시 자재들로 지어져 있어 전기가 통할 수 있다는 안내였다. 나는 최대한 손을 데지 않고 내려가려 했고, 다 내려와서 좁은 길을 걸어가다가 무심코 자재로 된 철근을 손으로 만졌으며, 감전으로 온몸이 떨리게 되자마자 잠에서 깼다.



그렇게 글이 시작된다. 그리곤 써둔 것을 지운다. 아련히 생각한다고, 조금만 후회한다고, 다시 적는다. 너무 지나친 고백은 이런 글에선 삼가기로 했으니 말이야. 어때 그대들아, 이만 하면 힘이 많이 빠졌는가 어떨런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직에 대한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