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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노원 산책

by 풍금이 있던 자리


https://www.youtube.com/watch?v=a_B02BZp-5Y&list=RDa_B02BZp-5Y&start_radio=1&t=1754s



요즘엔 별다른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이어폰을 끼곤, 습관적으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을 튼다. 족히 4달은 넘게 이 곡을 들어온 것만 같은데 하필 질릴 법도 한쯤에 가을이 찾았고, 아-, 이 곡이 들어온 모든 것 중 가장 가을다웠다고, 각자의 마음속에 그려진 가을, 그 무수한 정취의 풍경 개중에서도 나의 가을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넉넉하다기보다는 세차게 쏘아오는 바람과 그에 속절없이 품을 내어주곤 맘껏 휘날리는 코트 자락 같으면서도, 여미어 부잡으려는 손마디의 힘과 엉거주춤한 이 모든 풍경 가운데로 겨우 띄워 올리는 미소 같다고 생각한다. 곧이어 닥칠 겨울을 생각할 제, 마음껏 누려볼 만한 계절임을 상기하며 남김없이 열의를 피워올리는 나의 계절이다. 장중하면서도 여유로운 선율의 무게감, 그 무거운 발걸음을 들어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듯한 악장의 구성. 나는 이 곡으로 올가을을 잘 떠나보냈다.



새로이 이사 온 집에서 노원 중앙도서관까지는, 1137번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었는데 다들 그렇겠지만 적당히 긴 시간 동안, 편히 앉아 누려볼 수 있는 버스 차창 밖의 풍경은 아름답다. 익숙한 하계역을 지나서부터 핸드폰을 내려놓고 바깥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계로부터 중계를 거쳐 상계역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대로변으로는, 키가 한참은 낮고 오래되었으며, 어딘가 빈한함과 남루함을(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절대 그렇지 않은) 상기시키면서도 여전히 따스한,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르자면 소박한 주공 아파트들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주공 아파트의 대열 군데군데로는, 일찍이 번화하였을 법한 오래된 상가 건물들이 그저 낡은 풍경화처럼 판에 박힌 듯 자리해 있었고 그 모든 오래된 것, 익숙한 것, 새롭지 않은 것에서 일종의 목가적인 감상을 느끼는 내가 그다지 이상하리라 여기지는 않았다. 돌이켜 그 위에다 그려볼 만한, 몇 가지 그리운 기억쯤은 가지고 있는 탓이다. 마들역을 기점으로 우회전해 돌아가는 버스는 일찍이 멀리서, 그러니까 대로변에서 주공 아파트들을 넌지시 구경하던 일을 마치고 그 숲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언젠가 한 번쯤은 본 듯한 그런, 익숙한 구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사이로는 응당 일조가 낮은 한편 그 길을 따라 적당한 가로수들이 늘어져 있는 법이거든.




보람 아파트에서 내려, 중앙도서관으로 잠깐 걸었다. 가을에 빠져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멀리 솟아있는 불암산의 기암들에 하염없으려 해도, 압정처럼 즐비해 있는 은행 사체 때문이다. 중앙도서관은 그리 화사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이깨나 먹은 듯한 매무새를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사물함이라든지, 책장이라든지 하여튼 구석구석의 오래된 모양새는 마치 새치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일리아스를 빌리러 왔는데, 2층 서고에 썩 많은 책이 있어 놀랐다. 그 밖에도 선악의 저편을 조금 뒤적이다간 가방에 넣고 나머지 층을 기웃거렸다.


3층에는 컴퓨터실이 있었는데 여기부터는 영락없는 국가 시설다웠다. 말하자면 아직 리모델링을 마치지 않은 오래된 학교 시설답다고 할까. 키오스크에서 시간을 예약하고 쓰는 시설 같은데, 그 키오스크의 UI에서부터 반원형의 좌석 배치하며 무엇 하나 오래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 정치 유튜브를 보는 노인, 낚시 채널을 보는 노인, 투자를 배우는 노인까지 전부 시간이 잔뜩 베어 문 것들이었다. 장차 자주 들리겠구나 하고, 여기가 새로이 둥지 틀 곳이라고 생각했다. 자고로 도서관이 너무 '쌔-삐하니' 반딱거리면 괜스레 재수가 없는 것이렷다.


4층에는 키오스크로 좌석을 예약하는 방식의 열람실이 있었는데, 마찬가지 옛날 생각을 했다. 수험생 시절, 또는 대학 시절이었을 테다. 그 안으로 낯선 인물처럼 들어섰다. 과연 나는 코트 차림을 한 채로 앉을 생각일랑 없다는 듯이 입구에서 사위를 두리번거리었기에, 사람들이 툭하니 치어다 보았다. 환기가 되지 않는 특유의 공기 안에 온갖 인간 냄새와 이산화탄소가 버무려져 얼굴로 확 끼치었는데, 필시 잠을 불러오는 향기라 아마 여기서 책을 읽어본들 읽히지는 않을 리야 하다가도, 체육복에 슬리퍼 차림을 한 학생들을 보고 있자 하니 괜히 머물고 싶어진다. 일찍이 겪었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 치열했던 수험 생활을, 먼 귀퉁이에서 바라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캔 커피까지 사서 건네준다면 이제 영락없는 아저씨라는 생각에 더불어서.




중앙도서관에서 나와 노원역 방향으로 걸었다. 그때 음악이 어느 악장을 지나고 있었을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순간은 내 가장 좋아하는 2악장에 접붙이고 싶다. 드물게 찾은 즐겁고도 낯선 일이 끝나고 나면, 홀로 걷는 시간에 조금의 비애나 약간의 고독감이 물 새듯 배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 곡을 마침내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그러한 감정들을 누려볼 만큼은 여유롭되 조금도 청승맞지 않으려는 그 성숙한 담대함에 있다. 음색엔 갈색빛의 비감이 묻어나지만, 셈여림과 빠르기, 그리고 선율의 구성이 이다지도 강하고 당차다.


노원역 근처의 더 숲 아트시네마로 향하고 있었다. 일찍이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추천받은 곳이다. 걸어가는 동안 노원역을 통과하게 되는데, 노원역 근처는 소위 위락 상권이라 일찍이 친한 친구들이 초대를 빙자해, 두 사람의 깜짝 연애 사실을 전해오던 그날, 처음 방문하며 기억 속에 그려두었던 노원역의 풍경을 떠올리며, 노원이란 동네에 대한 이해와 공간감이 늘어나고 있음을 상기한다. 그때는 역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위락시설의 술집에 가본 게 다였으니 말이다.


더 숲 아트시네마는 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전시해 둔 책이 더러 나의 취향에 맞아떨어졌는데, 보통 이렇지를 않아 나는 놀랐다. 전시된 일리아스와 선악의 저편은 이미 중도에서 빌린 채 내 가방에 들어있었기에 조금 의기양양한 기분을 장난처럼 누리고는 두었다. 이곳은 뭐랄까, 즐거운 형태로 산만하다. 상냥하지만 정리정돈에는 소질이 없는 이모네 집 같다. 커피나 케익을 파는 건 여느 카페와 같은데 포도주와 음식류도 팔고 있어서 냄새부터가 가장 먼저 그러했고, 책을 전시해 두고 앉아서 읽을만한 자리를 배치해 둔 것 또한 여느 북카페와 닮았는데 한쪽에서는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영화를 볼까 싶었지만, 하루는 짧고 읽을 건 언제나 많기에 다음에 보기로 한다. 영화관 바로 앞쪽에 겨우 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정확한 시간표를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대부 2가 상영되는 듯했다. 오래된 미국 영화 특유의 말투, 어쩐지 서부극을 상기시키는 목소리가 상영관 밖으로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그를 배경 삼아 선악의 저편을 조금 끄적이다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일리아스를 펼쳤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 갈등을 빚고는 제 어머니께 고자질하는 장면이었다. '짜-식 다 큰 사내놈에 일대에서 힘으로는 상대가 없는 대장부가,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쪼르르 어머니께 고자질하는 꼬락서니라니.' 이렇듯 익살스러운 시선으로 두 모자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테티스를 통해 제우스를 채근해 아가멤논의 군세에 벌을 달라는 대사를 읊조리며, 그 장면 장면에다가 만화책 그리스로마 신화의 얼굴들을 기워 붙였다. 그리스 신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와 이미지가 없었더라면 책 읽기가 수월치 않았겠구나, 조기교육은 언제 어떤 방식일지 모르지만, 이렇게도 빛을 본다고 생각했다.




해가 떨어졌고, 낯선 도시인 노원에서 밤 버스를 탄다. 텅 빈 밤 버스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버스는 동부 간선과 중랑천을 끼고 하계역을 향했다. 둔치로 뻗어있는 시원한 길 위에서 바라본 동부 간선은 과연 차량의 붉은 후미등으로 가득했고, 천의 건너편으로는 커다란 굴뚝이 어둠 속에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는데, 에너지 공사 건물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장소는 찜질방이다.


나는 찜질방을 좋아한다. 더구나 추위가 코털을 사정없이 잡아당기기 시작하는 이즈음에야, 굳이 이 기호를 설명할 필요는 없지 싶다. 하지만 찜질방을 혼자 갈 일은 잘 없는데, 기억 속엔 친구들이, 이제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게 된 친구들의 얼굴과, 그들에 더불어 이 밤을 새워볼 심산으로 벌겋게 설렌 내 얼굴이 가득하다. 그리워해 볼만한 기억과 풍경 몇 개 정도는 아직도 풍화되지 않은 채 잘 간직된 것이다. 그러면서 내 얼굴에 드리워진 아주 조금의 세월을 생각한다. 젊다면 젊고, 어리지 않다면 충분히 어리지 않은, 이제 어딜 가도 성인 대접을 받는 이 애매한 세월을. 청승맞다 하지 마라, 이게 다 노안이라 그렇다. 사원 때부터 대리 취급을, 이젠 아예 과장 취급을 받는다고 말하면 아시려나.




찜질복을 환복하자마자 나는 식당으로 들어선다. 찜질방에 있는 식당을 참지 못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라, 과거 아주 지독히도 좋았던 기억이 얽혀있는 까닭이다. 종일 굶주리고 숙소 마저 찾지 못한, 무계획형 여행자의 말로를 몸소 겪던 와중에 우연히 먹게 된 된장찌개가 기가 막혔다. 이 집의 제육볶음도 그때에 견줄 만큼은 썩 맛있었고, 배가 가득 찼다. 식혜를 들고 한증막에 들어가서 넷플릭스로 여인의 향기를 틀었다. 환절기 비염 기운 탓도 있지만, 오늘은 순전히 여인의 향기를 보기 위해서 찜질방에 온 것이다. 유튜브 쇼츠에 뜬 알 파치노와 젊은 여인의 탱고 장면에 꽂혀서, 영화가 한 편 보고 싶어졌다. 집에서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무엇이 사내를 살아가게 하는가, 하는 감상평 같은 건 집어치우도록 하자. 그 답변에는 응당 여인의 향기를 위시한 것들이 자리해야 하는데, 오해 거리를 풀어헤치면서도 조리 있게 써볼까 하니 쓰지 않느니만 못할 것 같다.


대신 영화나 드라마처럼 긴 호흡의 영상을 보기에 찜질방이 적절하다는 생각 하나와 지루해하지 않고 충분히 긴 시간 찜질을 하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가 필요하다는 생각 하나씩을 했다. 말인즉, 보고픈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찜질방에 와야 한다는 퍽 수상한 결말을 낳았다. 고전 명화는 쌓여가기만 하곤 유튜브와 쇼츠에 미뤄지기 일쑤였는데, 앞으로도 자주 올 듯하다. 밤이 퍽 깊었다. 출근을 위해 찜질방을 나선다. 귓가엔 por una cabeza가 흘러나온다.


도로와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에는 뜬금없는 한파주의보 알림이 떠다니고 있었다.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란다. 이런 싹수없는 기온이라니. 세상에 기온마저도 이렇게 까무러지듯 엎치락뒤치락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골이 아프다. 좀 천천히 오가지. 그래도 찜질 덕에 비염 기운이 물러가, 추위 앞에도 의기양양할 수 있었음에 이내 좋은 기분이 든다. 몸에 열이 가득 차오른 채, 이제 내일의 한파를 향해 고꾸라지기 시작한 밤의 기온과 바람을 누볐다. 아마 찜질의 가장 좋은 순간은 그때였지 싶다. 기분 좋은 비누 향기를 풍기는 젖은 머리와 마찬가지 코트의 안 자락으로 성난 바람이 얼마든 드나들게 두었다. 정류장 주위로는 아무도 없었고, 짧은 음악은 자꾸만 절정부를 반복했다. 건반의 강한 스타카토를 기점으로 반전되는 선율은 도발적이면서 고혹적이다. 조금 흥이 난 나머지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일찍이 염두해둔 알파치노의 스텝을 따라도 보았다. 비누 향기가 물씬 났고, 생각했다, 지금 이 상태가 여인을 유혹해 보기엔 가장 적절할 텐데 하고. 알파치노 탓이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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