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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금이 있던 자리 Jun 21. 2023

사랑 시가 아닌 사랑 시

이상 - 이런 시


그녀는,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그럴 리 없는 상상 하나에 나는 메이곤, 즐거운 포로가 되어 있다. 그것은 꿈이다. 그럴 리 없으며, 부끄러우면서도, 달콤한 것은 곧 꿈이기에.

 


 

아마 당신께서는, 이따금씩 불어오는 손님들에 맞추어, 지치인 오후, 졸음 겨우 깨시고 있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보이지가 않어, 자꾸만 떠오르는 당신을 환상한다. 그래, 자꾸만 떠오르기에 멋대로 뻗어나는 당신 생각을 내가 환상하는 것이요, 환상하는 내내 당신을 긴장으로, 전율로써 감각하매, CCTV가 있는 곳마다 그를 당신의 시선으로 느끼어버리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관음 환자와 같이 웃게 되는 것이다.


 공교롭다는 단어마저 파랗게 질려 버릴 정도로, 당신은 이제 그 모든 단어 너머의 영역에서 내게 자리하신다. 아아.. 나는 대체 어찌할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조용히, 나 혼자만의 재회를 했다. 마스크 너머로, 그 눈빛이 쨍하니 여전하더라. 생각지도 못한 여기서 조용히, 그 사람을 보았다. 나는 곧 지금까지로 이어져 있는, 뒤편으로 쭈욱 뻗어나 있는 모든 길과 여정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이제 내 할 일은 가리운다.

티켓을 건내받은 손은 곧 지워지고,

회화는 다만 소음인 아우성이 돼버릴 따름이었다.

 

고작 1년만큼의 무게 위로,

나는 년의 숨을 내쉬는듯하다.


나의 신께서.

즉 운명이 아직이라 말씀하심일까, 이것은.


 모든 사건을 끝이라 쉽사리 단정 짓는 일이란, 다만 내 나약한 의지의 표상됨이라면. 아직 사건의 가지는 뻗어낼 마디를 남겨둔 채로 오래동안 거기 있었던 것일까. 그 온 나무를 두고 곧 운명이라고 한다면..


 



것도 아니라면,


모조리 끝이 난후에야, 열렬한 사랑 하나를 진정으로 깨달으라 하심인, 신의 시험 앞을 내가 이리도 망설이며 서성이는 모습일까. 그것은 실로, 머언 길일 따름에.

  


시험하심일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이것이 그의 시험 하심 아니고서

장차 무어라 부를 수가 있을까.


어찌하라고 하심인가.

날 더러 어찌하라 하심일까.

시인이 되라 하심인가.

예언자가 되라 하심인가.

그 선구자들을 선구자 되게 한,

그들의 당신, 그들의 연인, 그녀는 나의 뮤즈.


 그들이 그러했던 마냥, 나는 당신을 안고선 시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이것은 분명한, 운명이 될 것이다. 허나 그때에나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운명이란.


 



시험하심인가.


나는 도통 큰 사랑이, 그것이 진정일제, 그를 위해 아무런 하나의 발자욱도 내딛지 못하였음을 아픔으로 아픔으로, 깨닫지 않을 수 없었건마는.. 신은 그녀를 내게로 불러, 아직도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 있노라고, 있노라 하시며 날 재촉하시는가.


알아야 할 고귀한 것,

오직 빠알갛게 피워내어서야만 가질 수 있는 것,


눈물로만 빚어낼 수 있을 묘묘한 것들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다시며, 당신을 다시 내게로 당기시어 나로 하여금 스스로의 모든 것이라 믿어지는 것인 자아와 의식과 신념 일체를 이리 파도로 내던지시는가.





저기에 만약, 다시금 좌절만이 가로 놓이어 있다고 한다면. 오로지 편안함 속에선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내게 알리려 하심이 될 것이다. 그것은 시험이다.


왜 나는 한마디도 못 하였던지.

오래도록 날 고통 속에 있게 했던, 그 사실을 또 억지 삼킨다.

나는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일까.


다시 잊힌 길이 펼치인다.

잊힘은 이렇듯 잠시의 일이요,

길이 사실 멎을 일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직도 가야 할 지엄한 길,

걸어 걸어 닿아야 할 곳이 길다.

나는 잠시 멈추고도 싶었으나,

아직 나를 쉬지 말라 하신다.

 

아직도 열렬한 따름이다.

잊혔고, 기어이 잊어내었던 것들이.

당신을 보자마자 그 모든 내력인 역사를 비웃곤

불의 혀를 날름거리며,

심장을 달구오는 그 정신이.


기도대로 내내 어여쁘셨음을.

그러므로 영영 아름다우실 것임을.

어찌해야 좋을까.

어찌해야 좋을까, 나는.


나는 옛날에 적어둔 일기가 떠오르니

혼란스럽기만 높아 가다.

나의 신은 어쩌자고

자꾸만 즐거워하시는 것일까.

 

                                                                                     

-   2020년 3월 29일 일요일 오후 8:12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  이상, 이런 시 中


내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한평생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더이다.

내 차례 못 올 사랑인 줄을 알면서도

나 혼자론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제는 그만 보내줄 때이다.

그 환영이 나를 영영 괴롭히는 일이라면.


자!

내내 어여쁘소서,

이별할 때이다.


꾸준히 생각하리다.

아주 잊을 수 없을 터이니,

다만 보내야 하는 때이다.

 

사랑 시도 아닌 것을,

사랑 시로 읽는 나는,

하필 이 부분에 눈길이 발 매인 것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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