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를 탁, 아니 툭 하고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스페인에서의 시간은 정말이지 빠르게 흘러갔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당시 교환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핫하게 떠오르고 있던 여행지인 모로코에 대해 듣게 됐다. 모로코? 아프리카의 그? 아프리카는 나에게 꿈의 도시였다. 동물원에서나 볼 법한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혹은 자주 많은 이들이 굶주리는 곳으로 표현되는 아프리카는 어린 나에게 아주 멀고도 신비로운 세계였다. 모로코는 유럽과 특히 가까워서 유럽에서 출발해서 가는 여행자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당시 나는 그 사실 조차도 몰랐다.
'모로코에 가면 사막에서 썰매 타봐야 한다', '쉐프샤우엔(Chefcaouen)이라는 곳에 가면 인생사진 하나는 건져와야 한다' 등등 먼저 갔다온 이들의 무용담 같은 여행기를 들으며 당장 눈 앞에 닥친 과제들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교환학생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여행과시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같다. 나는 여기 가봤는데, 너 여기 안가봤어? 하는 것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가도 이내 참 순수하고 귀여운 과시욕이었구나 싶다. 아프리카는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교환학생을 하던 한 살 많은 오빠와 세 명의 언니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조합이었다.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오들오들 떨어가며 잠을 잤고 그 흔한 배드버그는 운 좋게 피했으며, 모든 대화는 즐거웠다.
광활한 사하라 사막에서 우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알리 아저씨'네 에서 머물렀다. 알리아저씨의 숙소는 아주 넓었는데 아침마다 모로코식 아침 뷔페가 근사하게 차려져 나왔다. 해가 질 무렵 알리 아저씨는 우리를 진짜 사막으로 데리고 갔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사막은 마치 코앞에 있는 것 같았는데 한참을 걸어서야 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내 체력은 지금도 그때도 바닥이었는데 이를 악물고 알리 아저씨 뒤를 따라 걸었다. 사막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윽고 명당자리에 앉아 사막을 바라보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한없이 인자한 미소가 얼굴이 되어버린 알리 아저씨라면 인생의 진리에 대해 뭔가 하나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알리, 당신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그때 사막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노을은 지기 시작했으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이 감성 그 자체였기에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는 이런 질문이라도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때 나는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내 머릿 속에서는 이미 기대하는 답들이 가득했다. 가족이나 친구, 혹은 신? 온갖 멋진 답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 사막, 사막이라고 생각해
순간 뒤통수를 누가 탁, 아니 툭 하고 치는 것 같았다. 툭인지 탁인지 보다도 그런 커다라면서도 구체적인 개념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 그저 앞에 높인 노을만을 바라봤다. 알리 아저씨의 삶이자, 집이며 일터이기까지 한 사막이야말로 내 질문에 대한 완벽하고도 완벽한 답이 아닌가.
그 후 나는 나의 사막을 찾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에게 집이자, 일이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무엇을 말이다.
아주 나중에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삶의 이치에 대해 물을 때, 그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답들 중에 머리를 탁, 혹은 툭하고 쳐줄 멋진 답을 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