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기다리던 여행이었는데도, 참
1년 만에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홀로 짐을 싸다가 너무 많다싶어 꺼내놓았던 것을 또 넣다를 반복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냄새를 풍겨오는 공항을 만나는 것도 모두 분명히 즐거웠는데.
청춘들의 여행지라는 라오스는 별로여도 참 별로였다.
복작한 호스텔을 떠나 잡은 번듯한 리조트도 왠지 모르게 허전한 것도 모자라, 떠오르는 감상들을 나눌 사람이 없어 자주 꺼내드는 스마트폰 때문에 한심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지 참 이상할 일이었다.
졸업 후 떠밀리듯이 취업한 회사는 나를 갈고 갈아야 위로 올라설 수 있는 곳이었다. 밥먹듯이 하는 야근에 정당한 보상은 없었고, 어느 누구 하나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곳. 그런데도 회사는 직원들 머리에 '이만한 곳 없다'는 생각을 꾸준하게도 심느라 바빴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홀린듯이 다니던 것도 이젠 그만하자 싶어 퇴사 전 마지막 여행지로 삼은 곳이 바로 라오스였다. 퇴사 후에는 긴 여행을 할 참이라 나에게 여행이 정말 어땠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특히나 '라오스'는 몇 년 전 tv 프로그램에서 청춘을 연기했던 청춘들이 떠났던 여행지라 내가 '청춘'일 때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던 곳이기도 했고.
그런데 내 눈 앞의 라오스는 어딘지 모르게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는 오토바이들이나 옆자리 사람의 코를 찌르는 체취를 맡으며 꼬깃꼬깃 포개앉아 가는 벤이나 내가 생각하는 청춘 여행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어쩌면 청춘여행지는 청춘이 둘 이상 모여야 즐길 수 있는 곳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새 청춘이라고 부르기에는 때가 너무 많이 탄 걸까. 혹은 내가 그 사이에 외로움을 많이 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스가 내가 여행한 최악의 도시는 아니다. 최악이라고 하기에는 낯선 사람을 환한 미소로 맞이해준 이들이 꽤나 여럿 있었으며, 넋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뜻밖의 풍경을 만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와이파이도 안터지는 먼지 덮인 길 위에서 나는 문득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달리 할 것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전에 내가 했던 '혼자하는 여행'을 내가 왜 좋아했었는지, 내가 정말 그 혼자임을 좋아했었는지 말이다.
짧은 순간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한 혼자여행을 별로가 아니게 만든 것은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도시의 랜드마크나 미술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은 이상하게도 사진을 들춰보지 않는 이상 내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다. 하지만 한 여행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몇몇의 사람들-혹은 그들과 나눈 대화-은 후에 여행을 떠올렸을 때 가장 생생하게 올라오는 이미지가 된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태어나 다른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통해 나는 알게 모르게 채워졌다.
비수기의 라오스에는 사람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거기에다가 나는 부끄럽게도 이 여행을 통해 뭔가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나에게 깨달음을 줄 것 같은 사람을 찾기에 바빴다. 이런 도시라면 삶의 이치에 통달한 누군가가 홀연히 나타나 인생의 진리라도 알려줄 것처럼 말이다. 이 일련의 삐끗한 이유들이 아직 청춘인 나에게 청춘여행지인 라오스를 그저 먼지 날리는 시끄러운 도시로 남게 한 것이 아닐까. 부디 다음의 여행에서는 그저 있는 그대로 여행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때서야 비로소 별로가 아닌, 별 게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으니.